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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포츠 타타라타] 중국의 축구굴기, ‘자여우(加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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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억 분의 1의 남자' 표지.


# ‘13억분의 1의 남자.’ 격투기선수 표도르 에멜리야넨코의 별명(60억 분의1)을 차용한 듯한 제목의 이 책, 그냥 강추다. ‘시황제’로 불리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권력승계 과정을 다뤘는데, 일단 가독성이 뛰어나고 책 한 권으로 중국공산당의 흥미로운 궁중비화와 주요 인물에 대한 생생한 정보, 그리고 그 주변얘기 등 제법 푸짐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시진핑과 중국 권력핵심부를 이해하는 데 이만한 책도 없을 듯싶다. 저자가 일본기자인 까닭에 팩트가 신뢰를 더한다. 부수적으로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중국권력층들의 첩이 몰려산다는 ‘얼나이촌’, 박근혜 대통령의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이 ‘다카키 마사오’로 불리며 친일행위를 했다는 등의 깨알 같은 얘기도 기억에 남는다.

# 시진핑은 마오쩌둥-덩샤오핑-장쩌민-후진타오에 이어 중국 공산당의 5번째 지도자다. 그런데 5세대가 아니라 ‘2세대’라는 평이 많다. ‘제2의 마오쩌둥’으로 불릴 만큼 절대권력을 쥐고 있다는 의미다. 중국 공산당의 권력체계는 총서기 1인-정치국 상무위원 7인-정치국원 25인을 포함한 중앙위원 205명 등으로 짜여있다. 후진타오가 장쩌민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에 비해, 중앙위원 후보에서도 꼴찌였던 시진핑은 부패척결을 내세우며 황제와 같은 절대권력을 차지했다. 중국에서는 그의 말 한 마디에 모든 것이 좌지우지된다. 스포츠도 그렇다. ‘녹색아편’으로 불리며 빠른 속도로 퍼져나가던 골프가 부패의 온상으로 찍혀 주춤하는 대신, 시진핑이 광팬임을 자처하는 축구는 ‘축구굴기’로 불리며 위세를 떨치고 있다. 중국에 NBA붐을 일으킨 농구스타 야오밍이 공개적으로 “정부가 축구를 편애한다”고 푸념했을 정도다.

# 축구에 앞서 먼저 ‘굴기’를 좀 보자. 1980년대 덩사오핑은 ‘도광양회’(조용히 힘을 기른다)를 대외전략을 삼았다. 2002년 후진타오는 ‘화평굴기’(평화롭게 우뚝 선다)를 채택했다. 그리고 2012년에 집권한 시진핑은 뭐든 ‘굴기’다. ‘중국굴기’(대륙굴기, 대국굴기, 중화굴기)라는 캐치프레이즈 하에 정치굴기, 군사굴기, 문화굴기, 그리고 축구굴기까지 다 발딱 일어서겠다고 난리다. 2006년 CCTV는 역사다큐멘터리 <대국굴기>를 방영해 공전의 히트를 치며 이러한 ‘굴기천하’ 열풍에 불을 지폈다(이 프로그램도 강추). 다 좋은데 그 많고 많은 스포츠 중(탁구처럼 중국이 이미 세계를 평정한 종목도 다수 있는데) 왜 축구로 일어서려고 하는 것인가?첫째, 축구는 중국 최고의 인기스포츠이고, 둘째, 야구 농구 등은 아무리 해도 어차피 라이벌 미국을 제치지 못하고(축구의 중국발원설은 중국의 주장을 넘어 FIFA도 인정했다), 셋째 시진핑이 개인적으로 축구광이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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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영국 맨체스터시티 연습구장을 방문한 시진핑 주석(왼쪽)이 데이비드 캐머런 전 영국총리(오른쪽)와 아게로 선수와 셀피를 찍고 있다. [사진=맨시티 공식웨이보]


# 2013년 6월 중국축구는 6.15참사를 당한다. 태국과의 홈 평가전에서 참패한 것이다. 이에 시진핑 주석은 “용납할 수 없다. 국가적 역량을 동원해 원인을 파악하고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21세기 중국황제가 이렇게 말하면 설명이 필요없다. 2015년 2월 주석이 주재한 회의에서 ‘중국축구 개혁 종합방안’이 통과됐다. 축구가 학교체육의 필수과목이 됐고, 축구학교를 늘리고 선수를 집중 육성하고 있다. 이어 2014년 4월 중국국가발전개혁위원회는 ‘축구 중장기 발전계획(2016~2020년)'을 통해 2020년까지 축구 인구를 5,000만명으로 늘리고, 2021~2030년 남자대표핌을 아시아 최고로, 2031~2050년에는 남녀 대표팀을 세계 최강 수준으로 만든다는 목표까지 제시했다.

