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한국골프장의발견] 청평마이다스GC - 북한강변 ‘고요한 명문’
이천년 대 중반 이 골프장에서 처음 라운드 했을 때의 감흥을 잊지 못합니다. 황금빛 바위들이 신전 기둥처럼 둘러싼 연못 너머로 치는 16번 홀 조개 모양 그린에서 버디를 했습니다. 그 홀 이름은 ‘비너스’였지요.

그 다음 홀은 하트 모양으로 깊게 파놓은 수직 벙커가 있었습니다. 그 벙커에 빠져 지옥 같은 욕망과 좌절을 오가며 헤매야 했던, 그 홀의 이름은 ‘큐피드’였습니다. 마지막 홀 리라의 음률이 흐르는 듯하던 비치벙커를 따라 꿈길을 걷는 듯했던 십 수 년 전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때 “우리나라에 이렇게 독특한 골프장도 있구나” 생각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이미지중앙

마이다스코스 9번 홀(청평마이다스GC 사진).


1. 어제와 오늘의 위상

열자마자 명문 반열에 오르다
청평마이다스GC(옛 '마이다스 밸리')는 2002년 개장하자마자 단번에 명문급 골프장으로 떠올랐습니다. ‘도전의욕을 심어주면서 자연친화적인 코스’, ‘한 폭의 동양화처럼 개성이 강한 코스’, ‘자연이 숨겨둔 마지막 골프장 같다’...... 당시의 골프관련 언론들은 이런 표현으로 찬사를 보냈습니다.

골프 전문잡지 ‘골프다이제스트’ 한국판이 2년마다 선정 발표하는 ‘대한민국 베스트코스’ 랭킹에서 청평마이다스GC(당시 마이다스밸리)는 2005~2006년 5위, 2007~2008년 8위에 올랐습니다. ‘서울경제 골프매거진’이 선정하는 ‘한국 10대 베스트코스’에서도 2005년 5위, 2007년 7위에 선정되었으며, 이 잡지는 마이다스코스 7번 홀을 '한국 베스트 파3 홀'로 선정하기도 했습니다.

이미지중앙

한강 남쪽에 있었다면......
회원권 가격이 한때 8억 원 넘게 올라 ‘회원권 가격 탑10 명문 회원제’ 골프장의 입지가 굳어짐과 함께, 이 코스의 독특함은 입소문을 타고 널리 알려졌습니다. 정작 라운드 해본 사람은 소수에 불과했지요. 청평마이다스GC가 앉은 자리는 북한강 청평호 부근 곡달산(627.9m) 기슭입니다. 지금은 서울양양고속도로 설악IC와 가까워 접근성이 좋지만, 당시에는 교통이 좋지 않았는데도 회원권의 인기가 높았습니다.

회원 수가 적은 남부CC, 남촌CC, 이스트밸리CC 등 한강 이남 골프장, 그리고 삼성의 후광을 업은 ‘가평베네스트’ 등 속칭 ‘황제 회원권 골프장’보다는 회원권 거래 가격이 낮은 편이었으나, “이 코스가 한강 이남에 있었으면 훨씬 더 명문일 것”이라는 이야기가 많이 들렸습니다.

이 골프장은 1989년 라코스테, 까뜨리네뜨 등 패션 브랜드로 유명하던 (주)서광이 사업승인을 받아 추진해오다가 IMF 경제 위기로 중단되었던 것을, 교육 전문 기업인 ‘대교그룹’ 계열의 (주)대교 건설부문에서 인수하여 '마이다스밸리'라는 이름으로 완성한 것입니다. 아직도 ‘마이다스밸리’로 부르는 분들이 많습니다만, 2014년 모기업인 대교그룹이 이천에 <이천마이다스 골프앤리조트>를 열면서 이곳도 ‘청평마이다스GC'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이미지중앙

홀마다 그리스 신화 신들의 이름이 붙어있다.


