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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좌충우돌 여자야구 도전기] (5) 끝내기 홈런 같았던 우익수 뜬공 캐치!
여자야구뿐 아니라 사회인 야구에서 가장 수비부담이 적은 포지션은 아마 ‘우익수’일 것이다. 일단 좌타자가 많이 없을뿐더러 밀어치기에 능한 우타자 역시 거의 없기 때문에 주로 수비력이 약한 선수가 우익수에 배치된다. 머릿수를 채워야할 때 가장 먼저 고려되는 포지션이 우익수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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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서도 보이듯 우측이 짧은 홍은중학교 운동장.


두 번째 공식전에서 내 포지션은 우익수였다. 사실 이 날 어깨와 팔꿈치 상태가 썩 좋지 않았다. 빠질까 말까를 고민하다가 나온 터라 오전 훈련에서도 캐치볼을 걸렀다. 몸 상태도 좋지 않았을 뿐더러 당시 참석 인원도 12명으로 여유가 있었기에 당연히 벤치에서 경기를 시작하겠거니 생각했다. 갑작스럽게 결원이 생겼다. 준비가 되어 있을 땐 좀처럼 오지 않던 기회가 무방비 상태에서 찾아오고 만 것이다. 어깨는 덜 풀려있었고, 경기 직전 외야 펑고 훈련에서는 단 하나의 타구도 잡지 못한 채 경기는 시작됐다.

야구는 분위기와 흐름을 타는 스포츠다. 홍은중학교에서 진행되는 홍은리그 마지막 경기가 있었던 지난 21일. 1회초 타자일순 긴 수비 이후 공격에서 3점을 만회하며 3-7로 따라붙었다. 추격의 고삐를 막 잡아당긴 터. 하필이면 2회초 상대 중심타선과의 맞대결이었다. 어려운 승부가 예상됐으나 결과는 의외로 허무했다. 2회 수비를 끝내기 위해 필요했던 공은 단 4개였다. 공 2개로 상대 4번과 5번 타자를 손쉽게 투수 앞 땅볼로 처리, 2회말 공격까지는 아웃카운트 단 하나만을 남겨뒀다.

수비 시프트는 ‘신의 한 수’가 됐다. 6번 타자와의 승부를 앞두고 총감독님이 내게 전진수비를 지시했다. 운동장 특성상 우측이 좁아 1루수와 2루수 가까이 자리를 잡고 있었는데 조금 더 앞으로 당기셨다. 땅볼 타구가 올 경우 어쩌면 우익수 땅볼(아웃)도 노려볼 만한 위치였다. 상대 6번 타자는 우리 팀 선발투수의 2구째를 통타, 1루수와 2루수 사이에 높이 뜨는 타구를 때려냈다. 전진수비를 하지 않았다면 바가지 안타를 맞기 딱 좋은 코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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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자범퇴로 끝난 2회초 수비. 투수 땅볼 2개의 기운을 받아 우익수 뜬공으로 '필자가' 이닝을 마무리했다.


타구는 아주 정직하게 내가 잡을 수 있는 범위로 날아왔다. 공이 오기도 전에 글러브를 일찍 닫아버리는 나쁜 습관 때문에 하마터면 이날도 공을 놓칠 뻔 했지만 다행히 글러브 속으로 공이 빨려 들어왔다. 공을 잡았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 다시금 글러브를 확인했고, 그 안에 있는 공을 보고서 난 두 팔을 번쩍 들었다. 흡사 끝내기 홈런을 친 타자 같았다. 후에 이날 2루수로 출장했던 동생은 ‘언니니까 서서 잡았지 다른 사람이었으면 점프해서 겨우 잡거나 놓쳤을 거예요’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불규칙 바운드 볼에 맞아 턱이 찢어진 뒤 생긴 트라우마가 잠시간 잊혀진 순간이었다. 항상 파이팅 있게 플레이하는 막내가 마운드를 지키고 있었기에 꼭 아웃카운트 하나를 잡아주고 싶었던 간절함이 통했을까. 공에 대한 공포보다 내가 잡아야한다는 책임감이 그 순간 더 컸던 게 틀림없다. 흔하디 흔한 뜬공 수비 하나에 본인 일처럼 기뻐해준 팀원들의 표정이 아직 눈에 선하다. 그 표정들 때문이라도 야구를 잘하고픈 욕심이 더 커졌다. 아, 그리고 이날 흥분한 나머지 시합구를 글러브에 넣은 채 덕아웃까지 들어온 건 애교로 봐주시길.

*정아름 기자는 눈으로 보고, 글로만 쓰던 야구를 좀 더 심도 깊게 알고 싶어 여자야구단을 물색했다. 지난 5월부터 서울 W다이노스 여자야구단의 팀원으로 활동 중이다. 조금 큰 키를 제외하고 내세울 것이 없는 몸으로 직접 부딪히며 야구와 친해지려고 고군분투 중이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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