# 사회주의국가의 특성상 중국 굴지의 기업은 정부의 영향 하에 있다. 정부가 축구개혁영도소조를 만들어 2016년에만 40억 위안(한화 약 7,120억 원)을 쓴다고 하니 기업들도 ‘축구굴기’에 심하다 싶을 정도로 동참하고 있다. 중국 슈퍼리그의 각 팀들은 엄청난 돈을 들여 세계적인 선수와 지도자를 쉬지 않고 영입하고 있다. 아예 인터밀란, 아스톤빌라, 에스파뇰 등은 중국기업이 사들였고, 프리미어리그의 맨체스터시티나 프리메라리가의 AT마드리드는 상당지분이 중국자본으로 넘어갔다. 천연잔디구장 50면에, 2,500명의 선수, 150명의 지도자가 날마다 축구에 매진하는 ‘대륙의 축구학교’가 해외토픽으로 소개되기도 한다. 심지어 쿵후의 발원지 소림사(이것도 기업이다)가 무술유망주 1,000여 명 중 40명을 뽑아 ‘소림축구’에 착수한다는 영화 같은 일까지 벌어졌다. 어쨌든 중국이 축구굴기를 위해 벌이는 행보는 더 이상 뉴스거리가 안 될 정도로 보편화돼 버렸다.

# 난리다. 중국의 ‘축구굴기’가 허상이 아니라고 말이다. 지난 9월 1일 상암에 열린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A조 첫 경기에서 한국이 중국에 3-2로 진땀승을 거둔 게 계기가 됐다. 안방에서 3-0으로 이기다 2골을 추격 당했으니, ‘공한증은 유지했지만, 중국의 추격이 무서웠다’는 평이 대세를 이룬 것이다. 한국을 찾은 중국 축구대표팀의 서포터스(supporters)로 불리는 '치우미(球迷)'도 큰 조명을 받았다. 따지고 보면 놀랄 일이 아니다. 저렇게 많은 인구를 가진 나라가 저렇게 엄청난 돈과 열정을 들여 축구 경쟁력을 키우겠다면 그 속도는 차지하더라도 결국 발전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 아닌가? 호들갑을 떨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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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기와 노란색 치우미'. 1일 한중전에 1만여 명의 중국축구팬이 몰렸다. [사진=ossen]


# 반대로 ‘국뽕’의 자세로 애써 중국의 축구굴기를 폄훼하려는 속좁은 시선도 있다. 엄청난 투자로 몸값이 치솟다 보니 중국선수들은 유럽무대에 도전하지 않고, 자국리그에 안주한다. 그래서 한국과 일본처럼 유럽파 스타플레이어가 안 나온다. 슈퍼리그 득점 상위권에 중국선수는 별로 없다. 오히려 중국선수들의 기량이 퇴보하고 있다. 예선 탈락으로 리우 올림픽에 나가지도 못했고, 러시아월드컵 2차 예선에서도 북한이 필리핀에게 패한 덕에 간신히 최종예선에 진출한 것이 그 증거다. 우리네 축빠들 사이에선 ‘중국축구 아무리 돈을 써도 아직 멀었다’는 으스댐이 분명 있다.

# 그런데 중국의 축구굴기에 대한 두 극단, 즉 지난친 두려움이나 그 반대급부인 평가절하는 참 무용하다. 축구와 같은 스포츠도 문화다. 문화는 주변국가와의 접목을 통해 발전하는 게 상식이다. 얼마전 리우 올림픽에서 ‘스포츠에서 승리가 절대선이 아니다’고 얼마나 강조했던가? 그렇다면 한국 축구가 중국에 좀 지면 어떤가? 어차피 스포츠에서 영원한 승자는 없다면서. 오히려 중국이 축구굴기에 성공한다면 한국축구가 큰 덕을 볼 것이다. 지금도 한 수 위인 한국의 축구 선수와 지도자들이 중국에서 환영을 받는다. 중국축구가 세계 최고가 되면 우리도 절로 그 비슷한 수준에 맞춰지지 않겠는가? 유럽의 나라들처럼 말이다.

# 더 나아가 축구뿐 아나라 한국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고 있는 골프 같은 종목에서도 중국이 ‘굴기’를 일으켰으면 한다. 골프굴기 덕에 한국의 수많은 선수와 지도자, 그리고 골프산업종사자들이 중국에서 크게 활약하지 않겠는가?이미 바둑에서는 중국이 공한증(혹은 공이증-이창호를 두려워한다는 의미)을 넘어서면서 두 나라가 선의의 경쟁을 통해 세계 바둑을 리드하고 있다. 그래서 큰 소리고 격려하고 싶다. 중국축구 자여우(짜요)이고, 꼭 축구굴기에 성공하라고. 나아가 골프나 야구, 격투기 등 한국이 잘하는 다른 스포츠까지 좀 굴기 좀 하시라고. 군사굴기 이런 건 좀 자제하고. [헤럴드경제 스포츠팀=유병철 기자]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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