지중해의 신들을 부른 골프장
‘마이다스’라는 이름은, 잘 아시는 대로, 그리스 신화 속 이름들에서 따온 것입니다. 이 골프장의 각 홀들에는 그리스 신화 속의 신과 요정, 그리고 영웅들의 이름이 붙어 있습니다. 1번 홀은 아폴로, 2번 홀은 아킬레스... 4번 홀은 뮤즈...... 이런 식이지요. 이런 이름은 그 홀들의 특성과 비슷하게 맞기도 하고, 그 홀을 라운드 하는 골퍼의 마음을 형용하여 던지는 ‘화두’ 같기도 합니다.

한국의 깊고 맑은 산중에 지중해의 신들을 불러 온 것은 무슨 까닭이냐고 하는 이도 있지만, 이 골프장이 교육 기업 소유라는 점에서 보면 어울림이 부드럽습니다. 골프장의 높은 격조를 표현하고자 ‘신들의 놀이터’라는 이미지를 끌어온 브랜드 전략상의 의도이기도 하겠습니다만, 그리스 신화는 인간의 보편적인 욕망을 신과 영웅들에 대입하여 상징과 은유로 풀어낸 이야기이므로, 한 홀 한 홀 주인공들의 사연들을 음미하며 라운드 하다보면 골프에는 물론 세상살이에도 도움이 되는 통찰을 얻을 수도 있을 듯합니다. 한 홀 한 홀 스스로 영웅이 되고 신이 된 기분으로, 신화의 이야기를 자신의 플레이에 이입하여 엮어가는 즐거움도 있겠습니다.

가평에 남은 ‘조용한 명문’
우리나라에 골프장들이 점점 많아지고 여러 명문 회원제 클럽들이 퍼블릭 골프장으로 전환하고 있는 흐름 속에서, 특히 한강 이북의 회원제 골프장들 대부분은 비회원 영업을 강화하여 옛날의 폐쇄적인 비밀스러움을 스스로 내던져 가고 있기도 합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청평마이다스GC’는 명문코스로서의 신비감을 여전히 잃지 않은 곳입니다.

2. 코스 조성 이야기
이 골프장을 용인의 <화산CC>와 견주는 의견도 있습니다. 흔히 ‘북일동 남화산’이라 하여 한강 이북의 일동레이크CC와 남쪽의 화산CC를 꼽아 아름다움을 견주기도 합니다만, 이곳이 화산CC와 비슷한 점도 적잖은 듯 보입니다.

첫째, 영업, 홍보 활동을 드러나게 하지 않는 ‘조용한 명문’이라는 점, 둘째 산중지형의 아름다움을 살려서 자연과 동화되도록 조성한 코스라는 점, 그리고 화산CC를 만든 기술진들이 이 코스 조성에 거의 그대로 참여했다는 점에서 나오는 분위기의 동질성 때문인 듯합니다.

이미지중앙

마이다스코스 7번홀(청평마이다스GC 사진).


거장 설계가들의 개성적인 작품
이 코스의 처음 '밑그림'은 우리나라 ‘1세대 설계자’ 중 한 분인 장정원 님이 그렸다고 할 수 있으나, 개성이 강한 코스로 완성한 설계자는 권동영 님입니다. 장정원 님은 육군사관학교와 서울대 토목공학과를 졸업하고 태릉 육사골프장, 뉴서울CC 남코스, 남부CC, 베어크리크GC 등을 설계한 분으로 알려집니다.

90년대 초반 (주)서광이 이 골프장 건설을 처음 추진할 때 그가 기본 설계를 해서 토목 공사를 진행하다가, 시행사의 부도와 함께 건설이 중단되었다 합니다. 그 뒤 대교그룹이 이 사업을 인수하면서 당시에 골프장 공사를 가장 많이 하던 ‘대한조형건설’에 설계와 시공을 맡기게 됩니다.

대한조형건설은 그 몇 년 전, 화산CC 등의 시공을 성공적으로 완수해 내며 각광받던 골프장 시공 전문회사였지요. 당시에 화산CC 등에서 드물게 도입되었던 ‘원 그린’ 조성에 대한 경험이 가장 많았다고 합니다. (그 이전의 골프장들은 대개 ‘투 그린’으로 조성되었지요) 화산CC의 설계자는 고(故) 임상하 님인데, 그의 수제자가 권동영 님으로 화산CC, 지산CC 등 많은 작업에서 설계, 감리 실무 책임자였다고 합니다.

