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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포츠 타타라타] 과유불급이 생각나는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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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최인호 작가의 소설 <유림2>. 공자의 삶에 관심이 있다면 꼭 한 번 읽어볼 만한 책이다.


# 언제가 이 칼럼을 통해 고(故) 최인호의 소설 <유림>을 언급했다. 제1권 ‘하늘에 이르는 길’이었는데 ‘주초위왕(走肖爲王)’으로 유명한 비운의 개혁가 조광조를 통해 ‘누명’을 화두로 삼았다. <유림>은 모두 6권이다. 그중 제2권은 ‘주유열국, 사람에 이르는 길’이라는 부제와 함께 공자의 삶을 다뤘다. 최인호의 <소설 공자>와 내용이 거의 같은데, 공자의 인간적인 모습이 아주 인상적이다. 이 책에는 공자가 주인공인 까닭에 많은 사자성어가 나온다. 그중 하나가 그 유명한 과유불급(過猶不及)이다. 어느 날 제자 자공(며칠 전 세월x라는 다큐멘터리로 유명세를 탄 그 자로)가 공자에게 묻는다. “자장과 자하 둘 중 어느 쪽이 더 현명합니까?” 공자는 답한다. “자장은 아무래도 매사에 지나친 면이 있고, 자하는 부족한 점이 많다.” 자공이 다시 묻는다. “그렇다면 자장이 낫겠군요?” 이에 공자는 다시 답한다. “그렇지 않다. 지나침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過猶不及).” 따지고 보면 제1권의 조광조도 지나치게 잘나서 과유불급을 초래했다고 할 수 있다.

# 지난주 미디어비평 매체에 근무하는 한 후배로부터 전화가 왔다. “선배, 스포츠 전문기자가 보기에 ‘정유라 IOC선수위원 만들기’는 좀 심한 거 아니에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대통령에게 지시를 내리고, 장차관도 우습게 아는 최순실 일당이니만큼 뭐 그렇게 꿈을 꿀 수는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IOC선수위원은 직전 올림픽에 출전해야 하고, 해당국가 NOC에서 추천을 받은 후 올림픽 현장에서 참가 선수들의 투표로 결정되는 만큼 한 국가 차원에서 권력과 돈을 가졌다 하더라도 장담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정유라는 빨라야 2020년 도쿄 올림픽 출전, 2023년 국내 예선, 2024년 하계올림픽 현장투표 등의 과정을 모두 통과해야 한다. 3가지 관문 모두 박근혜 정권이 종료된 후에 열린다. ‘죽을 죄를 지었지만 범죄는 저지르지 않았다’고 하는 ‘참 나쁜 사람’들이라고 해도 이 허황된 목표를 위해, 박태환과 김연아를 못살게 굴고, 장미란 진종오를 한국예선에서 떨어뜨렸다고 추론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 상황이 이런데도 모 언론은 정유라를 IOC선수위원-국회의원(여기까지는 문대성과 같다)으로 키우고 나중에는 대통령으로 만들려고 했다는 소설 같은 얘기를 전하기도 했다.

# 한 스포츠단체는 최순실 국정농단 때문에 최근 난데없는 곤역을 치렀다. ‘최순실의 심부름꾼’으로 밝혀지고 있는 김종 전 문체부차관이 이 단체의 창설을 주도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모 신문이 10여 명의 직원이 1,000억 원이 넘는 예산을 쓴다고 과장 보도를 해 협회가 국회와 관련기관에 이를 해명하느라 진땀을 흘린 것이다. 김종 전 차관이 이 단체의 창설에 기초를 놓은 것은 맞다. 하지만 취재한 결과, 프로구단에 대한 성과평가, 정책사업 및 프로스포츠 공통사업 등 이 단체는 생각보다 의미 있는 일을 많이 한다. 자신들의 의사대로 집행하는 예산도 많아야 150억 원, 적으면 60억 원 선이다. 한 마디로 예전에는 엉성하게 쓰였던 체육진흥투표권 수익금을 합리적으로, 그리고 투명하게 쓰는 일을 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 나쁜 사람이 좋은 일을 할 수도 있는 법이다. 세상은 만화영화처럼 흑백구분이 또렷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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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 전 문체부 차관의 범죄는 처벌받아 마땅하다. 그런데 그가 한 일 중 잘한 것도 매도할 필요가 있을까. [사진=뉴시스]


# 세 번째 과유불급은 가장 황당하다. 체육진흥투표권 위탁사업자인 (주)케이토토는 김종 전 차관 등이 개입된 최순실 세력의 농간에 큰 피해를 입은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지난해 조달청 입찰과정에서 위탁자인 국민체육진흥공단과 문화체육관광부가 노골적인 2위업체 밀어주기를 시도한 까닭에 불필요한 법정소송 등을 거치며 사업개시가 1년 이상 늦어졌다. 이는 감사원의 공식 감사결과보고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이다. 심지어 케이토토가 얼마 전 언론보도 후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 진보진영 쪽 언론매체 2곳이 케이토토 쪽에 ‘제보가 들어왔다’며 “케이토토 주주의 집안사람과 최순실이 친하고, 이 때문에 케이토토가 사업자로 선정된 것이 아니냐?”며 취재를 시도했다. 이건 아예 적반하장이다. 해당인사와 최순실은 친분관계가 전혀 없다. 또 피해자 케이토토가 손바닥 뒤집듯 가해자가 되는 것은 설명할 도리가 없다. 업계에서는 케이토토에 악감정을 가진 특정인이 최순실 사태를 악용하려는 것이 아닌가 추론한다. 다행히도 이와 관련된 내용은 기사화되지 않았다. 기본적인 사실관계만 파악해도 그 황당함이 쉽게 밝혀지기 때문일 것이다.

# 모처럼 언론이 ‘사회의 공기(公器)’ 노릇을 제대로 하고 있다. 그 긴 세월 동안 침묵으로 일관했고, 이제사 죽어가는 권력에 대한 칼질로 느껴져서 아쉽기는 하지만, 최순실 국정농단과 관련해서는 정치인이나 경찰, 판검사들보다 언론이 훨씬 믿음직스럽다. 하지만 지나친 보도경쟁으로 사안의 본질과 동떨어진 선정적 기사, 자극적인 제목의 보도를 쏟아내는 것은 좀 불쾌하다. 특히 아예 합리적 정황이나 근거 없이, 흑백논리에 기반해 오보에 가까운 문제제기를 하는 것은 큰 문제다. 실수를 넘어 또 하나의 악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자협회보>의 보도에 따르면 배정근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지난달 30일 열린 한국언론문화포럼에서 이렇게 말했단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보도는 이제 권력의 비리를 파헤치는 긍정적 측면보다 과열경쟁 보도로 인한 부작용을 우려할 상황이다”라고. 공자님은 공손도 지나치면 예가 아니라고 했다(過恭非禮). 그러니 보도는 말할 것도 없다. [헤럴드경제 스포츠팀=유병철 기자]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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