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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영섭의 링사이드 산책] KBF 이인경 회장과 88프로모션의 심영자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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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경 KBF회장과 심영자 회장, 그리고 국내 최대 규모의 복싱체육관을 운영 중인 홍성민 관장.


‘극과 극’ 한국 프로복싱의 과거와 현재

1965년 12월 4일 서강일(39년.서울)이 최초의 세계타이들전(WBA 주니어라이트급)을 벌인 이후 한국 프로복싱은 2006년 12월 17일 WBC 페더급 타이틀전에서 지인진(73년생,대원체)이 멕시코의 로돌프 로페즈를 꺽고 정상에 재등극할 때까지 41년 동안 43명의 세계 챔피언을 배출하고, 총 51회에 걸쳐 챔피언벨트를 차지하는 전성기를 맞이 했습니다(참고로 2회씩 챔피언 벨트를 두른 챔피언은 홍수환 최점환 이열우 문성길 지인진 박종팔 유명우 김용강).

하지만 그후 10년의 세월이 훌쩍 지났지만 세계 챔피언은커녕 동양챔피언 하나 없는 침체기를 겪고 있는 게 한국복싱의 현주소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치러진 제3회 KBF 신인왕전을 참관하기 위해 모처럼 한 시대를 풍미했던 88프로모션 심영자(43년생,군산) 회장님을 모시고 서울 금천구에 위치한 SM체육관(대표 홍성민)을 찾았습니다. 필자의 부탁을 받고 도우미(?) 역할을 하기 위해 전 한국 주니어페더급 1위이자, 개그맨 에이전트업체인 '도향 엔터테이먼트‘의 대표인 가도현(72년생, 서산, 12전 8승<6KO> 4패) 사장이 나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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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영자 회장(왼쪽)과 가도현 대표.


영자의 전성시대=복싱의 절정기


필자가 심 회장과 처음 만난 것은 1983년 여름 벌어진 로마월드컵 파견 국가대표 선발전 경기장이었죠. 그때 만 40세의 심 회장은 김성준과 이일복 김철호 장정구 등을 뒷바라지하던 극동프로모션의 후원회장직을 내려놓고, 직접 선수를 양성하기 위해 복싱계 전면에 등장했죠(심 회장은 후원회장 당시 은퇴한 김성준이 마포에 '링‘이라는 경양식집을 차리자 선뜻 1,500만 원을 지원했을 정도로 통이 큰 여장부였습니다).

그 당시 한국 프로복싱은 WBC 라이트플라이급 챔피언인 장정구를 위시해 12체급의 동양챔피언중 밴텀급에서 무라다 에이지로(일본)에게만 한 체급을 양보(?)했을 뿐 나머지 11체급을 석권하며 최절정기를 구가했죠. 기억을 더듬어 그 당시 동양챔프들을 열거하면 라이트플라이급의 김성남을 필두로 플라이급의 신희섭, 주니어페더급의 정순현, 페더급의 오민근, 주니어라이트급의 문태진, 라이트급의 김득구, 라이트웰터급의 김응식, 웰터급의 황준석, 주니어미들급의 백인철, 미들급의 박종팔, 라이트헤비급의 이수항 등이 주인공이었습니다.

심영자 회장이 전성기를 구가하던 1980, 90년대 신인왕전은 방송사가 생중계를 하는 것은 물론 1억 원의 중계료까지 받았습니다. 하지만 작금의 현실은 중계료는커녕 지상파방송으로부터 외면을 당한 것이 오래이고, 심지어 (중계)제작지원비까지 내놓아야 합니다. 체육관도 학교나 사설체육관을 빌릴 정도로 초라해졌죠. 이를 지켜보는 심 회장의 심정은 몹시 착찹했을 겁니다. 심 회장은 그래도 삼성체육관 김은수의 파이팅 넘치는 투지에 큰 박수를 보내는 등 오랜만의 복싱계 외출에 환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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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프로복싱이 큰 인기를 누리던 시절의 심영자 회장과 이경연 챔프(가운데).