그 권동영 님이 직장을 옮겨 대한조형건설의 설계 책임자로 부임하면서 맡은 첫 작품이 ‘청평마이다스GC’였습니다. (대한조형건설은 이후 ‘오렌지엔지니어링’으로 사명을 바꾸었고, 그 회사의 설계책임자인 권동영 님은 이후 몽베르CC 북코스, 블루원상주CC, 소노펠리체CC 등 수많은 골프장들을 을 설계하여 ‘한국 골프설계의 1.5세대 거장’으로 꼽힙니다). 그러므로 이 ‘청평마이다스’는 화산CC 설계, 시공 기술진이 그대로 모여, 화산CC에서의 성공 경험을 바탕으로 한강 이북에서 다시 구현한 산중 골프코스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미지중앙

마이다스코스 8번 홀과 7번 홀 사이.


국내 최초 암반 노출, 벙커 조경
“당시에는 집에도 안가고 밤을 새워가며, 모든 능력과 열정을 마이다스밸리에 쏟았다”고 권동영 님은 말합니다. 화산CC 등에서 경험을 쌓은 ‘원 그린’과 산중코스의 자연친화적 조형 등의 경험이 이곳에서 또 한 번 빛나게 됩니다. 장정원 님의 ‘루트플랜' 바탕이 기본적으로 존중되었으나, 권동영 님의 조형 설계와 오렌지엔지니어링의 시공 기술로,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코스 조형 기법들이 다양하게 적용되어 새로운 개념의 코스가 탄생합니다.

권동영 님은 골프코스 디자이너 가운데서는 드물게 미술을 전공하여, 특히 미학적인 조형에 탁월한 설계자로 평가됩니다. 이 코스는 홀들 가운데 절반 정도는 산중턱을 절개하여 앉히는 계단식이 될 수밖에 없는 지형 조건이지만, 절개된 법면의 부자연스러운 느낌을 최소화하도록 기울기를 완만하게 조정하고, 다양한 모양의 벙커와 페어웨이 언듈레이션을 통해 넓고 우아한 공간감을 이끌어냅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코스 조성에서 거의 처음으로 ’자연 바위를 끌어들인 조경‘을 시도합니다. 이 코스가 앉은 곡달산은 전체가 화강암 덩어리인 바위산이었으므로, 그 바위들을 되도록 살려서 코스 안에 끌어들인 것입니다. 특히 마이다스 코스 7, 8번이 이어지는 바위 언덕 부근 처리는 이 코스 조형의 백미라 할 수 있습니다.

당시로서는 충격적인 디자인이어서 그 뒤의 많은 국내 골프장 설계에 영향을 주기도 하지요. 산중에 코스를 조성할 수밖에 없는 우리나라의 골프장 사정에서 보면, 골프코스 조형 설계의 새로운 지평을 연 것이라 평가되기도 합니다.

또한 마이다스 코스 9번(바카스) 홀 페어웨이를 따라 놓인 연못에 설치한 길다란 모래사장은 당시에 우리나라 골프장에서 가장 길고 아름다운 ’비치벙커‘로 알려졌습니다. 8번 (큐피드)홀의 5미터 수직벽 벙커 또한 국내 최초라는 이름이 붙는 ’명물‘이지요.

믿고 맡긴 ‘회장님’
이러한 ‘최초의 시도’들이 실현 가능했던 것은 ‘전문가를 믿고 맡긴 의뢰인’ 덕이라고 합니다. 골프장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대교그룹의 최고 경영자는 단 한 번도 현장에 들르지 않았다고 하지요. 당시 현장에서 먹고 자면서 일한 설계, 감리자 권동영 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대교에서는 현장 사무소 인원도 최소한으로 배치해서, 설계, 시공하는 전문가들이 소신껏 일하도록 했습니다”

코스가 완공 되고 나서 낙성식을 하는 자리에 비로소 나타난 대교그룹 강영중 회장은 시공 관계자들을 치하하며 크게 ‘한턱’ 냈다고 합니다. 전문가를 믿고 맡김으로 해서 한 분야의 역사가 새로운 한 걸음을 앞으로 딛는 순간이었다고 봐도 될 듯합니다.

