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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포츠 타타라타] 골든벨게이트와 ‘어떤 관료들’

# 그냥 무작정 시 한 편을 읽어보자. 워낙 시를 접하지 않는 시대이니, 좀 생뚱맞아도 이렇게라도 가끔 시를 접하는 편이 좋을지도 모르겠다.

어떤 관료

관료에게는 주인이 따로 없다.
봉급을 주는 사람이 그 주인이다.
개에게 개밥을 주는 사람이 그 주인이듯!

일제 말기에 그는 면서기로 채용되었다.
남달리 매사에 근면했기 때문이다.

미군정 시기에 그는 군주사로 승진했다.
남달리 매사에 정직했기 때문이다.

자유당 시절에 그는 도청과장이 되었다.
남들리 매사에 성실했기 때문이다.

공화당 시절에 그는 서기관이 되었다.
남들리 매사에 공정했기 때문이다.

민정당 시절에 그는 청백리상을 받았다.
반평생을 국가에 충성하고 국민에게 봉사했기 때문이다.

나는 확신하는 바이다.

아프리칸가 어딘가에서 식인종이 처들어와서
우리 나라를 지배한다 하더라도
한결같이 그는 관리생활을 계속할 것이다.

국가에는 충성을 국민에게는 봉사를 일념으로 삼아
근명하고 정직하게!
성실하고 공정하게!

# 대학에 다닐 때 소속 문학동아리가 김남주 시인을 초청해 강연회를 가졌다. 그 덕에 뒤풀이 때 가까이서 그를 봤다. 솔직히 강연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이미지는 이상하게도 어제 본 것처럼 선명하게 남아 있다. 작은 키에 거무데데한 얼굴, 조용한 말소리. 뿔테안경만 아니면 그냥 농부 같았다. 무엇보다 시인의 눈동자는 이제껏 살아오면 본 접한 사람 중 가장 까맸다. ‘강도시인’이 그 유명한 남민전 사건 때 재벌집을 털다가 잡혀 사상범+강도범으로 징역(무기형)을 살다가 풀려난 지 몇 년 안 됐을 때였다(몇 년 후인 1994년 작고). 그러니 그 존재만으로 아우라가 대단했다. 시인이라기보다는 전사에 가까웠고, 혁명이라는 단어가 진짜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이때의 혁명은 요즘 광장에서 말하는 유쾌한 ‘시민혁명’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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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남주 시인.


# 갑자기 김남주 시인의 ‘어떤 관료’가 생각난 것은 며칠 전 준공무원 격인 국민체육진흥공단의 직원 몇 명과 연쇄통화를 했기 때문이다. 2014년 5월에 시작된 스포츠토토 위탁사업자 선정과 관련된 의문이, 최근 김종 전 문체부 차관의 직권남용(일명 골든벨 게이트)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황당하게 풀리고 있다. 당시 큰 문제의식을 가졌으나 게으름 탓에 후속 취재를 못했는데 최근 타 언론사(주로 정치영역)의 보도를 보고, 그 진상을 접한 것이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뒤늦게나마 전화취재를 시도한 것이다. 그런데 황당했다. 통화 도중 “잠깐만요, 녹음 좀 할게요”라고 말할 정도였다. 한 사람은 다짜고짜 해당기사를 심하다 싶을 정도로 근거없이 깎아내렸기 때문이다. “지금 하시는 말 책임질 수 있느냐?”고 물으니 이내 사과를 했다. 또 한 사람은 정작 물어본 사건의 진상은 답하지 않고, “케이토토 측이 체육복권 공영화를 막기 위해 언론플레이를 했다”고 장황설을 늘어놓았다.

