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골프상식 백과사전 22> 슬픈 역사를 품은 PGA챔피언십 개최지 발투스롤
[헤럴드경제 스포츠팀=남화영 기자] ‘이 클럽의 목적은 가장 권위 있고 가장 오랜 전통을 지닌 게임을 즐기고 육성하며 발전시키는 데 있다.’ 올해 마지막 메이저 PGA챔피언십을 치른 뉴저지 스프링필드에 있는 발투스롤 골프장의 모토다.

1895년 개장한 발투스롤은 1903년을 시작으로 US오픈만 7번, 2005년과 올해를 포함해 PGA챔피언십은 두 번 개최했다. 오로지 골프에만 집중하고 있는 명문 코스 발투스롤에는 슬픈 역사가 담겨 있다.

이미지중앙

발투스롤이 살던 집. [사진=PGA투어]


살인사건으로 생긴 이름
1831년 2월22일 발투스 롤(Baltus Roll)이라는 네덜란드 이민자 출신의 부유한 농부가 이름없는 산기슭에서 처참하게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사람들에게서 자꾸 거론되면서 이름없는 산은 희생자의 이름을 따 발투스롤산으로 명명되었다. 당시 사건이 후대로 전해지면서 33년 뒤에는 ‘금화 박스는 비어있었고 평화로운 집이 황량한 무덤으로 바뀌었다’로 시작하는 소설의 소재로도 응용되었다.

눈이 많이 쌓인 겨울 밤에 말 썰매를 타고 건장한 사내 두 명이 발투스롤의 저택에 도착했다. 롤의 미망인 수잔나는 당시 상황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현관문이 깨질 듯 열렸고 두 사람이 들어와 남편을 붙잡아 다짜고짜 때리더니 밖으로 끌고 나갔다. 그들은 나를 무시한 듯 했으나 나는 얼굴 큰 사내를 봤다. 큰 수염과 푸른 눈을 가졌다. 그들이 내 남편을 묶고 목 졸라 땅에 던졌다.”

쇼크와 두려움으로 현장에서 달아났던 수잔나가 다음날 오전 이웃사람과 함께 돌아왔을 때 집 밖에서 시체로 변한 발투스를 발견했다. 경찰은 48세의 피터 B. 데이비스와 그보다 젊은 리시디아스 발드윈으로 용의자를 좁혔다. 데이비스는 마약중독자이던 그 집의 옛 주인이었다. 당시 근거 없는 유언비어가 호사가들 사이에 나돌았으니 ‘발투스롤이 금화를 숨겨두고 있었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결국 금화도 없었고 불행한 희생자만 남았다.

수배령이 내려진 뒤에 용의자 발드윈은 잡히기 전에 마약 과용으로 자살했고, 넉달 후에 데이비스가 잡혔다. 유죄가 인정되면서 24년형이 내려졌지만 1843년 뉴저지 주지사에 의해 데이비스는 특별 사면되어 풀려났다.

이미지중앙

인근 공동묘지에 있는 발투스롤의 묘비. [사진=PGA투어]


발투스롤은 웨스트필드 공원묘지에 묻혔고 다음과 같은 은유적인 묘비명이 세워졌다. ‘내 무덤에서 눈물 흘리는 그대여, 마음을 편히 하라. 갑작스런 죽음에 대비하되, 축복 속에 영생하라.’ 당시 발투스롤이 살던 아담한 흰색의 오두막이 오늘날까지 코스 구석에 보존되고 있다.

덜 알려진 코스 설립자 켈러
1887년 뉴욕에서 월간지 <소셜레지스터>를 창간한 루이스 켈러가 뉴욕주 경계 27km 거리의 발투스롤산 일대를 사들여 1895년에 골프장으로 개장한다. 뉴욕 맨해튼 매디슨가에서 태어난 루이스 켈러는 부유한 집에서 자란 언론인이었다.

켈러는 낚시는 즐겼으나 골퍼는 몰랐다. 하지만 당시 많은 사람들이 골프에 몰두하는 트렌드를 파악하고는 골프장을 구상해 1895년에 2372야드의 9홀을 만들었다. 2년 뒤에는 18홀로 확장된 뒤에는 400명을 회원으로 받아들였다.

<발투스롤 100년사>를 쓴 릭 울프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오크몬트 골프장을 거론하면 누구나 설립자인 H.C.파운즈를 떠올리고, 메리온을 말하면 휴 윌슨을 연상한다. 켈러는 골프를 즐기지 않았다는 이유로 쉽게 잊혀진다. 하지만 자신의 땅에 골프장을 만든 것도 그의 아이디어였다. 골프장 자체가 켈러의 창작물이었다.’

즐기지도 않는 골프의 미래를 파악한 켈러의 아낌없는 희생과 후원 속에서 개장 8년 뒤인 1903년에는 US오픈이 처음 열렸다. 스코틀랜드의 노스베릭 출신 윌리 앤더슨이 첫 우승을 한다(앤더슨은 1910년에 30세 초반 나이로 요절했지만 US오픈 역사상 유일하게 3연패를 하고 통산 4승을 거둔 선수다).

설립자 켈러는 결혼도 하지 않고 평생 이 코스를 가꾸면서 살았다. 1922년 2월16일에는 당시 골프장 설계업계에서는 최고의 설계가로 이름높던 A.W.틸링허스트가 초빙되었다. 그리고는 인근의 부지를 더 사들여서 18홀 코스를 추가하기로 했다. 고도가 약간 높은 18홀이 어퍼(upper), 아래 부지에는 로어(lower) 코스가 된 36홀 골프장으로 재편된다. 애석하게도 골프장을 만들고 가꾼 켈리는 새로운 골프장이 공사 중이던 이듬해 64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이미지중앙

2005년 악천후로 인해 월요일까지 늘어진 승부 끝에 우승한 필 미켈슨.


최저타 기록의 산실

이후 발투스롤은 골프장의 모토처럼 US오픈의 명소가 되어 7번, PGA챔피언십이 2번이나 개최한다. 이 골프장에서의 가장 인상적인 기록이라면 1980년 US오픈 첫날에 잭 니클라우스와 톰 와이스코프가 동시에 메이저 최저타인 7언더파 63타를 친 사건이다. 그 대회에서 니클라우스가 우승했고, 와이스코프는 37위를 차지했다. 지난 2005년 PGA챔피언십에서는 토마스 비욘이 3라운드에서 역시 7언더파 63타를 친 뒤에 필 미켈슨에 1타차 2위로 대회를 마친 바 있다. 올해 대회에서는 로버트 스트렙이 2라운드에서 역시 63타를 쳐서 메이저 최저타 동타 기록이 역대 가장 많이 나온 골프장으로 기록됐다.

지난 2005년 PGA챔피언십에서는 마지막날 폭우와 천둥 번개로 2번이나 중단과 재개를 반복하다가 결국 대회 다음날인 월요일에 가서야 필 미켈슨이 챔피언으로 가려졌다. 올해 역시 3라운드날 천둥과 비가 내렸으나, 마지막 날에 36홀 라운드를 치르는 강행군 끝에 최종 우승자가 가려졌다. 37세에 첫날부터 선두를 차지했던 지미 워커였다.
이미지중앙

지미 워커가 올해 마지막날 17번 홀에서 버디를 잡아 한 타차 우승했다.[사진=AP뉴시스]



sports@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
          연재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