이미지중앙

마이다스코스 4번 홀(리노베이션 부분).


기능을 보완한 '살가운' 수정
2년 전 이 골프장은 코스를 부분적으로 고쳤는데, 그 수정 설계와 진행은 노준택 님이 했습니다. 이 골프장이 처음 조성될 때 노준택 님도 당시의 대한조형건설 실무팀 일원이었다 합니다. 그 뒤로 그는 '스카이72' 하늘코스와 '베어크리크GC' 크리크 코스, '웰링턴CC'의 그리핀 와이번 코스, '이천마이다스' 등의 설계 및 리노베이션 재설계를 통해, 특히 드라마틱한 수변 공간 조성과 동화적인 스토리를 코스에 부여하는 조화로운 감각을 발휘합니다. '한국 골프코스 설계 2세대 마에스트로'라는 평을 듣기도 하지요.

노준택 님이 이 코스를 많이 고치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주로 코스 관리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 물을 많이 담아둘 목적으로 담수 용량이 큰 연못을 세 개 만들고, 그 연못들을 잇는 아기자기한 실개천들을 조성하였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이 홀들의 난도가 다소 높아지는 가운데 미관도 더욱 살갑고 오밀조밀해 졌습니다. 이 밖에 페어웨이 언듈레이션을 두어군데 조정하고, 여성용 티잉 구역을 그린에 좀 더 가깝도록 5개 홀에 새로 설치했다고 합니다.

3. 코스의 특성

잘 배치된 구조
해발 255미터 높이에 위치한 클럽하우스를 중심으로, 밸리코스는 산중턱 325미터 높이까지 올라갔다 내려오고 마이다스코스는 해발 190미터 낮은 지역까지 내려갔다 올라옵니다. 진행을 원활하게 하는 안정된 구조이지요. 파4, 파5, 파3가 배열된 순서도 조화로워서 진행에 막힘이 덜하고 홀의 전개가 다채로운 느낌을 줍니다.

대부분 홀의 티잉 구역에서 그린이 보이거나 그린 방향을 잘 감지할 수 있어서 홀마다 미리 전략을 세운 뒤에 공략하기 좋습니다. 파4홀들을 되도록 평지 형태로 조성하고, 파3 홀들은 경관 조망이 빼어난 위치에 내리막으로 조성한 것도 절묘한 선택으로 보입니다. 그런 한편 파5 홀의 페어웨이를(특히 마이다스 코스에서) 넓게 확보하되 그린은 오르막 언덕 위에 난도 높게 조성해서 호쾌한 티샷과 정교한 어프로치를 유도한 것도 조화로운 선택으로 보입니다.

밸리코스는 산허리를 따라 굽이굽이 만든 길이므로 정교하게 쳐야 할 것 같지만 의외로 티샷 낙하지점이 충분히 넓고, 낮고 평탄한 쪽에 위치한 마이다스 코스는 후반으로 갈수록 시각적 드라마가 강해져서 흥미진진합니다.

이미지중앙

밸리코스 5번 '머큐리' 홀.


그린으로 갈수록 예민하다
‘청평마이다스GC'가 처음 만들어진 이후 이천년 대 초중반부터 최근까지, 도전적인 서구형 코스를 지향하는 골프장들이 많이 문을 열었습니다. 이 코스가 이천년 대에만 해도 어렵기로 손꼽혔으나 지금은 이곳보다 난도와 샷 가치를 더 높인 코스들이 많아진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티샷은 편안하게 칠 수 있지만 홀 가까이 갈수록 섬세한 플레이를 부르는” 기본 구조가 견고하고 예민하니, 가히 “명문 코스답다”고 하겠습니다.

