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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늘집에서] 잭보다 아니를 꿈꾸는 전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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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하이트진로 챔피언십 최종라운드 도중 활짝 웃고 있는 전인지(왼쪽). [여주=채승훈 기자]


[헤럴드경제 스포츠팀=이강래 기자] 지난 9월 26일 타계한 아널드 파머는 프로골퍼로 큰 성공을 거둔 인물이다. 그는 공격 일변도의 호쾌한 골프와 겸손함, 친근함을 무기로 골프 대중화를 이끈 슈퍼스타였다. 블루 컬러를 대표하는 털털한 이미지의 파머는 전성기 때 ‘아니의 군대(Arnie’s Army)’로 명명되는 구름 관중을 몰고 다녔다.

그와 비교되는 인물이 ‘황금곰’ 잭 니클러스였다. 잭은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도 깨지 못한 메이저 최다승(18승)을 보유중인 ‘전설’로 현역시절 파머를 압도하는 기량을 뽐냈다. 하지만 인색하고 괴팍한 성격이었기에 팬들은 파머를 더 좋아했다. 파머는 엘리트, 상류층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골프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 넣었다.

전인지(22 하이트진로)는 잭 니클러스보다는 아널드 파머가 되기를 원한다. 실력보다는 인품과 친화력으로 사랑받는 선수가 되기를 희망한다. 전인지가 파머의 마지막 친필 편지를 받은 것은 우연이 아닌 듯하다. 파머는 죽기 며칠전 에비앙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전인지에게 “젊은 나이에 메이저 대회에서 대기록으로 우승한 것을 축하한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전인지의 강점은 골프에 대한 개념이 확실히 정립되어 있다는 점이다. 골프는 경쟁자가 아닌 ‘코스와 나 자신과의 싸움’이란 것이다. 대적할 상대가 코스이기 때문에 우승을 다투는 경쟁자들을 미워하지 않는다. 동반자가 버디를 하면 박수를 보내는 이유다. 그런 마음 씀씀이는 좋은 기운을 불러 들인다.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하지 못해도 전혀 아쉬워하지 않던 파머와 비슷하다.

지난 주 하이트진로 챔피언십이 열린 여주 블루헤런 골프클럽에서 만난 전인지는 “올시즌 LPGA투어를 뛰면서 얻은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상상력”이라고 대답했다. 상상력은 ‘골프는 물리학’이라는 생각에 기초한다. 골프는 에너지 총량을 어떻게 전달하느냐의 게임이란 것이다. 퍼팅도 세기나 터치 감에 따라 성공하는 길이 수십 가지라는 게 스윙 코치인 박원 원장의 설명이다. 바이올린을 연주할 때 어떻게 에너지를 쓰느냐에 따라 음(音)이 달라지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전인지는 프로스포츠에 대한 개념 정리도 확실히 되어 있는 선수다. 전인지는 경기를 하면서 한 번도 화를 내본 적이 없다. 가정이 있는 팬들이 주말에 가족과의 시간을 포기하고 자신의 경기를 응원하기 위해 멀리 차를 몰고 와 대회장을 찾았다는 생각 때문이다. 팬들을 매료시킬 경기력을 발휘해야 하는 건 기본이다. 전인지의 팬 클럽인 ‘플라잉 덤보’의 회원수가 8,000명이 넘어간 것은 우연이 아니다. 파머 역시 팬 우선주의자였다. 파머는 승부처에서도 갤러리와 격의없는 대화를 나눴다. 또한 아무리 줄이 길어도 마지막 한 사람에게까지 정성스럽게 사인을 해줬다.

전인지는 지난해 5월 일본여자투어 살롱파스컵에서 우승한 뒤 3,000만 원을 동일본 대지진 피해자들을 위해 기부했다. 그리고 두 달 뒤인 7월 US여자오픈에서 우승한 뒤 대회가 열린 랭카스터지역 자선단체에 1만 달러를 쾌척했다. ‘플라잉 덤보’ 회원들은 작년 연말 전인지와 함께 4,000만 원을 아름다운재단에 기부했다. 이런 기부활동은 올해도 계속되고 있다. 전인지는 많은 돈을 벌었지만 자선활동에 아낌이 없다. 그녀가 지독한 가난을 딛고 세계적인 선수가 됐다는 것은 이런 좋은 마음과 무관치 않다. 전인지는 “기부행위는 앞으로 전진하는 힘을 준다”며 “큰 사람이 되어야 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파머는 대표적인 자선사업가였다. 미국 여러 지역에 여성과 어린이를 위한 병원을 설립해 소외계층에게 의료혜택을 주는 등 성공의 열매를 나누는 데 열심이었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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