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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병철의 생체세상] 어머니와 함께 수영을

# 대한체육회가 지난 12월 28일 '2017 신나는주말생활체육학교 활동수기 공모전 시상식'을 개최했습니다. 온라인 수기 공모전을 통해 생활체육으로 삶의 질을 높인 수기 102편이 응모했고, 대상을 포함해 총 27편이 입상작으로 꼽혔습니다. 이번 공모전의 대상인 '어머니와 함께 수영을'의 전문을 게재합니다. 생활체육의 중요성을 잘 보여주는 생생한 글입니다. 글은 55세의 양지영 씨가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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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는 주말생활체육학교 활동수기 공모전'의 시상식 장면.


어머니와 함께 수영을


“몸에서 힘을 빼라니까! 그게 그렇게 힘이 드나?”

수영 초급반 시절, 시어머니는 내게 늘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생각해도 참 한심스러웠다. 물에 들어가기도 전에 온 몸이 사시나무 떨리듯이 떨리니 수영 배우는 일이 까마득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어머니를 봐서라도 한 달만 하고 그만 두려고 마음먹었다. 이러니 수영실력이 늘 리가 없었다. 맨 처음 어머니 따라 수영장에 들어섰을 때 나는 무척 당황스러웠다. 출렁거리는 물 때문에 완전히 압도당하고 말았다. 바닥이 꽤 깊었다. 그런데다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수영하는 걸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물속을 걸어가는데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급기야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시어머니는 수영한 지 꽤 오래되었다. 벌써 5년이 넘었으니 어머니가 건강한 이유도 일주일에 세 번하는 수영이라고 생각했다. 안 그래도 같이 살면서 많이 부대꼈는데 이런 약한 모습까지 보이는 게 더 싫었다. 결혼하고 시댁에 들어가서 느꼈던 복잡한 감정이 다시 되살아났다. 생각해보니 수영이 힘들었던 건 내게 다른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아직도 쉽게 잊히지 않는 물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이었다. 예전엔 대중탕 욕조에 들어가는 것도 힘이 들었다. 그때의 충격은 어제 일인 냥 머릿속에서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내 기억 속에 누런 황톳물은 거대한 괴물이었다. 콸콸 흘러가는 황톳물 속으로 친구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 기억은 내가 사춘기를 지내올 동안 악몽처럼 되풀이되었다. 꿈속에서 친구가 나타나 살려달라고 소리쳤다. 나는 베개가 흠뻑 젖도록 울었다.

내가 살았던 마을 뒤편엔 큰 개천이 있었다. 개천은 깊지 않아서 놀기엔 딱 좋았다. 우리는 학교 마치자마자 가방을 던져놓고 몰려가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다. 그곳에서 고기도 잡고, 수영도 하고 친구들과 노는 일이 전부였다. 평소엔 그다지 깊지 않는데 비가 오면 개천엔 물이 고이면서 물살이 빨라졌다. 여름이면 큰 바위에 올라가 늘어진 버드나무 가지를 붙잡고 높이뛰기를 했다. 누가 멀리 뛰는지 그것이 우리들의 최대 관심사였다. 장마가 끝나갈 무렵 이었다고 기억한다. 그날도 아이들과 개천주변에서 놀았는데 친구가 미끄러져 신발을 놓치고 말았다. 당황하던 친구는 겁도 없이 물속으로 첨벙 뛰어들었다. 말릴 새도 없었다. 잔뜩 성이 난 거센 물살이 친구를 사정없이 덮었다.