티샷이 편안한 편이지만 똑바로 치는 것보다는 어느 한쪽 편으로 치는 것이 다음 샷에 유리합니다. 직선으로 나있는 것처럼 보이는 페어웨이도 은근한 비틀림이 있지요. 지형의 특성을 그대로 이용해서 그렇게 만들었다고 봅니다. 설계 의도대로 티샷을 보내면 그린으로 올라가는 문이 더 많이 열려 보입니다.

그린의 모양이 대각선이거나 가로 세로 형으로 다양해서, 홀의 성격에 따라 페이드(Fade 오른쪽으로 살짝 휘는 샷), 드로우(Draw 왼쪽으로 살짝 휘는 샷) 등의 ‘기술 샷’을 구사하면 더 좋은 결과를 얻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또한 그린 주변 벙커 등 장애물이 있는 쪽 반대편 방향은 경사가 복잡해서 그린에 바로 올리지 않으면 예민한 어프로치를 해야 합니다.

요즘 새로 나온 도전적인 코스들보다 오히려 그린의 면적이 넓은 데다가 굴곡이 커서, 홀에서 먼 곳에 볼을 올렸을 때 ‘투 펏’으로 끝내기 쉽지 않은 점도 게임 난이도의 변수로 작용합니다.

이미지중앙

4. 인상적인 홀들

이 코스의 모든 홀들은 그리스 신화 속의 영웅과 요정, 그리고 신들의 이름을 갖고 있습니다. 가만히 보면 이름에 맞는 성격을 갖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마이다스코스 2번 홀은 ‘헤라클레스’라는 이름을 가졌는데, 가장 길고 오르막인 파5홀이라 헤라클레스 같은 힘을 떠오르게 하지요. 마이다스 4번 홀의 이름인 ‘칼립소’는 트로이 전쟁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영웅 오딧세우스를 7년간 붙잡아 놓은 바다의 요정인데, 처음에는 이 홀과 어울리지 않는 이름 같았으나 리노베이션 할 때 그린 앞에 커다란 연못을 만들어 놓으니 이름과 좀 더 가까워진 것 같습니다.

코스 설계자 권동영 님의 말에 따르면, ‘마이다스’라는 이름이 미리 정해져 있었기에 신화적인 느낌을 주려는 노력을 했으나, 홀마다 신들의 이름을 부여할 줄은 몰랐다고 합니다. “미리 알았다면 설계와 시공에서 좀 더 스토리를 반영할 수도 있었을 것 같다”고 하더군요.인상적이거나 의미 있는 몇몇 홀들을 살펴봅니다.

‘높은 곳의 신’들

이미지중앙

밸리코스 6번 홀 세컨샷 지점 뷰.


밸리코스 6번 파4 ‘주피터’ 홀은 이 코스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습니다. 주피터(Jupiter)는 그리스 신화의 최고 신 제우스(Zeus)를 로마신화에서 부르는 ‘유피테르’의 영어식 표현이지요. 주피터 신은 이름답게 가장 높은 곳에 있어서, 특히 그린 너머로 보이는 겹능선의 풍광이 장쾌합니다. 이 장쾌함이 좋다고 하는 분들도 있고, 이 홀 티잉 구역 왼쪽에 있는 암벽에서 쏟아지는 폭포와 연못 주변 꽃밭의 아름다움 때문에 이 홀을 좋아하는 분들도 있다고 합니다.

이미지중앙

밸리코스 7번 홀(청평마이다스GC 사진).


밸리코스 7번 파3 ‘헤라’ 홀 쪽으로, 6번 주피터 홀 티잉 구역의 연못물이 흘러 내려옵니다. 제우스의 정실 부인인 헤라의 이름을 가진 이 홀은 이름대로 위엄 있게 아름답습니다. ‘봉황이 알을 품은 지형’이라 하는데 바위산이 알을 품듯 둘러선 자리에 하트 모양의 그린이 있습니다.

원래 이 홀 조경의 주 테마가 화강편마암 바위 언덕이었기에 바위의 강건한 맨몸이 더 드러날수록 아름다운데, 세월의 흐름에 따라 풀과 나무들이 많이 자라 바위산을 가리니 아쉽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화강암이 햇빛을 받아 은은히 빛나는 모습이 많이 드러날수록 좀 더 위엄 있는 아름다움이 살아나겠다는 것이지요. 저도 의견이 같습니다.

