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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포츠 타타라타] 심학봉과 한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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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학봉. 사진=MBN 방송캡처


#심학봉 전 국회의원(구미 갑)과 한국체육대학교.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두 개체가 요즘 마치 ‘나비효과’처럼 연결돼 흥미롭다. 성폭행이라는 가장 충격적인 방법으로 ‘금배지’를 망신시킨 심 전 의원은 지난 10월 12일 의결을 거쳐 국회의원 직을 자진 사퇴했다. 그런데 언론에 심학봉이라는 이름이 나올 때마다 구미와 한체대의 눈치 빠른 사람들은 한 곳을 쳐다봤다. 심지어 지역 신문이 그 이름 석 자를 대놓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 상황을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스포츠 기사인 ‘타타라타’가 잠시 정치 영역을 기웃거려야 한다.

# 원래 구미는 경북 선산군의 면이었다. 구미면에서, 구미읍-구미시를 거쳐 1995년 선산군을 통합했다. 배꼽이 배의 이름이 된 것이다. 예부터 이 지역은 유난히 인물이 많이 나온 것으로 유명하다. 조선후기 실학자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조선 인재의 반이 영남에 있고, 영남 인재의 반은 선산에 있다”고 적었다. 실제로 정몽주의 제자이자 영남학파의 시조인 길재, 생전에 지은 제문 때문에 무오사화가 나고 부관참시를 당한 영남학파의 종조 김종직, 의병장 허위, 국무총리를 지낸 창랑 장택상 등이 이곳 출신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현 대한민국 대통령의 아버지이자, 2년 뒤 탄생 100주년을 앞두고 아직도 그에 대한 평가가 공직자의 시금석이 되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바로 이곳 출신이다. 아예 시 이름을 ‘박정희시’로 변경하자는 얘기까지 나왔다.

# “중학교를 수석 졸업하고도 가정형편이 어려워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하였는데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시로 설립한 국립 구미전자공고에 진학해 학업을 지속하고 장래 꿈을 키울 수 있었다.” 기술고시를 거쳐 청와대 선임 행정관 등 고위 공직자로 출세가도를 달리던 심학봉 지식경제부 국장은 2011년 10월 <헤럴드경제>와의 공직생활 마감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휴대폰 컬러링까지 박정희 대통령이 작사했다는 ‘새마을노래’로 정할 정도로 심학봉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박정희빠로 유명해졌다. 그의 트위터에서는 박정희라는 주제가 빠지는 경우가 드물고, 제사(추모식)에 참석하고, 박정희와 딸 박근혜를 위하는 일에 누구보다 앞장섰다. 그리고 2012년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 공천에서 당 정책위의장·국회 기획재정위원장 등을 지낸 3선의원 김성조를 제쳤다. 여론조사 열세를 뒤집은 이변이었다.

#알고 보면 김성조 전 의원도 대단하다. 포항이 고향인 심학봉과는 달리 구미 토박이다. 대학졸업 후 청년 기업인으로 성공했고, 만 37세이던 1995년 지방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경북 도의원이 됐다. 이어 2000년 16대 총선에서는 그 유명한 정치거물 김윤환을 제치고 한나라당 공천권을 받았다. 물론 본선에서도 김윤환을 제치고 42세의 나이에 금배지를 달았다. 이는 지금도 정가에서 ‘다윗이 골리앗에 이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고 있다. 김윤환이 누구인가? 허주(虛舟·빈배)라는 아호로 더 유명한 그는 고교 동창인 노태우와 김영삼을 대통령으로 만들며 ‘킹메이커’로 불렸다. 박정희 대통령 때인 10대 국회 때 유정회 의원으로 시작, 민정당 ·민자당·신한국당·한나라당을 거치면서 대통령 비서실장, 정무장관, 여당 원내총무, 사무총장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충격이 컸던 탓일까. 허주는 2003년 암으로 돌연 세상을 떠났다(향년 7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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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한체대 비전 선포식에서 연설을 하고 있는 김성조 한체대 총장.


