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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화영의 골프장 인문학 21] 친목 클럽 98년의 전통 나루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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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에 조성된 나루오GC 클럽하우스.


[헤럴드경제 스포츠팀=남화영 기자] 세계 골퍼들이 가장 많이 검색하는 골프장 정보 사이트 톱100골프코스(top100golfcourses.com)에서 일본 코스 4위이면서, 세계 100대 코스 96위에 오른 고베의 나루오(鳴尾)골프클럽은 친목 클럽의 전통을 고수하고 있는 골프장이다. 홈페이지에는 ‘자연의 지형을 잘 활용한 역사 깊은 산악형 링크스’라고 소개하고 있다. 골프장 입구를 지날 때 크지 않은 현수막 문구에 ‘축 2020년 설립 100주년’이 적혀 있었다.

98년 역사의 올드 코스
일본 최초의 코스는 1903년 고베의 로코산(六甲山) 정상 구릉지에 조성된 4홀짜리 고베골프클럽(현재는 18홀)이다. 하지만 해발 1천미터에 가까운 그곳은 겨울이면 골프가 불가능했다. 당시 일본에 거주하던 영국인 윌리엄 존 로빈슨은 1914년에 고베와 오사카항 사이의 나루오항 인근 경마장에 나루오골프협회를 세워 9홀 골프장을 조성했다. 그 뒤 1920년에 당시 스즈키 상점의 직원 39명이 서로 돈을 모아 만든 것이 나루오골프클럽이다.

다시 10년의 세월이 흘러 땅값이 비싼 해안지대 대신 저렴한 산간 지대를 찾아 골프장이 이전하게 되었고 현재의 가와니시 구릉지가 골프장 부지로 낙점되었다. 당시 코스 설계와 공사는 조(Joe E)와 해리(Harry C), 버티(Bertie E) 크래인(Crane) 3형제가 맡았다. 1930년대에 중장비가 없었기 때문에 인부들이 삽과 곡괭이로 일일이 지반 공사를 했다. 1년이 지나 영국에서 건너온 유명 설계자인 C.H.알리슨이 벙커를 더하고 코스를 감수했다. 하지만 크게 고치지는 않고 16번 홀을 소폭 조정하는 데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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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번 홀은 워터해저드를 넘겨야 한다. 호수가 일본의 정원을 본땄다.


나루오는 파70에 가장 긴 그린티 전장이 6616야드에 불과한 올드 코스다. 하지만 아기자기하고 좁은 페어웨이에서 타수를 잃기 십상이다. 나는 지난주 한국의 대표 코스 설계가인 송호 씨와 함께 나루오 클럽 회원의 소개로 라운드할 기회를 얻었다.

몇 홀을 치던 송호 대표는 감탄사를 늘어놓았다. “라우팅(Routing)이 탁월합니다. 골프 코스 설계에서 홀을 어떻게 배열하느냐 하는 루트플랜(Route Plan)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렇게나 창조적으로 만들 수 있었을까 싶습니다. 매 홀이 전략적인데, 잘못한 샷이 있을 때는 그걸 보완할 수 있는 구제 공간(Bailout area)을 꼭 만들었어요. 포크레인도 없던 시절이 이런 코스를 만들었다니 놀랍습니다.” 좋은 홀이란 실력이 뛰어난 이와 못한 이가 모두 즐거워하는 코스다. 나루오는 자연 구릉지의 경사를 절묘하게 살려낸 점이 돋보였다.

국내에만 골프장 70여곳을 설계한 송호 대표는 나와는 벌써 여러 번 해외 코스를 탐방한 바 있다. 그는 해외의 명 코스를 돌아다니면서 공부하면서 새로운 코스에의 아이디어를 얻는 설계가다. 4년 전 함께 뉴질랜드 남섬 퀸즈타운을 갔을 때 벙커가 단 하나도 없는 애로우타운GC에서 찬탄사를 늘어놓았었다. 그 계기로 인해 조만간 양양 골든비치에 개장하는 새로운 18홀 코스에 벙커를 하나도 만들지 않았다고 자랑했다. “모래 벙커가 없이도 그래스(Grass) 벙커나 둔덕을 높여서 코스가 재미있을 수 있다는 것을 시험했다”고 말했다.

나루오에서는 언덕과 함께 구제 공간을 다양하게 배치하는 데서 좋은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했다. “좋은 골프 코스는 위험과 보상(Risk & Reward)을 주는 데 있습니다. 나루오는 90여년 전에 만들었는데도 그걸 구현했습니다. 자연스럽게 능선을 활용한 건 지금 봐도 놀라운 조형 기술입니다.” 아마 몇 년 후에 송호 디자인에서 내는 코스 중에 나루오가 응용된 것이 나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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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들은 바지 엉덩이 위에 검은색 이름표를 붙이고 라운드한다.