6번 홀에서 7번 홀로 넘어가는 곳에는 이 골프장에서 가장 높은 데서 내려다 볼 수 있는 그늘집이 있습니다. 신화 스토리의 가장 높은 곳에 있는 곳이고, 밸리 코스에서 가장 인상적인 지역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이다스 코스의 드라마

이미지중앙

마이다스 코스 6번 홀 '투구바위'.


마이다스코스 6번 파4 ‘아테나’ 홀 페어웨이 오른 쪽에 있는 바위에는 ‘아테나의 투구’라는 이름이 붙어 있습니다. 지혜와 순결, 전쟁의 여신 아테나의 신전에서 어느 날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아름다운 메두사와 사랑을 나누자, 포세이돈을 연모하던 아테나 여신은 투구가 벗겨지도록 화를 내며 메두사의 빛나는 머리카락들을 하나하나 실뱀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그때 인간세계로 떨어진 아테나의 투구가 바위로 변했다는데...... 이것이 이 바위에 ‘아테나 투구바위’라는 이름을 붙인 사연입니다. “여신의 노여움이 투구바위에 서린 것인지, 투구바위를 만지면서 헤어지고 싶은 상대를 생각하면 실제로 헤어진다는 설이 전해지고 있다”고 골프장 홈페이지에 소개하고 있군요.

이미지중앙

마이다스코스 7번 '비너스' 홀.


마이다스코스 7번 파3 ‘비너스’ 홀은 이 코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홀로 꼽힙니다. 7번 홀을 감싸고 8번 홀을 기대어 주고 있는 바위 언덕은 이 골프장 조경의 백미라 할만큼 드라마틱한 공간입니다. 설계자 권동영 님은 말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마이다스코스 7번, 8번홀을 끼고 있는 암벽과 티하우스 주변지역을 마이다스밸리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늘집에서 보는 7번 홀 주변은 이 코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간일 뿐 아니라, 한국 골프장 파3홀의 교본처럼 인상적입니다. 이 홀을 둘러싼 암벽이 숲과 대비되는 색감과 질감의 콘트라스트가 특히 아름다운데, 세월이 흐르면서 암벽 위에 풀과 나무들이 붙어 자라 우거지면서 매력이 덜 드러나는 느낌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 홀 그린 너머로 ‘스위스마을’이라는 동화 같은 테마파크가 보이는데, 그 모습이 멋있다고 좋아하는 분들도 있다고 합니다. 제 생각에는 이 골프장의 아름다움 측면에서만 보면 그 마을은 '사족(蛇足)'인 듯합니다.

이미지중앙

마이다스코스 7번 홀의 수직 벽 벙커.


마이다스코스 8번 파4 ‘큐피드’ 홀은 이 코스에서 가장 인상적인 곳으로 손꼽힙니다. 그린 앞에 위치한 높이 5미터 폭 9미터의 대형 수직벙커 때문이지요. 레귤러 티 기준으로 보면 280미터 정도로 짧지만 그린 방향으로 공략하다가 벙커에 빠지면 뒤쪽 방향으로 거꾸로 나오는 방법 밖에 없는 상황을 맞게 됩니다. 벙커에 빠져서 5미터 높이의 수직벽을 넘기려고 시도하다가 몇 번 실패하고 공을 들고 나오는 사람도 많다고 합니다.

이 벙커의 수직 벽을 만들기 위해서 그 안에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친 기초 구조물을 쌓았다고 합니다. 상상력이 현실로 구현되기 위해서 많은 아픔이 필요했던 듯합니다. 물론, 플레이하는 분들이 굳이 알 필요는 없는 일이겠습니다. 이 벙커는 하트를 닮은 모양입니다. 이 홀의 주인은 사랑의 화살을 쏘는 ‘큐피드’입니다.

이미지중앙

마이다스코스 9번 홀(청평마이다스GC 사진).


