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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구를 혐오하던 소녀, 한국 당구의 '미래'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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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자 당구의 미래' 이미래(21 한국체대)가 지난 8월 27일 구리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16 세계여자3쿠션선수권 4강에서 일본의 니시모토 유코(세계랭킹 5위)를 28이닝만에 30-21로 꺾고 결승진출을 확정 지은 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날 세계랭킹 1위 클롬펜아워 테레스(네덜란드)와의 결승에선 승부치기 끝에 0-2로 석패했다. 하지만 그녀의 은메달은 한국 여자 당구 스리쿠션 역사상 첫 메달이다. [사진=코줌코리아]


[헤럴드경제 스포츠팀=지원익 기자] 한국 여자 당구 역사상 첫 메달이 나왔다. 주인공은 한국 여자 당구의 ‘미래’ 이미래(21 한체대)다. 이미래는 27일 경기도 구리시체육관에서 열린 세계여자3쿠션선수권대회 결승에서 세계 최강 클롬펜아워 테레스(네덜란드)와 연장까지 가는 접전을 펼쳤다. 승부치기에서 0-2로 져 정상을 내줬지만 당구계는 그녀의 노련함과 침착함에 놀랐다. 그녀가 나이가 이제 고작 스물한 살이기 때문이다.

이번 세계선수권은 이미래에게 첫 세계대회였다. 지난해 12월 일본에서 열린 여성프로3쿠션 한-일 교류전 외엔 해외경기 출전 경험도 없다. 이 대회서 세계랭킹 5위 니시모토 유코(일본)와 대등한 경기를 펼쳤던 이미래는 세계대회도 해볼 만하다는 생각을 했다. 여기에 올해 초 한밭배 왕중왕전과 8월 대전광역시장배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자신감에 차 있었다. 하지만 그만큼 부담도 많았다고. 그녀는 “이틀 전부터 긴장했다. 남녀가 함께 경기하는 월드컵이 아니라 여자만 출전하는 세계선수권이여서 좋은 성적을 내야한다는 압박감이 있었다”며 그때를 회상했다. 이어 “예선에선 정말 긴장했었다. 그런데 한 명 한 명 이기고 올라가면서 자신감이 붙었다. 결승에선 긴장이 조금 완화되면서 더 열심히 집중하게 됐다”며 당찬 모습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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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래가 준우승을 차지한 후 시상대에 올라 해맑은 웃음을 보이고 있다. [사진=코줌코리아]


텔레비전 출연 등 유명세 '부담되지만 행복'

이미래는 2015년 ‘죽방전설’, 2016년 ‘마이리틀텔레비전’이란 프로그램을 통해 텔레비전 전파를 탔다. ‘당구계의 김연아’라는 수식어가 붙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그렇게 불리는게 좋지만 그 수식어를 붙이기엔 내가 아직 부족한 것 같다”며 손사래를 쳤다. 연예계 진출 여지가 있냐는 기자의 짓궂은 질문에 “연예계에 진출하려면 실력을 먼저 갖춰야 한다. 이번 세계대회가 최고의 컨디션이었는데 2등밖에 기록하지 못했다”며 “아직 한참 멀었다”고 말했다.

한 번은 지하철에서 사진을 같이 찍어달라는 요청을 받기도 했다고. “얼떨결에 사진도 같이 찍었다. 팬이라는 말에 기분이 좋았다” 요즘 부쩍 언론의 관심이 늘어난 것에 대해선 “인터뷰 요청이 자주 들어온다. 관심이 조금 많아진 것 같은데 사실 조금 부담스럽다. 물론 지금도 많은 관심을 받게 된 것은 아니지만”이라고 했다. 하지만 한 편으론 사람들의 관심이 행복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알아봐주셔서, 그리고 기억해주셔서 감사하다” 당구는 잘하고 싶지만 유명해지고 싶진 않은, 그런 앳된 소녀의 모습이 그녀에게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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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맑은 미소' 큐대 앞 카리스마와는 달리 일상생활에선 먹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많은 스물 한 살 소녀 이미래.


한때 당구를 혐오, 그래도 승부욕만은 남달라

이미래는 현재 여자 3쿠션 세계랭킹은 3위, 국내에선 2위다. 그런 그녀에게 당구를 어떻게 시작했는지 물었다. 그녀의 입에선 의외의 대답이 나왔다. 자의가 아닌 타의로 당구를 시작했고, 이 때문에 한동안 당구를 싫어했다는 것. 그녀가 당구와 인연을 맺은 건 성남 당촌초등학교 6학년이다. 퇴직하고 소일거리 삼아 주말마다 당구장에 나가던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다녔다. 그녀의 아버지는 성남시 당구연맹 부회장을 맡을 정도로 당구에 조예가 깊다.

