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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현철의 링딩동] ‘꿈의 대결’ 메이웨더 vs 골로프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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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 베르토를 상대로 49연승을 달성한 메이웨더(오른쪽). 사진 출처=<파이트뉴스닷컴>


플로이드 메이웨더의 빛바랜 49연승


지난 9월 13일(이하 한국 시간) 전 세계 프로복싱의 최강자로 군림하던 플로이드 메이웨더가 안드레 베르토를 상대로 손쉬운 승리를 챙기고 예정했던 대로 은퇴를 공표했다. 베르토를 KO시키겠다는 메이웨더의 발언도 있었고 마지막 경기만큼은 화끈한 승부를 기대했지만 메이웨더의 선택은 여전히 안전운행이었다. 메이웨더의 초인적인 몸놀림을 감상하는 대가로는 입장료가 아까웠던지 현장의 많은 팬들이 판정이 발표되기도 전에 자리를 떠나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메이웨더가 쌓은 49연승, 그것도 무패로 다섯 체급을 제패한 업적은 그야말로 경이적이다. 현대 복싱의 선구자라는 슈거 레이 로빈슨도, 복싱의 대명사인 무하마드 알리도, 1980년대를 수놓았던 ‘F4’ 해글러, 레너드, 헌즈, 두란은 물론 2000년대의 복싱 아이콘 오스카 델라 호야도 패배 없이 은퇴하지 못했고, 무패로 다섯 체급을 제패하지는 못했다. 기록만 놓고 봤을 때 메이웨더는 완벽 그 자체다. 현재의 경기규칙으로는 슈퍼웰터급 이하에서 메이웨더의 디펜스를 깨트릴 선수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대중들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메이웨더의 복싱에 감동이 없기 때문이다. 상대 선수의 선정부터 경기 장소, 날짜, 대전료, 심지어는 몸무게까지 자신의 입맛에 맞게 세팅하고 링에 오르면서도 2010년 이후에는 모험이 없는 안전운행만을 고집했다. 슈퍼페더급 시절의 메이웨더는 투사였지만 지금은 글러브를 낀 비즈니스맨이라는 악평이 따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소위 ‘레전드’로 불리는 전설적인 복서들은 복싱팬들의 피를 끓게 만들었고 패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상대를 쓰러트리려는 복싱의 본질에 충실했으며 정면승부를 통해 상대를 제압하는 모습에 팬들은 열광했다. 메이웨더의 스타일이 후세에 어떤 평가를 받을지는 알 수 없겠지만 분명한 것은 현 시대에도 메이웨더의 복싱을 인정하는 팬들보다 좋아하지 않는 팬들이 훨씬 많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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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르뮤를 상대로 클래스의 차이를 보여준 골로프킨(왼쪽).


현 세계 복싱계 NO.1 겐나디 골로프킨


골로프킨은 지난 10월 18일 WBA(슈퍼), WBC(잠정), IBF 미들급 통합타이틀매치에서 IBF 챔피언 데이비드 르뮤(캐나다)를 완벽하게 제압하고 미들급 최강임을 과시했다. 왼손 잽만으로 르뮤의 불같은 파이팅을 무력화시킨 골로프킨은 한 차원 높은 테크닉을 구사하면서 일반적인 세계챔피언과는 다른 클래스를 증명해보였다. 15연속 KO 방어와 21연속 KO승, 세계타이틀매치 16전 전KO승의 무시무시한 기록은 덤이었다.

2012년 9월 미국 진출 이후 차근차근 정진한 골로프킨은 매 경기 인상적인 파이팅으로 전 세계의 복싱 팬들에게 확실한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1950년대의 슈거 레이 로빈슨, 1970년대의 카를로스 몬존, 1980년대의 마빈 해글러를 거쳐 1990년~2000년대를 지배한 버나드 홉킨스의 계보를 잇는 미들급의 절대강자로 인정을 받고 있는 분위기다. 더 놀라운 사실은 아직까지 한계를 드러내지 않았다는 점이다. 골로프킨도 인간인 이상 언젠가 무너질 수 있고, 그 시기는 어느 누구도 알 수 없지만 현재의 골로프킨은 1980년대의 해글러처럼 어느 누구도 꺾어내지 못할 난공불락의 아우라가 풍긴다.

11월 21일로 예정된 금년 하반기의 최대 빅 매치 미겔 코토(푸에르토리코)와 사울 알바레스(멕시코) 간의 WBC 미들급 정규타이틀매치(골로프킨은 잠정챔피언) 승자와 WBO 동급 챔피언 앤디 리(아일랜드) 정도가 미들급에 남은 대항마로 평가 받는데 이들 중 누구도 골로프킨의 적수가 되기는 어렵다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복싱 팬들 사이에서는 절대적인 위상을 정립한 골로프킨이 일반 대중들에게도 세계 최강의 복서로 인지도가 넓혀지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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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페더급 시절 무패 챔피언 간의 대결에서 디에고 코랄레스(오른쪽)에게 압승을 거두고 슈퍼스타로 첫 걸음을 뗐던 메이웨더. 이 시절의 메이웨더는 투사였다. 사진 출처= 홈페이지