# 2012년 처음으로 선거에서 좌절한 김성조는 허주와는 달리 좌절하기에는 너무 젊었다. 영남대 교수를 거쳐 지난 2월 선거를 거쳐 한체대 총장에 취임했다. 그리고 2년여 동안 수장 없이 방황하던 한체대에 ‘스포츠 한류의 메카’, ‘공명정대’ 등의 비전을 선포하며 짧은 시간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전에 없던 대외협력단을 만드는 등 대내외적으로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김성조 총장의 한체대는 올해 광주 U대회에 가장 많은 선수를 파견하고, 동문들이 최다 메달을 획득하면서 한국이 사상 처음으로 종합우승을 차지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학생과 교직원의 만족도도 높다고 한다. 김성조 총장은 취임 후 <헤럴드스포츠> 등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당분간 정치에는 관심이 없고, 한체대 총장에 전념하겠다”고 말했다. 스스로는 물론이고, 누구도 2016년 총선 출마는 고려치 않았다.

#그런데 심학봉 의원이 시쳇말로 훅 날아갔다. 김성조 외에는 경쟁자가 없는데, 김성조가 한국체대 총장이 됐으니 재선은 무혈입성이라는 말이 돌았던 차였다. 지역 여론도 들끓었다. 두 명의 대통령을 배출한 자부심이 현역 국회의원의 성폭행으로 제대로 동네 망신을 당했으니 ‘예전 김성조가 정말 좋았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실제로 이달초 <경북도민일보>는 김성조 전 의원이 내년 총선 후보그룹 중 인지도(87.3%), 새누리당 지지층 적합도(36.9%) 등에서 압도적으로 앞선다는 여론조사를 발표했다. 김성조 총장은 출마의 ‘ㅊ’자도 꺼내지 않았는데 벌어진 일이다.

#이틀 전 김성조 한체대 총장을 만났다. 그가 진정으로 한체대 총장 자리를 원했고, 누구보다 열심히 해온 것을 잘 아는 까닭에 향후 행보가 궁금했다. 그리고 이럴 때는 돌직구로 물어보는 것이 서로가 편하다. 결론은 지극히 ‘정치스러웠다’. “지금 상황에서 어떻게 내 입으로 총선출마를 고려한다고 말할 수 있겠어요? 구미에서 사람들이 올라오고, 경제통이 필요하다고 당이 요청하는 등 곤혹스러울 정도로 출마 권유에 시달리는 것은 사실입니다. 사람 일을 확언해서는 안 되지만 확실한 것은 결코 내 욕심에 스스로 총선에 나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제가 그렇게 쉽게 결정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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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초 <경북도민일보>가 보도한 구미갑 지역 총선 출마 후보자 여론조사.<출처=경북도민일보 홈페이지>


# P.S.하나. 심학봉 의원 사건에 대한 김성조 총장의 해석이 '재미지다'. “개인적으로 심학봉 의원을 잘 모릅니다. 그런데 나 때문에 일을 그르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제가 정치를 떠나 한체대로 오고, 출마하지 않겠다고 공공연히 밝혔죠. 이에 심 의원은 뚜렷한 경쟁자가 없다는 생각에 안일함에 빠진 것이 아닐까 합니다. '사건이 난 날 지지자들과 함께 재선은 따논 당상이라고 술자리를 한 것이 아니었느냐?'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제가 한체대로 오지 않고, 내년 총선을 위해 구미를 누비고 다녔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사람 사는 것 참 알다가도 모르겠어요.” 이문세의 노래처럼 우리네 삶은 정말 '알 수 없는 인생'들이다. [헤럴드스포츠=유병철 편집장 @ilnam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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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조 한체대 총장이 트위터 프로필 사진으로 쓰고 있는 초상화.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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