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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포츠 타타라타] ‘진짜 세기의 대결’을 앞둔 골로프킨의 까레이 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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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영숙 씨의 역작 <까레이스키, 끝없는 방랑>.


# “까레이 우라!”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 역에서 이등박문을 저격한 직후 안중근 장군은 이렇게 외쳤다. 러시아 말로 까레이는 ‘고려(즉, 한국)’, 우라는 ‘만세’다. 우리식으로 하면 ‘대한민국 만세’를 외친 것이다. 한국어나 일본어는 물론이고, 중국어나 영어 대신 러시아어를 택한 것은 그만큼 러시아 쪽에 일본의 침략야욕을 억제해달라고 호소한 의미가 있다. 소설가 이호철은 1986년 안중근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을 발표했는데 <까레이우라>라는 제목을 붙였다.

# 눈치 빠른 사람은 알겠지만 ‘까레이스키’는 고려인, 한국사람이라는 뜻이다. 1937년 소련 정부의 정책에 따라 만주와 연해주 일대의 한국인들(약 17만 명)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 됐다(올해가 꼭 80주년이다). 이들은 이역만리 척박한 땅에서 온갖 차별을 당하면서도 벼농사에 성공하고, 한국문화를 이으면서 지금까지 살아왔다. 조정래의 대하소설 <아리랑>의 11권, 아동문학가 문영숙 씨의 역작 <까레이스키, 끝없는 방랑> 등에 이들의 삶이 잘 묘사돼 있다.

# 8월 15일은 우리에게 광복절(일부 보수진영은 건국절)이지만, 구소련사람들에게는 ‘빅토르 최’라는 슈퍼스타의 추모일로 유명했다. 1980년대 구소련 젊은이들의 우상이었던 전설적인 록 그룹 ‘키노’의 리더였던 빅토르 최는 ‘20세기 위대한 러시아인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빅토르 최는 까레이스키 아버지와 러시아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까레이스키 3세였다. 그는 카자흐스탄의 크질오르다에서 태어났다. 아마도 그의 할아버지는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한 고려인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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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7월 재미동포들을 위한 잡지 의 표지에 등장한 골로프킨.


# 프로복서 게나디 골로프킨(35)은 카자흐스탄 북부의 최대 산업도시인 카라간다 출신이다. 외할아버지 세르게이 박은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연해주를 거쳐 카자흐스탄으로 강제 이주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러시아계 아내를 맞았고, 1947년 딸을 낳았다. 그리고 딸 엘리자베스 박은 러시아 남성과 결혼해 골로프킨을 포함해 4형제를 얻었다. 골로프킨의 두 형은 군대에 들어가 모두 사망했고, 쌍둥이 동생 막심은 골로프킨처럼 복싱 유망주였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 선발전에서 마지막 둘이 맞붙게 됐는데 막심이 양보했다고 한다. 골로프킨은 아마추어에서 310승 10패를 기록하며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금메달,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은메달 등 빼어난 전적을 남겼다.


# WBA·WBC·IBF 미들급 통합챔피언 골로프킨은 프로복싱에서 역대급 선수로 평가받는다. 36전 전승에 33KO를 기록 중이다(KO율 91.6%). 지난 3월 다니엘 제이콥스를 3-0 판정으로 제압하고 18차 방어에 성공하기 전까지 23연속 KO승을 기록했고, 이중 18번을 3라운드 안에 끝냈다. ‘잽의 달인’으로 불릴 정도로 날카로운 잽에, 펀치력은 어마무시하다. 여기에 맷집과 체력도 뛰어나 약점을 찾기 힘들 정도다(프로 경력에서 다운이 한 차례도 없다). 골로프킨의 주먹이 무서워 맞대결을 피하는 선수도 있었다. 나이가 들어 경기력이 떨어지는 것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는 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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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로프킨(오른쪽 위)의 외할아버지 고 세르게이 박(왼쪽 위). 아래 사진 가운데는 어머니 엘리자베스 박이다. [사진=SBS스포츠]


# ‘세기의 쇼’는 지나갔고, ‘진짜 세기의 대결’이 온다. 복싱전문가들은 안다. 지난 27일 플로이드 메이웨더(40)와 코너 맥그리거(29)의 크로스오버 대결이 ‘세기의 대결’이 아닌, 결과가 뻔한 세기의 쇼였다는 것을(10회 메이웨더 TKO승). 한물간 메이웨더가 아니라 골로프킨이 맥그리거와 붙었다면 결과는 처참했을 것이라고. 이런 골로프킨이 오는 17일 세기의 쇼와 같은 장소(라스베이거스 티모바일 아레나)에서 사울 카넬로 알바레스(26, 멕시코)와 격돌한다. 알바레스는 26살에 불과하지만 51전 49승(34KO) 1무 1패의 강자다. 2013년 주니어미들급 세계타이틀매치에서 메이웨더에게 판정패한 게 유일한 패배다. 복싱팬들이 원하던 바로 그 매치인데, 워낙 골로프킨이 센 까닭에 알바레스가 주저하다가 최근의 판정승을 보고 용기를 얻어 매치가 성사됐다고 한다. 골로프킨은 “내 복싱인생에서 가장 큰 시합”이라고, 알바레스는 “가장 위험한 상대를 만났다. 아름다운 시합을 보여주겠다”고 각각 말했다.

# 복싱과 종합격투기는 다른 종목이다. 다른 것이지 틀린 것이 아니다. 아무리 우리사회가 다름(different)과 틀림(wrong)을 잘 구분하지 못한다고 해도 ‘복빠’와 ‘UFC빠’가 소모적인 논쟁을 벌일 필요는 없다. 어느 쪽을 좋아하든 진짜 복싱 세기의 대결은 꼭 즐겼으면 한다. 실망 그 자체였던 메이웨더-파퀴아오, 쇼로 끝난 메이웨더-맥그리거 대결을 넘어 진짜 복싱의 진수를 만끽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골로프킨은 ‘쿼터 코리안’이다. 그는 2015년 이라는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나에겐 한국인의 피가 흐른다. 어머니와 외할아버지에 큰 존경심을 갖고 있고, 한국과 한국인에 관심이 많다. 한국 사람들은 다들 따뜻하고 친절하다. 개인적으로 김치와 불고기를 아주 좋아한다”고 말했다. [헤럴드경제 스포츠팀=유병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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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7일(한국시간) 열리는 골로프킨-알바레스의 공식 포스터.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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