메이웨더의 필연적인 컴백

플로이드 메이웨더가 뛰어나고 훌륭한 복서임에는 틀림이 없다. 복싱 역사상 손에 꼽을 수 있는 기량을 갖췄고 그에 걸맞은 업적도 쌓았다. 메이웨더는 종종 본인이 복싱 역사상 가장 뛰어난 복서임을 강조해왔다. 심지어는 무하마드 알리(미국)보다 본인이 더 위대하다고 어필하자 이에 대한 언론과 복싱팬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도를 넘는 아웃복싱과 경기 운영 능력은 인정하더라도 단지 승리에만 집착하는 그의 스타일은 복싱의 본질을 훼손한다는 비난이 줄을 이었다.

메이웨더의 은퇴 선언은 이번이 세 번째다. 이미 2007년과 2010년 두 차례 은퇴했다가 번복한 전력이 있어서인지 현지에서도 그의 은퇴를 곧이곧대로 믿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메이웨더가 쇼타임과의 계약이 마무리되는 시점이 전설적인 복서 록키 마르시아노의 49연승과 동률임을 끊임없이 언급해온 것은 그것을 넘어설 때의 상품 가치를 높이기 위한 전략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50연승에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흥행과 명예 두 가지에서 모두 최대치의 이슈를 제공하기 위한 사전 포석이라는 것이다.

돈에 대한 욕심 못지않게 명예욕도 대단한 메이웨더. 본인은 위대하다는 평가를 받고 싶어 하지만 ‘플로이드는 위대한가?’라는 질문에는 선뜻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는다. 위대해지고 싶다면 더 도전하고 모험을 감행해야 할 것이다. 모든 복서가 위대해지기 위해 노력할 필요는 없고 아무리 뛰어난 챔피언이라고 해도 위대하다는 호칭이 쉽사리 붙여질 수는 없다. 그러나 메이웨더는 위대함을 원한다.

사상 최초로 5체급을 제패한 복싱 천재 슈거 레이 레너드는 1982년 은퇴 후 1984년 재기했다가 한 경기만을 치르고 다시 은퇴한 바 있다. 이미 천문학적인 부를 쌓았고 건강상의 이유로도 링과 멀어졌던 그가 컴백한 이유는 다름 아닌 마빈 해글러의 존재였다. 해글러가 미들급에서 아성을 쌓아갈수록 레너드의 마음에는 승부욕이 꿈틀거렸고, 끊임없는 연구 끝에 복귀해서 1987년 4월 결국 해글러를 무너뜨렸다. 메이웨더에게도 골로프킨은 복서 커리어의 마지막 자극제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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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세계복싱의 최강자 겐나디 골로프킨. 사진 출처=<파이트뉴스닷컴>


꿈의 대결은 실현될 것인가?


메이웨더가 웰터급과 슈퍼웰터급에 포진된 일급 선수들을 모조리 제압함으로써 더 이상 메가 파이트를 기대하기 어려운 현재의 상황을 감안할 때 잠시 휴식을 취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복싱계를 떠나서 상황을 관망한 뒤 새롭게 등장하는 슈퍼스타를 대상으로 50연승에 대한 기대치를 증폭시킨 후 최고의 흥행이 보장된 매치 업을 통해 복귀하는 모양새가 될 것으로 많은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

이에 가장 적합한 상대가 겐나디 골로프킨이다. 자타공인 현역 최강 복서인 골로프킨을 상대로 50연승과 6체급 석권 도전이야말로 메이웨더의 복귀 타이밍에 가장 시의적절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두세 경기를 더 치르게 되면 이변이 없는 한 골로프킨은 미들급에서 철옹성을 쌓고 역대급 평가를 받을 수 있다. 흥행은 아마도 보장이 될 터, 최고 복서의 자존심도 무시할 수 없다. 어쩌면 메이웨더는 골로프킨이 르뮤를 짓이기는 모습을 보면서 이미 복귀에 조용히 시동을 걸었는지도 모른다.

메이웨더의 컴백과 골로프킨에게의 도전. 그것이 실현된다면 도전 자체만으로도 메이웨더에 대한 편견은 많이 잠잠해질 것이다. 골로프킨의 존재는 메이웨더에게는 영원히 위대한 복서로 남을 수 있는 행운일 수도, 아니면 한 순간에 그간 쌓은 명성을 무너트릴 수 있는 불운일 수도 있다. 강타와 테크닉, 파워와 디펜스까지 모든 조건을 두루 갖춘 극강의 인파이터 골로프킨과 희대의 아웃복서 메이웨더, 두 선수의 만남은 이 시대의 필연이다. 내년이나 내후년 메이웨더와 골로프킨이 벌이는 꿈의 대결이 우리를 흥분시키기를 기대한다. 꿈의 대결이 실현될지, 아니면 꿈으로 끝날지 그 답은 메이웨더의 마음속에 있을 것이다. [SBS복싱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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