회원 친목이 뛰어난 클럽
전반 9홀을 마치고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주중인데도 꽤나 손님이 많았다. 평균적으로 나이대는 70대로 보였다. 알고 보니 이곳은 히로노골프장과 마찬가지로 종신 회원제다. 법인 회원은 한 명도 없고 개인 회원만 받는다고 했다. 애초에 사단법인으로 시작해서 회원(멤버)은 동시에 사원(社員)으로 불린다. 종신 멤버이기 때문에 어렸을 적부터 이곳에서 신사와 예절을 지키면서 코스에 임한다.

나루오 골프장에서는 누가 회원인지 멀리서도 금방 구분할 수 있다. 그들은 바지 엉덩이에 검은색 이름표를 달고 다닌다. 우스꽝스러워도 확연하게 회원 이름을 안다. 한 회원이 스윙을 할 때 자연스럽게 이름을 읽게 된다. 그것으로 인해 700여명에 이르는 회원들은 서로 서로가 이름을 부르면서 동지애를 키운다.

이 골프장은 ‘나루오 스피릿(志)’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다. 코스내에서 지켜야 하는 룰이 엄격하다. 선배는 후배를 가르쳐야 한다. 회원에 입사하는 것과 동시에 룰 북을 구매해서 공부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한번 회원이면 종신회원이기 때문에 서로서로가 룰과 에티켓을 잘 지키지 않을 도리가 없다. 75살 회원이 80살 회원에게 깍듯하게 선배라고 부른다.

클럽에서는 골프 모임도 다양해서 1년에 70개 정도의 대회가 열린다고 한다. 나루오는 회원들의 놀이터였다. 모든 일요일은 클럽 경기로 채워진다. 그래서 일요일에는 게스트가 입장할 수 없다. 골프장에 도착하는 순서대로 라운드 한다. 단지 오사카 뿐만 아니라 도쿄에 사는 회원도 50명이나 된다고 했다. 그들은 비행기나 신칸센을 타고 아침부터 골프하러 온다고 했다. 한 번 회원이면 영원한 회원이기 때문이다. 수십년에 걸친 끈끈한 동지애가 있으니 멀리서도 찾아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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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루오는 상당수 홀에서 그린 앞에 평지성 구제지역을 두어 오르막 그린을 공략하도록 전력성을 높였다. 10번 그린 앞.


전장은 짧지만 나루오는 설립 초기부터 난이도 높은 뛰어난 코스로 인정받았다. 현재는 대회가 열리기에는 너무 좁지만 예전엔 명승부의 전장이었다. 1936년에 일본오픈을 개최했으며 제2차 세계대전이 지나 1949년에 18홀 코스가 복구되었다. 1956년에는 현재와 같은 클럽하우스가 조성되었다. 1967년에는 당시 빅3로 불리던 아놀드 파머, 게리 플레이어, 잭 니클라우스가 와서 3일간의 이벤트 매치 파이널 대회를 여기서 마쳤다. 전략적이면서 엎치락뒤치락 승부가 뒤집히는 코스였기 때문이다.

전통을 고수하는 고집
라운드를 마친 송호 대표가 총평을 했다. “단 한 번 라운드했을 뿐인데 모든 홀이 다 기억나요. 베스트 코스의 요건 중에 기억성이 탁월합니다. 그러기는 쉽지 않습니다. 고칠 점도 있어요. 이곳은 티잉그라운드부터 그린까지 고라이잔디 즉 고려지로 조성했습니다. 그 결과 그린에서 잔디가 역결인 경우에는 그린스피드가 느리고 순결일 때는 무척 빨라집니다. 요즘 이런 그린을 쓰는 코스는 없어요. 그린 스피드가 계절에 따라 차이가 심하고 균일하게 맞출 수도 없어요. 이건 새로 깔아야 할 것 같습니다.”

2년이 지나면 창립 100년을 맞는 나루오는 하지만 잔디를 새로 깔지는 않을 것 같다. 홈페이지에서는 고라이 잔디를 고집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적었다. ‘애초에 원 그린에 고라이 잔디였던 게 나루오의 시작이다. 계절과 위치에 따라 그린 스피드가 달라지는 것 역시 자연의 조건이고, 이는 골퍼가 스스로 극복해야 하는 것이다. 다행히 우리는 고라이 잔디도 벤트그라스 이상의 빠른 스피드를 내도록 했다. 주어진 조건을 개선시키는 게 우리의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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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대표 코스 설계가 송호(가운데)씨는 나루오의 홀흐름을 극찬했다.


이날 나루오 골프장은 한국에서 찾아온 우리를 위해 최고의 캐디를 배치해주었다. 스스무라는 캐디는 일본프로골프(JGTO)투어에서 장타자 김대현과 이형준의 캐디를 맡았다고 했다. 그는 우리들의 샷에 응원도 하고 코스의 장단점을 뛰어나게 가이드도 해주었다. 프로 선수를 꿈꾸었다는 그는 뛰어난 실력자 골퍼지만 전혀 내색하지 않고 우리의 플레이에 필요한 행동만 했다. 넘치는 행동을 하지 않아서 더욱 즐거운 라운드였다.

라운드를 마칠 때쯤 ‘히로노하고 나루오 중에 어디가 더 좋은 골프장이냐’고 물었다. 스스무의 대답은 내 예상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어쩌면 괜한 질문을 했나 싶었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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