친구의 작은 몸이 물살에 휘청거리더니 뿌연 흙탕물 속으로 사라졌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친구는 한동안 떠내려가면서 몸이 물 위로 둥실 올라갔다가 내려가기를 반복했다. 그러더니 이내 사라졌다. 동네아이들이 발을 동동 구르고 소리쳤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그 친구는 결국 팅팅 부은 몸으로 축 늘어진 채로 발견되었다. 그 날 이후 우리는 한동안 개천에 가질 못했다. 어른들이 그곳에서 친구의 영혼을 달래는 제를 지낸다고 했을 때 엄마는 근처에도 가지 못하게 했다. 개천 주변엔 알록달록한 천이 바람에 펄럭이며 북 두드리는 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나는 멀찌감치 떨어져 그 소리를 들으며 입을 틀어막으며 울었다. 친구 엄마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아이고 아까운 내 새끼‘라고 땅을 두드리며 통곡했다. 그 후로 누구나 할 것 없이 개천주변은 얼씬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 때 죽은 영혼을 달래주는 천도제가 친구를 정말 좋은 곳으로 데려다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친구하고 보냈던 추억이 생각나 미칠 것 같았다. 그때 기억을 빨리 잊고 싶었다.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친구는 그렇게 서서히 잊혀졌다. 시간이 흘렀다.

내 앞에 다시 그날의 공포가 몰려왔다. 물속에 가만히 서 있는데도 다리가 후들거렸다. 초급반 사람들은 매일 물속을 거닐거나 발차기 연습을 했다. 그날 난 수업 도중에 결국 집으로 오고 말았다. 몸에 한기가 들고 열이 올라서 견딜 수가 없었다. 어머니는 싫다고 하는 나를 왜 그렇게 수영장에 가라고 하시는지 무척 원망스러웠다.

어머니는 자기관리가 철저하신 분이었다. 매사에 정갈하신 분이라 덜렁대고 꼼꼼하지 못한 며느리를 가르치는 게 쉽지 않았을 것이다. 살림이 서툰 나는 늘 어머니 눈치를 보며 허둥거리기 일 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님이 갑자기 간암으로 쓰러지면서 집안에 큰 위기가 왔다. 땀이 가만히 있어도 줄줄 흐르던 여름이었다. 나는 하동에서 재첩을 사가지고 와서 큰 솥에 매일 끓였다. 그러고는 아버님께 간에 좋다는 재첩국을 매일 드렸다. 단추만한 조개를 발라내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나는 돌이 겨우 지난 아들을 들쳐 업고 조갯살을 하루 종일 골랐다. 또 시간이 나면 녹즙을 갈았다. 손에 시퍼런 물이 들여 잘 지워지질 않을 정도로 야채를 갈고 또 갈았다.

그런데 아버님의 병은 차도가 없었다. 오히려 더 나빠지고 있었다. 한 번 망가진 건강은 아무리 좋은 음식으로 정성스럽게 한들 회복되지는 않았다. 재첩국과 녹즙을 그렇게 드셨지만 아버님의 얼굴은 오히려 누런 황달로 변해가고 배는 임산부처럼 자꾸만 부풀어 올랐다.

급기야 눈동자까지 노랗게 변하자 아버님은 ‘건강은 건강할 때 지키라고’ 유언을 남기며 돌아가셨다. 애쓴 보람도 없이 허망했다. 아버님이 돌아가시자 냉장고에 있는 재첩국만 봐도 눈물이 나왔다. 나는 그때 한 번 망가진 몸은 회복하기 어렵다는 뼈아픈 경험을 하게 되었다. 아버님 말씀대로 건강은 건강 할 때 정말 지켜야 하는 것이었다. 장례식을 마치고 한동안 어머니는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말문을 닫으셨고, 늘 주무시기만 하셨다.

답답한 시간이 흘렀다. 그러다가 어느 날 자리를 털고 일어나셨다. 거실에 앉아 쏟아지는 햇빛을 지긋이 바라보던 어머니의 표정이 어쩐지 달라보였다. 나를 조용히 부르더니 살림을 모두 맡기시는 거였다. 뜻밖이었다. 어머니가 나를 조금씩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같아 한편 기뻤다. 그날 백화점에 다녀오시더니 생활체육교실에 가기위해 수영복을 사가지고 오셨다. 그러고는 이번에는 좀 더 적극적으로 같이 가자고 수강료까지 끊어 오시는 것이었다.