# 사건의 개요는 이렇다. 2014년 5월 조달청 입찰을 통해 케이토토(현 스포츠토토 위탁사업자)가 체육복권 위탁사업자의 1순위 업체로 선정됐다. 그런데 문체부와 국민체육진흥공단(이하 공단)이 차례로 딴죽을 걸었다. 입찰공고 때는 없었던 새로운 조건을 만들어 위반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2위업체였던 팬택컨소시엄(이하 팬택)이 가처분신청을 냈다. 그리고 이것이 법원에서 받아들여졌다. 당연히 조달청 vs 팬택의 법정싸움이 시작됐다. 정부와 민간기업의 소송이다. 그런데 같은 국가기관인 문체부와 공단이 팬택 편을 들고 나섰다. ‘우리(공단)가 책임을 질 테니 팬택과 빨리 계약을 하라’고 조달청에 주문한 것이다. 항소심에서 케이토토가 승소하면서 이해하기 힘든 이 사건은 일단락됐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사업자 선정이 늦어졌고, 600억 원이 넘는 체육진흥기금이 조성되지 못했다.

# 위 개요는 2016년 4월에 나온 감사원의 공식 감사결과서에 나온 내용이다(공단과 문체부는 이 감사보고를 공개하지 않고 쉬쉬했다). 문체부의 김종 차관이 관련 사항을 보고 받았다는 내용까지 나온다. 감사원은 문체부의 관리/감독 소홀을 문책했고, 공단의 관련 직원 두 명은 징계를 요청했다. 또 김종 차관은 케이토토 대표에게 자신이 회장을 맡았던 협회의 회장자리를 맡겼고, 지인 두 명을 케이토토에 취직시켰고, 심지어 케이토토 빙상단을 만들어 장시호 씨와 가까운 이규혁 씨를 감독에 앉혔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케이토토는 지난달 30일 김종 전 차관과 이창섭 국민체육진흥공단 이사장(김종 차관과 뉴멕시코대학 동문)을 직권남용 및 업무방해로 고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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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승줄에 묶인 실세차관.' 김종 전 문체부 차관이 지난달 29일 오후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으로 들어가고 있다. [사진=뉴시스]


# 2008년초 ‘공무원에게 영혼이 없다’는 말이 유행했다. MB정부 인수위가 업무보고를 받을 때 국정홍보처의 고위인사가 이렇게 말한 것이 계기가 됐다. 공무원은 윗사람(정권)이 시키는 대로 할 뿐이라는 자조적 표현이다. 사실 ‘영혼 없는 관료’는 그렇게 부정적 표현이 아니다.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가 처음 사용한 것으로 ‘근대 관료제에서는 개별적 인격이 아닌 제도적 합리성과 전문성이 더 중요하다’는 취지이다. 하지만 이 표현은 한국에서 후자보다는 조금은 못되게 들리는 전자로 통용된다. 이런 일에 훨씬 앞서 김남주 시인은 ‘어떤 관료’라며 그들의 작태를 꼬집었던 것이다.

# 스포츠토토 파문에 대해 공단 측의 입장을 듣기 위해 전화취재를 시도했는데, 해명이 아닌 노컷뉴스 기사에 대한 노골적인 공격과 케이토토를 물어뜯으니 적반하장이 아닐 수 없다. 지금까지 나온 것, 그러니까 감사원 결과만 보더라도 명확한 사실이 하나 있다. 김남주 시인이 지적한 ‘어떤 관료’들이 비선 실세를 등에 업은 실세 차관과 함께 자기들 마음대로 권력을 휘둘렀다는 점이다. 이에 대한 명쾌한 해명은 없고, 감추고 축소하려는 못된 심보만이 느껴진다. 2013년 문체부의 노태강 체육국장과 진재수 체육정책과장은 제대로 일을 처리했지만, 최순실과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나쁜 사람’으로 찍히며 좌천 및 경질됐다. 영혼이 있는 공무원이 다친 것이다. 아직 한국에서는 위의 두 사람처럼 제대로 된 공무원보다는 ‘어떤 관료’가 수적으로 더 많은 듯싶다. 그래서 이 ‘어떤 관료들’한테 엄청난 돈이 오가는 스포츠토토의 공영화를 맡길 수 없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기분이 더럽지만 이게 교훈이라면 교훈이다. [헤럴드경제 스포츠팀=유병철 기자]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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