이인경 회장에 대한 기대

경기가 끝나고 KBF 이인경 회장은 심영자 회장과 다과를 함께 하며 많은 대화를 나눴습니다. 가장 화려했던 시절 지상파 방송 3사의 협찬을 받는 것도 부족해 케이블방송까지 끌어들이며 방송사 그랜드슬램을 연출했던 심영자 회장이었죠. 그의 입장에서 보면 척박한 환경에서 십자가를 짊어지고 고난의 행군을 하고 있는 후배 권투인 이인경(54년생,예산) 회장이 애처롭게 보였을 겁니다. 문득 아마추어 권투선수 출신인 어네스토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가 생각납니다. 카리브해 한 가운데서 커다란 물고기를 잡았건만 피냄새를 맡고 하이에나처럼 달려 드는 상어떼에 살점을 다 뜯기고 결국 앙상하게 뼈만 남은 물고기를 이끌고 돌아오는 허탈한 노인의 심정과 비슷하지 않을까요?

따지고 보면 그 작품이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그런 상황에서도 절망하지 않는 노인의 용기입니다. 이 대목을 복싱인들이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OPBF(동양태평양복싱연맹) 기구가 내년에 한국으로 옮겨집니다. 비록 임기 2년으로 한시적이지만, 회장국의 위치에서 재도약할 호기를 맞이한 것입니다.

당연히 이를 부활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복싱인들의 목소리가 큽니다. 이런 맥락에서 한국 프로복싱을 양분하고 있는 KBF와 KBC가 얼마 전 KBF로 통합하기로 책임자들이 구두 합의를 했습니다. 복싱인들이 쌍수를 들어 환영한 것은 물론입니다. 통합회장에는 이인경 KBF 회장이 추대되고, KBC 홍수환 회장이 명예 회장으로 2선으로 물러나는 조건이었는데 안타깝게도 막판에 결렬되고 말았습니다. 또 다시 공언(公言)이 공언(空言)이 되고 말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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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왕전을 관람하던 중 잠깐 사진을 한 장 찍었다. 왼쪽부터 정선용 KBF사무총장, 이인경 회장, 심영자 회장.


희망의 신인왕전

다시 신인왕전으로 돌아가 보죠. 신인왕전이 본격적으로 치러진 해가 1977년이었습니다. 그해 최우수신인왕을 차지한 김태식(56년생, 동해)과 우수 신인왕을 치지한 박종팔(58년생,무안)을 시작으로. 백인철 장정구 정기영 권순천 이경연 김철호 박영균 최창호 이형철 박영균 등이 신인왕 코스를 거쳐 후에 세계챔피언에 등극했습니다. 당연히 신인왕은 세계챔피언이 되는 과정에서 반드시 거쳐야 할 관문이라는 풍토가 조성됐습니다. 더우기 신인왕전에서 탈락한 서성인, 박찬영마저 세계정상에 오르자 신인왕전은 ‘챔피언의 산실’이란 꼬리표가 붙으면서 더욱 각광을 받았습니다.

신인왕전의 부활은 프로복싱 부활의 서곡입니다. 신인왕전과 프로복싱은 일란성 쌍둥이죠. 이러한 신인왕전을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치른 이인경 회장의 노력은 간과할 수 없습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 개선책을 찾으면서 시나브로 움직일 때 과거의 영광은 재현될 것이라 믿습니다. 더욱이 차세대 참신한 지도자들의 의욕적인 활동도 한국 프로복싱의 미래가 결코 어둡지 않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윤강준(신길체) 이용환(코리아체) 신정훈(삼성체) 손정오(천안체) 정재광(정재광체) 홍성민(SM체) 송유남(대한체) 백승원(더원복싱) 등 40대 젊은 관장들의 행보를 주목하면서 한국 복싱의 부활을 위해 무엇을 할까 함께 고민해 봅시다. [문성길 복싱클럽 관장]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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