당구를 왜 시작했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미래는 “이유가 없다”며 단호히 말했다. 이미래는 기자의 당황에 웃음을 보이며 “아버지에 끌려 다녔다. 아버지는 아무 이유 없이 담배 냄새나는 당구장에 날 데리고 갔다. 당시 애들과 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당구장에 갈 수밖에 없었다. 처음엔 당구를 치지 않고 그냥 앉아만 있었다. 그러니 당구가 싫을 수밖에. 그래도 아버지는 아랑곳 않고 날 데리고 다니셨다”며 지난날을 회상했다.

그렇다면 그녀는 언제 당구를 시작했을까? “그렇게 당구장에 앉아만 있던 어느 날, 아버지는 날 당구아카데미에 데리고 가셨다. 그곳은 기존 당구장과는 달리 깨끗하고 넓었다. 무엇보다 담배냄새가 없어 너무 좋았다. 뛰어놀기에도 좋았다.(웃음)” 이후 그녀는 아카데미에서 당구를 배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중학교 내내 울며 겨자 먹기로 운동을 계속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마음과 달리 성적은 잘 나왔다.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전국체전 금메달을 포함해 성인들과 겨루는 각종 프로대회에서 상을 휩쓸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녀는 당구를 계속 한 이유에 대해 “승부욕 때문”이라고 했다. 그녀의 승부욕은 남다르다. 2015년 한국체육대학교 사회체육학과의 입학 정원은 남녀 구분 없이 포켓볼과 캐롬(스리쿠션) 각 1명씩이었다. 당구가 아무리 ‘멘탈 스포츠’라지만 그래도 남녀 차이는 엄연히 존재한다. 때문에 과거부터 여학생보단 남학생의 입학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하지만 이미래는 당시 남자 수험생들을 실력으로 제쳤다. 그녀는 “1등이 아니면 안 되는 것이었기 때문에 남자 선수들과 경쟁에서 무조건 이겨야 했다”고 밝혔다.

생소한 여자 3쿠션 '전망 없는 시장인가, 블루오션인가'

이미래를 억지로 당구장에 끌고 왔던 그녀의 아버지도 나름 사정이 있었다. 국내에선 캐롬 종목이 포켓볼보다 인기가 많다. 하지만 해외는 반대다. 더군다나 여자 캐롬은 더 흔치않다. 한국, 일본, 유럽의 몇 개국을 제외하곤 여자선수를 찾아볼 수 없다. 아버지는 이 틈을 노렸다. 블루오션을 꿈꾼 것. 하지만 블루오션을 개척하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이미래는 분당 보평중학교를 거쳐 보평고등학교에 진학했는데, 당시 보평고에는 당구부가 없었다. 그녀는 고등학교 3년 내내 정규 수업을 모두 마친 뒤 클럽으로 가서 밤 12시까지 훈련하는 고된 생활을 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에는 선생님들께 허락을 받아 당구 동아리를 직접 만들었다. 그렇게라도 시간을 빼고 싶었다. 그녀는 그때를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기”라고 했다.

대학 진학 후 기업 스폰서를 받을 때도 힘든 점이 많았다. 관심도가 떨어지는 종목이다 보니 스폰서 제의가 없었다. 그녀는 꽤 오랫동안 스폰서 없이 선수생활을 계속했다. 그러다 운좋게 지금의 스폰서(주식회사 한밭)를 만났다. 현재 이미래는 스폰서로부터 큐, 큐대, 큐 여행가방 등을 지원받고 있다. 올 여름엔 거액의 장학금도 받았다고.

이미래는 잘 풀린 경우다. 계속 좋은 성적을 계속 내고 있고 ‘한국 여자 당구 역사상 첫 메달’이라는 타이틀 덕분에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게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선수들은 선수생활에 난항을 겪고 있다. 그녀는 “이미 포켓볼 시장이 미국, 영국, 중국, 대만 등을 중심으로 커졌다. 하지만 캐롬 시장은 아니다. 세계적으로 관심도가 떨어진다. 하지만 한국 여자 3쿠션에 좋은 선수들이 계속 나오고 있다. 그 선수들에 관심을 갖고 키운다면 분명 좋은 블루오션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덧붙여 “세계선수권에서 준우승을 차지하자 단숨에 세계랭킹이 3위로 뛰어올랐다”라며 눈에 힘을 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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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숨에 세계랭킹 3위' 세계여자3쿠션선수권대회서 준우승을 차지한 이미래는 '한 큐에' 세계 3위가 됐다. [사진=세계당구연맹 홈페이지 캡쳐]