마이다스코스 9번 파4 ‘박카스’ 홀은 게임의 대단원이 되는 ‘마지막 승부’ 홀로 손색없습니다. 412미터로 가장 긴 파4 홀이며 페어웨이 오른편 페어웨이에서 그린까지 이어진 기다란 연못을 따라 조성된 비치벙커는 ‘세이빙 벙커(공이 물에 빠지지 않도록 잡아주는 벙커)’ 역할도 하면서 마지막 홀을 아름다운 기억 잔상으로 남게 합니다.

물론 스코어는 아름답지 못할 경우가 많습니다. 페어웨이 왼쪽으로 티샷을 보내서 두 번 째 샷을 페이드(Fade 오른쪽으로 휘어지는 구질)로 하는 것이 정석적인 그린 공략법이겠습니다. ‘기술샷’이 필요하고 긴 홀이라 욕심을 내다가 참혹한 결과를 받아 쥐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리스 신화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이 홀 페어웨이를 걷노라면 하프나 리라의 음률이 흐르는 듯합니다. 그렇듯 드물게 아름다운 마지막 홀이라 술과 황홀함의 신 ‘박카스’라는 이름을 붙인 듯합니다.

5. 관리와 서비스

‘그린 콤플렉스’ 관리의 섬세함
그린의 굴곡과 그 주변의 오묘한 구역을 어떻게 관리하는가가 명문코스 자격의 첫 번째 요소라고 합니다. 흔히 ‘T.B.G.’ 라는 용어를 쓰는데, 티잉 구역(Teeing Area)과 벙커(Bunker), 그린(Green)의 세 가지 요소만 제대로 관리되어 있으면 일단 좋은 코스라는 것입니다.

서구의 전통적인 골프장 관리 개념에서 페어웨이는 그저 풀을 짧게 깎은 곳, 러프는 안 깎은 구역 정도로 간주 하며, 그린, 벙커, 티잉구역을 중요하게 친다는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그린은 명문 골프장을 가름하는 첫 번째 요소입니다.

이 골프장의 그린은 큽니다. ‘투 그린’에서 ‘원 그린’으로 바뀌어 가던 구십년 대 말, 이천년 대 초반에 생긴 골프장들의 특성이기도 하지요. 관리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 ‘투 그린을 합친 크기의 원 그린’을 만든 것입니다. 넓은데다가 굴곡이 다이나믹하기에 관리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당연한데도 이 코스의 그린은 섬세하게 관리됩니다.

그린의 밀도가 높고, 스팀프미터 측정 기준 3.0미터 내외의 그린 스피드를 늘 유지합니다. 빠를 때는 3.2미터 이상의 스피드도 나온다 하니 ‘명문’이라는 이름에 손색이 없겠습니다. 그린 주변 잔디도 ‘타이트’하게 관리되는 편이라서 플레이어들의 숏게임 실력 차를 예민하게 변별해 줍니다.

이미지중앙

코스와 자연의 무르익은 조화
이천년대 중반에 제가 이 골프장에 처음 왔을 때만해도 산중턱을 절개한 법면이 약간 부자연스러운 모습인 곳이 몇 군데 있었습니다. 깔끔하게 관리되긴 했지만 어딘가 상처가 덜 아문 듯한 느낌도 있었지요.

그런데 요즘에는 거의 코스와 자연이 서로 어루만지며 동화된 모습입니다. 골프장에 옮겨 심은 대표 수목은 소나무 단풍나무 그리고 산벚나무 등인데 깊은 원시림 속 참나무와 밤나무들이 페어웨이 한가운데까지 향기를 뿜어냅니다.

특히 단풍나무들은 코스 곳곳에서 발견되며, 억새밭과 형형색색의 꽃을 피우는 관목들이 곳곳에 무리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 근방에서는 유명산 단풍이 유명한데, 곡달산 단풍도 그에 못지않습니다. 금잔디 들판에 억새가 스쳐 울며 단풍나무들이 황홀경에 빠져 물드는, 가을에 다시 와서 이 탐사기를 다시 쓰고 싶습니다.

이미지중앙

클럽하우스
이 골프장 클럽하우스 식당은 많은 종류의 와인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집니다. 식당 입구 잘 갖춰진 와인 진열장이 인상적이지요. 안양CC와 함께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와인에 눈뜬’ 클럽하우스 레스토랑이라 합니다.

