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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우올림픽] 희귀병 앓은 주세혁에게 박수를 보내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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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우 올림픽은 탁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수비전형 선수인 주세혁의 마지막 무대이다. 그런 그가 14일 스웨덴과의 8강전에서 신기에 가까운 플레이로 큰 감동을 줬다. [리우=뉴시스]


[헤럴드경제 스포츠팀=유병철 기자] 14일 밤 탁구선수 주세혁이 국내 주요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랐다. 메달이 걸린 경기도 아니었지만 ‘세계 최고의 수비수’ 주세혁의 신기에 가까운 플레이가 감동을 준 것이다. 그렇다. 이날 리우올림픽 탁구 남자단체 8강전 한국-스웨덴 경기에서 ‘깎신’ 주세혁의 플레이를 봤다면, 아주 역사적인 순간을 함께 했다고 할 수 있다. 세계 탁구사에 가장 위대한 수비선수의 마지막 올림픽을 동시대에 즐긴 것이기 때문이다. 좀 심한 찬사가 아니냐고 지적할 수도 있겠지만 한국 탁구대표팀의 맏형 주세혁은 이런 오마주를 받기에 충분한 선수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 탁구 역사에 남을 ‘아트 핑퐁’

탁구를 조금 아는 사람이라면 주세혁의 커트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알 것이다. 현대탁구에서 수비전형은 파워가 떨어지는 여자선수들에게는 어느 정도 유효하지만, 남자의 경우 2003년 주세혁이 등장하기 전 ‘사실상 멸종’이라는 평가를 들었다. 그런데 그해 주세혁은 파리에서 세계선수권 사상 아직도 한국 남자단식의 최고 성적으로 남아 있는 ‘준우승 쾌거’를 달성했다. 세계선수권은 중국선수들이 더 많이 출전하는 까닭에 올림픽보다 성적을 내기가 더 어렵다. 이 무대에서 23살의 ‘듣보잡’ 한국의 수비수가 세계를 놀라게 한 것이다. 당시 세계 최강으로 꼽히는 마린과의 8강전은 지금도 역대급 명승부로 남아 있다.

이후 주세혁은 수비전형 선수로는 처음으로 세계랭킹 10위 안에 이름을 올리고(2012년 3월에 5위까지 랭크), 각종 국제대회에서 늘 세계 정상권 선수로 호성적을 냈다. 시속 200km에 달하는 세계 톱랭커들의 파워 드라이브를 감탄이 나올 정도로 깎고 또 깎은 것이다. 2006·2010·2014 아시안게임 단체전에서 은메달을 따냈고, 올림픽에서도 2012년 런 던에서 단체전 준우승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랠리가 길다 보니, 탁구 중계가 별로 없는 국내보다 외국에서 인기가 더 높았고, 심지어 프로탁구의 최고봉인 중국 슈퍼리그는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 연속 주세혁을 초대했다. 그의 탁구는 ‘아트 핑퐁’으로 불리고, 외국에 나가면 간식거리를 가져다주는 진성팬들까지 있다. 주세혁은 런던 올림픽 이후 은퇴하려고 했으나, 국제대회에서 중국선수를 제외하면 웬만한 선수들은 주세혁이 다 잡아주는 까닭에 이번 리우 올림픽까지 은퇴를 미뤘다. 혈관이 부어 통증에 시달리는 ‘류마티스성 베체트’라는 희귀병을 달고 살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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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수비수까리.' 여자 탁구대표선수 서효원이 페이스북에 올린 주세혁의 사진.


# ‘명품 커트’만큼 매력적인 인품


탁구계에서 주세혁을 욕하는 이는 찾기가 힘들다. 적지 않은 나이에도 자기 관리가 뛰어나고, 늘 상대를 배려하는 성격 탓인지 그를 싫어하는 선후배가 없는 것이다. 여기에 아주 가정적이고, 제법 고소득을 올리는 성공한 탁구선수지만 늘 겸손하다. 또한 살짝 엉뚱한 유머감각도 있어 인기가 높은 것이다.

이와 관련해 몇 가지 일화가 있다. 유남규 삼성생명 감독은 ‘인간 주세혁’을 얘기하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2012 런던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딴 직후였다. 당시는 나는 소속팀이 없어 별도의 포상금이 없었다. 귀국하기 전 주세혁이 찾아오더니 ‘선생님, 수고하셨습니다. 이거 꼭 드리고 싶으나 받아주세요’라며 봉투를 놓고 갔다. 속으로 ‘스타 플레이어가 이러기 쉽지 않은데 녀석 괜찮네’라고 생각했다. 가방에 넣어두고 잊어버리고 있던 봉투를 한국에 와서 발견하고 뒤늦게 열어봤는데 또 놀랐다. 생각보다 많은 금액이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놀라서 돌려주려고 했는데 세혁이가 그걸 돌려받을 선수가 아니었다. 싫어할 수 없는 선수다.”

주세혁은 이번 리우 올림픽에서도 단식 출전권을 얻었지만, 후배 이상수에게 선뜻 양보했다. ‘나이도 많고 해서 단체전에 집중하기 위해서’라고 했지만, 단식 경쟁력이 국내 최고인 선수가 마지막 올림픽 무대에서 이렇게 자기 몫을 내려놓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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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세혁은 올림픽을 앞두고 자신의 페이스북에 자기 얘기는 올리지 않는 대신 IOC선수위원으로 출마한 선배 유승민의 홍보자료만 집중적으로 올려놨다.


지난해 12월에는 주세혁은 탁구계에서 ‘대인배’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종합선수권에서 새까만 후배 장우진(21)이 주세혁과의 경기에서 3세트를 먼저 따내고도 3-4로 역전패를 하자, 탁구공을 깨고 라켓을 집어던지는 결례를 범했다. 정작 주세혁은 불괘한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탁구계가 술렁였다. 장우진은 소속팀 KDB대우증권의 김택수 감독에게 눈물이 쏙 빠지도록 혼났다. 다음 날 장우진이 찾아와 사과를 했을 때 주세혁이 보인 반응이 화제가 됐다. “야! 나는 옛날에 너보다 더했었어.” 그렇게 한 마디로 쿨하게 사과를 받아주니 ‘대인배’라는 말이 나온 것이다.

다행히도 우리나이로 37살인 주세혁의 플레이를 올림픽에서 한번 더 리얼타임으로 즐길 기회가 생겼다. 주세혁의 1단식 승리 후 후배 정영식과 이상수가 2승을 보태며 14일 한국이 스웨덴을 꺾었기 때문이다. 4강 상대는 ‘절대강자’ 중국이다(한국시간 16일 오전 7시반). 승패를 떠나 올림픽에서, 아니 어쩌면 선수 주세혁의 마지막 플레이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가능한 많은 팬들이 본방사수로 그를 열심히 응원했으면 한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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