당구 때문에 힘들었던 시기, 이겨낸 이유도 당구

이미래는 중고등학교 6년 내내 지속된 고된 생활이 대학 가서 끝나나 기대했다. 하지만 대학생활도 기대완 달리 고등학교의 연장선이었다. 수업을 선택할 수 있는 대학의 특성상 시간이 많아졌다. 하지만 여전히 여유는 없었다. 부모님 때문이다. 이미래는 “부모님 입장에선 나의 여유 없는 시간이 당연했다. 오랫동안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생각이 다르니 말도 통하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이미래는 반항하지 못했다. 성격 자체가 그랬다. 묵언수행으로 항의했다. 자연스럽게 부모자식간의 대화가 끊겼다. 당구는 더 재미없어졌다. 당연히 성적도 하락했다. 부모님은 더 다그쳤다. 그렇게 감정의 골은 더 깊어졌다. 유일하게 부모님께 애교를 부리던 막내딸의 애교가 없어지자 집안 분위기가 삭막해졌다.

그녀가 갖고 있던 고민은 당구로 해소됐다. 대회가 가까워지기 시작하면서 그녀는 다시 훈련에 매진했다. 그리고 호성적을 거뒀다. 시상대에 올라가니 감정이 북받쳐왔다. 문득 이곳에 올라올 수 있도록 지원한 부모님이 생각났다. 미안한 것도 생각났다. 그녀는 “가족이니까 먼저 다가가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할 것 같았다”며 그때의 감정을 설명했다. 천주교 신자인 이미래는 어느 주일날 성당에서 부모님께 속마음을 보였다. 미사 중에 “부모님 (그때)심했어요”라며 귀여운 투정을 부린 것. 이후 부모님도 마음을 열고 막내딸을 보듬어줬다. 요즘 집안분위기를 묻는 질문에 “다시 예전으로 돌아갔다”며 안도했다. 가정의 안정은 세계선수권에서의 준우승으로 연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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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는 소녀' 경기 도중 기도 하고 있는 이미래. 그녀는 천주교 신자다. 세례명은 유스티나다. [사진=Life time Photo]




담배냄새 자욱·‘노는 형들’의 스포츠에서 남녀노소 즐기는 스포츠로

캐롬의 매력에 대해 물었다. 이미래는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생각할 수 있는 스포츠”라고 말했다. 어린 시절 바둑, 오목, 퍼즐과 같이 ‘머리 쓰는’ 놀이를 즐겼던 그녀는 몇 년 전부터 3구를 비롯한 캐롬을 사랑하기 시작했다. 포켓볼과는 또 다른 유형의 전략 스포츠라는 점에 매료됐다. 예전엔 캐롬, 혹은 스리쿠션·포쿠션이라고 하면 자욱한 담배 연기에 한 잔 술을 걸친 남성들의 거친 목소리, 불량 청소년 탈선의 공간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하지만 최근 생각하는 스포츠로 잘 알려진 까닭에 여성 캐롬인구가 늘어나면서 당구의 대중화에도 탄력을 받고 있다.

전국에 금연 당구장이 많아진 것도 대중화에 기여하고 있다. 대한당구연맹에 따르면 전국 당구장 이용객수는 2014년에 이미 2만 3,000개를 넘어섰다. 체육시설 중 40.37%에 해당하는 수치다. 하루 평균 내방객 수는 100만 명 이상으로 인구수 비례 세계 1위 인프라다. 경기 시청률이 프로축구와 프로농구를 앞지를 때도 있다. 이미래는 “여자도 얼마든지 스리쿠션을 칠 수 있을 만큼 당구장이 더욱 건전한 여가 스포츠의 공간으로 발전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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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래는 “흥분하지만 않으면 정신을 다잡을 수 있기 때문”에 경기 도중 상대방을 보지 않는다. 공만 바라볼 뿐이다. [사진=Life Time Photo]


이미래의 경기를 보면 표정이 없다. 상대를 잘 쳐다보지 않는다. 때문에 매너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당구 팬들 사이에선 ‘예의가 없다’는 평가를 하기도 한다. 그녀의 생각은 다르다. 당구는 정신적인 부분이 상당수를 차지한다. 때문에 그녀 나름대로 정신을 집중하는 방법을 고안했다. ‘상대방을 보지 않는다. 공만 생각한다.’ 그녀는 “외부 상황때문에 흥분하지만 않으면 정신을 다잡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도 경기가 끝나면 카리스마는 온데 간데 없고 해맑은 스물한 살 소녀로 돌아간다.

그녀가 이번 세계선수권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건 그녀의 말에 따라 “다행”일지도 모른다.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계속 위로 치고 올라갈 수 있기 때문”이다. 탄탄한 기본기와 나이에 어울리지 않을 만큼의 차분함, 그리고 쌓여가는 세계경험이 그녀를 더 발전시킨다면 단순한 한국 여자 당구의 ‘미래’가 아닌 ‘현재’도 될 수 있지 않을까.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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