클럽하우스 앞에 전시된, 결식아동 돕기 자선 경매 기금을 내고 낙찰받았다는 1962년산 클래식 자동차도 눈길을 끕니다. 그런 한편 더 눈에 띄는 것은 태양광 발전 건물 클럽하우스 건축이 아닐까 합니다. 현란한 장식을 배제하고 기능을 형태화하는 데 집중한 클럽하우스에서, 교육 그룹이 만든 골프장다움이 엿보입니다.

▶ 신화 속 마이다스 이야기

그리스 신화 속 마이다스는 잘 알려진 두 편의 이야기로 전해집니다. 마이다스는 고대 소아시아 지역 프리기아의 왕입니다. 그는 술과 연회의 신 디오니소스(박카스)의 스승인 실레노스를 돌봐준 바 있는데 디오니소스는 그에 대한 보답으로 마이다스의 한 가지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합니다. 마이다스는 자신의 손에 닿는 것은 무엇이든 황금으로 되기를 소망합니다. 디오니소스는 그의 어리석음을 안타까워하면서도 소원을 들어주지요.

손에 닿는 것은 나뭇가지도 궁전의 기둥도 모두 황금으로 변하자 마이다스는 환호합니다. 그러나 성대하게 차려진 식탁 위의 빵도 포도주도 모두 황금으로 변하여 먹을 수 없게 되자 절망하지요. 모든 것이 황금으로 변해 풍족해지지만 황금은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 됩니다.

그토록 원했던 황금이 잡을 수 없는 신기루가 되고 만 것이며 한 모금의 물도 마실 수 없는 인생은 물거품 같은 것이 됩니다. 그는 다시 디오니소스에게 간절히 이 ‘황금의 저주’를 풀어달라고 청합니다. 가엾이 여긴 디오니소스의 명에 따라 강물에 몸을 씻고 가까스로 저주를 풀게 되지요.

황금의 부질없음을 깨달은 그는 궁전을 떠나 산과 숲을 돌아다니다가 목신 판의 피리 소리에 심취하여 그를 열성적으로 섬기게 됩니다. 그러다가 아폴론과 판의 음악 경연에 우연히 함께 하게 되지요. 판은 갈대 피리를 연주하고 아폴론은 리라를 연주합니다. 그 경연에서 마이다스는 판의 편을 들었는데 화가 난 아폴론은 그의 귀를 당나귀 귀로 만들어 버립니다.

마이다스는 모자를 눌러쓰고 아무에게도 자신의 귀를 보여주지 않지만, 가끔 머리를 깎아주는 이발사에게만은 이 비밀을 감추지 못합니다. 왕의 귀가 당나귀 귀라고 떠들고 싶었지만 참을 수 없었던 이발사는 숲 속에 땅을 파고 그곳에 대고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속삭인 후 흙을 덮지요. 그 땅 위로 갈대들이 자라고, 바람이 불면 갈대들이 바스락거리면서 이발사의 속삭임은 갈대들의 합창으로 세상에 퍼집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의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들을 어떻게 읽으시는지요.
축복과 저주, 비밀과 복수, 그리고 욕망이 버무려진 마이다스의 신화는 인간 본성에 대한 우화적 가르침이겠지만, 이 골프장에서 함께 라운드한 동반자 중 한 분은 "골프 할 때 헛된 욕심 내지 말고 남의 플레이에 괜한 참견은 하지 말것이며, 남몰래 룰을 어기지 말지어다" 하는 골프 스토리라고 하더군요.
이 골프장 이름을 ‘마이다스’라 지으면서 담았을 여러 함의를, 이곳에서 골프를 할 때마다 즐겁게 상상해 봅니다.

글과 사진 류석무 / 경영인. 골프 스토리라이터
이 탐사기에 대한 의견은 글쓴이에게 이메일(smyou21@naver.com) 보내 주셔도 감사히 받아 반영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 컨텐츠는 계절마다 업데이트하여 재발행 되며 책으로도 발간될 예정입니다.

sports@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
          연재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