“내가 우울증이 걸려 힘들었는데 운동을 해야 나을 것 같다. 도와 줄 거지?”

이런 말씀 하시는데 안 간다고 할 수가 없었다. 예전처럼 어머니가 건강하게 돌아와 주었으면 했다. 나는 어머니 모습을 보고 다시 용기를 내었다. 제일 먼저 두려움을 벗어나는 게 중요했다. 어머니는 물에게 말을 걸어보라고 했다.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다가가면 언젠가 물도 내 편이 되어 줄거라고 하셨다. 그렇게 물에 대한 적응훈련이 시작되었다. 어머니 손을 잡고 물 속을 걸어 다녔다. 선생님은 나에게 절대 강요하지 않았다. 가만히 지켜보기만 하셨다. 그 이유도 생각해보니 어머니가 말씀해 주신 덕분이었다.

어머니는 내 수업이 마칠 때까지 계속 기다려주셨다. 오는 길에 점심을 같이 먹게 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어려웠던 어머니가 친근하게 느껴졌다. 시간이 조금씩 흐르면서 아픈 기억도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다. 한 달 동안 그렇게 다녔다. 조금씩 수영장의 풍경도 눈에 들어왔다. 사람들이 물을 가를 때 찰방거리는 물소리가 좋게 들리기 시작했다. 물에 발을 담글 때 공포스런 느낌도 사라졌다. 드디어 물의 감촉이 부드럽게 느껴졌다. 결국 물속에서 뜨기까지 시간이 좀 오래 걸린 건 사실이다.

후에 어머니께 물어보았다. 내게 왜 그렇게 집요하게 수영을 배우라고 했는지. 어머니는 웃으면서 말씀하셨다. 첫 번째는 내가 너무 물을 싫어하니 두려움을 꼭 극복해 주고 싶었다고 했다. 두 번째는 배우고 나면 운동에 재미도 느낄 것이고, 위험한 일에 처했을 때 수영은 엄청난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하셨다. 그리고 세 번째는 무엇보다 운동을 통해 나랑 가까워지고 싶었다고 수줍게 고백까지 하시는 거였다. 코끝이 찡해지면서 마음이 울컥했다. 결국 어머니는 낯선 환경에 어려워하는 나를 수영을 통해 가까워지고 싶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수영을 배우면서 참 얻은 게 많다. 어머니와 나는 생활체육의 가장 큰 수혜자다. 무료하게 노인정에서 시간을 보내는 노인들에 비해 어머니는 생활체육을 통해 자신의 삶을 도모하며 미래지향적인 삶을 살아가신다. 수영장에 매일 오시는 어르신들의 표정은 언제나 밝고 유쾌했다. 어르신들은 물속에서 걸어 다니기도 하고, 힘차게 수영하는 모습에서 외로운 노인의 모습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 모습은 앞으로 장차 다가올 내 노후의 미래 모습이었다. 삶의 긍정적 에너지를 그분들에게 많이 배웠다.

어떤 글에서 보니 노인의 생활체육 참여는 노인의 건강유지, 자살을 방지하며, 의료비까지 절약하게 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어머니는 햇볕을 쪼이고 수영을 다니니 우울증에 걸린 과거의 시간이 아까울 정도라고 하셨다. 슬픔을 딛고 일어서 생활체육교실을 찾아간 어머니의 용기는 정말 현명했다고 생각한다. 생활 체육은 말 그대로 삶 속에 일어나는 놀라운 기적이었다.

생각해보니 나도 내 속에 곪은 상처를 바라보는 일은 참 힘들었다. 혼자서는 어림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어머니와 함께 그 상처를 마주하고 직시했기 때문에 두려움에서 온전히 벗어 날 수 있었다.

나는 이제 갱년기의 나이가 되었다. 요즘은 갱년기를 겪으면서 생활 속의 운동이 얼마나 필요한지 몸소 체험하고 있다. 얼굴홍조와 가슴 두근거림, 불면증까지 몸이 아프다고 자꾸 말을 걸어왔다. 그런데 그런 증상이 수영을 하면서 없어지니 마음도, 몸도 다 보상받는 느낌이었다. 지난 날 수영장에서 벌벌 떨던 자신을 생각해본다. 친구가 물속에서 그렇게 살려달라고 아우성 칠 때 도와주지 못햇던 후회스러움에 늘 괴로웠다. 물은 공포 그 자체였다. 그래서 오기가 났다. 피하면 안 될 것 같았다. 반드시 해내고 싶었다. 극복하고 나니 비로소 물 가까이에 갈 수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깊게 패인 상처는 자꾸만 옅어졌고, 나는 두려움에서 벗어났다. 물속에 들어가도 아무렇지도 않았던 그 날은 정말 잊을 수가 없다. 어머니가 열성적으로 나를 끌지 않았다면, 아니면 우리 동네에서 시행하는 생활체육교실이 없었더라면 현재의 나는 없다.

생활체육운동은 내 주변에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운동이다. 그 작은 실천이 내 마음의 상처까지 아물게 만들고 새살을 돋게 만들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서먹했던 어머니와 소통이 원활해 진 것은 생활체육을 하면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수영이 자신 있었던 어머니는 제법 전문가다운 포스로 내게 가르쳐 주셨다.

어머니는 내 인생의 선배이자, 생활체육의 선배님이시다. 그러시던 어머니가 안타깝게도 작년에 돌아가셨다. 어머니 역시 아버님처럼 집에서 편안하게 돌아가셨다. 마지막으로 새 옷을 입혀드리면서 나는 초등학생처럼 작아진 어머니를 꼭 안았다. 몸에 따뜻한 온기가 그대로 남아있었다. 마치 주무시는 것처럼 평온했다.

사람이 죽을 때 귀는 맨 마지막에 간다고 들었다. 그래서 나는 어머니에게 고맙다는 마지막 인사말을 전했다. 살아계셨을 땐 이 말은 참 어려웠다. 어머니는 무엇보다 나를 오래토록 괴롭혔던 상처에서 벗어나게 도와주신 분이었다.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배우라고 용기를 주신 분이었다. 결혼하고 처음 어머니를 뵈었을 때는 참 힘들겠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그런데 어머니는 참 따뜻한 분이셨다. 내가 쌓아올린 편견의 벽 때문에 나 스스로 마음의 문을 열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다. 마음속에 트라우마도 결국 내가 스스로 빠져 나오려는 의지가 없었고 자꾸만 두렵게 생각했던 이유였다. 모든 원인은 나에게서 비롯되었다. 지금 내 생활에서 생활체육은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운동이다. 일주일에 세 번 운동하는 일은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중에 이 일을 가장 우선순위로 두면 될 일이다.

나는 오늘도 수영장에 다녀왔다. 저 멀리서 어머니가 노련하게 물을 헤쳐나오는 모습이 환영이 되어 어른거린다. 이제 능숙하게 수영하는 나를 보면 어머니는 뭐라고 하실까 궁금하다. 어머니의 폭풍 잔소리가 그리워진다.

“몸이 와 그리 뻣뻣하노? 힘을 빼라카이.”

하늘나라에 계신 어머니의 힘찬 목소리가 수영장에 울려 퍼지는 것 같다. 오늘은 정말 어머니가 많이 보고 싶다.

‘사실 저도 어머니랑 친하게 지내고 싶었어요. 어머니, 사랑합니다.’

* 스포츠는 엘리트선수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의 것이죠. 하지만 스포츠미디어는 자본의 문법에 따라 인기종목과 스타선수만 주목합니다. 이에 <헤럴드경제 스포츠팀>은 평범한 우리네 이웃이 스포츠를 통해 삶의 질을 높여가는 모습에 주목하고자 합니다. 생활체육 전문칼럼인 '유병철의 생체세상'에 많은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또 생활체육과 관련해 알리고픈 이야기가 있다면 einer6623@naver.com으로 연락 바랍니다. <편집자 주>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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