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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왕의 시선’으로 본 내밀한 宮…헤리티지 뷰
5월의 어느 화창한 오후 서울시내 한 대학 캠퍼스. 한국사를 전공하는 대학생 이역사 씨는 아이폰을 꺼내 경복궁 탐사에 들어갔다. 같은 과 친구 이단죽 씨가 “경복궁 근정전 천장에 새겨진 용의 발톱이 몇 개인지 아느냐”고 묻는 통에 잠시 설전을 벌이던 차다. ‘5개’라고 속으로 대답했지만 자신이 없었다. 내기를 거는 통에 두고 다소 소심해지면서 의구심이 일었다.

그는 얼른 아이폰을 펼치고 바탕화면의 ‘다음 헤리티지뷰(Heritage View)’ 아이콘을 클릭했다. 검색어에 경복궁 근정전을 쳐넣자 화면 가득 전각 내부 영상이 떴다. 마치 가상현실 속에 들어선 것 같다. 화면을 클릭해 오른쪽으로 잡아끄니 영상이 왼쪽으로 ‘빙그르르’ 미끄러진다. 고개를 돌리는 것처럼 내부가 파노라마로 스친다. 어좌(御座) 앞으로 ‘걸어가’ 왕의 시선으로 360도를 돌며 10개의 기둥 사이를 휘둘러본다.

이제 화면을 아래로 드래그해 고개를 들어 천장을 올려본다. 확대 버튼 클릭. 천장에 자리한 용 문양이 비로소 시야를 채운다. “일곱 개잖아. 밥 사!” 휴대전화 화면 가득 두 마리 용의 발바닥에서 방사형으로 뻗쳐나온 발톱들이 선명하다. 국보 제223호이자 경복궁의 중심 건물로, 왕의 즉위식을 비롯한 중요한 국가의식이 거행되던 이곳은 일반의 출입이 통제된 곳. 역사 씨는 그곳에 발을 들이고 둘러본 것 같은 느낌에 묘한 쾌감마저 느꼈다. 역사 씨는 정남방(S) 화살표를 클릭해 전각 밖으로 ‘걸어’ 나와 돌계단 밑 정원 좌우로 정1품 이하 품석(品石)까지 굽어봤다.

비슷한 시각, 일본 도쿄 외곽의 주택가. 한국인 유학생 변해탄 씨는 옆집 나카시마 씨가 “다케시마(독도)가 한국 땅이 맞느냐”고 묻자 컴퓨터를 켰다. ‘헤리티지뷰’에 접속해 ‘독도’를 입력하자 금세 섬의 현장 이미지가 떠오른다. 변 씨는 바위에 새겨진 태극기 영상을 보여주고 링크돼 있는 다양한 자료를 제시하며 영유권을 조목조목 설명했다.

헤리티지뷰는,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에서 서비스 중인 신개념 지도인 ‘로드뷰(Road View)’에 문화유산(heritage) 정보를 얹은 형태의 서비스다. 다음 로드뷰는 실제 거리를 360도 파노라마로 특수 촬영해 지도에 탑재한 것. 현장에 서서 주위를 둘러보는 개념으로, 여러모로 편리해 인기가 높다. 헤리티지뷰는 여기에 착안해 현장을 답사하지 않고도 문화재를 둘러볼 수 있도록 만든 것. 인터넷과 스마트폰, 지하철역에 설치된 전자지도(디지털뷰)에서 서비스된다. 현재 경복궁 근정전이 시범 서비스되고 있는데 올해부터 2013년까지 4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국내 대부분의 문화유산을 다 등재할 계획이다.

다음 로드뷰와 같이 360도 고화질(약 840만화소) 파노라마 사진 형태. 최세훈 다음커뮤니케이션 대표는 “고화질 화상으로 이용자가 자유롭게 문화유산 내부를 볼 수 있는 서비스는 세계 최초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최 대표와 이건무 문화재청장은 지난 17일 직접 만나 관련 업무 협약을 맺었다. 다음은 제작과 서비스에 들어갈 자본, 기술, 인프라를 제공하고 문화재청은 여기 서비스할 정보와 자료 제공, 대상 문화유산 촬영 허가 등 행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기로 한 것이다.
1단계로 올해는 4대궁과 종묘, 세계유산, 고도보존지역이 구축돼 서비스될 예정. 내년에는 국보와 보물, 사적과 명승 등 국가 지정문화재 전체를 추가하고, 2012~2013년에는 지방자치단체와 제휴를 맺어 시ㆍ도 지정문화재와 주요 박물관 소장 유물까지로 범위를 넓혀나간다는 계획이다.

헤리티지뷰는 향후 문화재 전문 정보와 사용자 제작 콘텐츠까지 포괄한 종합 생활밀착형 서비스로 완성된다. 현재 서비스되는 근정전의 경우, 길 찾기와 내부 둘러보기 수준에 그치지만 여기에 문화유산 정보 거점 페이지를 연동하고 문화재청 전문 정보와 각종 블로그 등의 UCC, 지자체와 민간 연구단체의 웹 정보까지 링크한다는 것. 길 찾기와 대중교통, 교통 상황, 날씨 정보 등도 제공된다. 주말에 가족과 함께 영릉(英陵)에 가고 싶다면, 해당 일의 경기도 여주 날씨를 체크하고 미리 여기 얽힌 얘기를 알아둬 아이들에게 설명해줄 수도 있는 셈이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첨단 IT 인프라를 선택한 만큼 딱딱하게 죽어 있는 정보 대신 살아 움직이며 재미와 정보를 동시에 주는 콘텐츠로 진화시킬 것”이라고 말한다.

헤리티지뷰는 다음 인터넷 지도상에 스카이뷰, 로드뷰, 교통 정보와 나란히 문화유산 탭 형태로 전면 배치돼 네티즌의 관심을 적극 유도할 계획이다.
헤리티지뷰는 일선 학교에서의 문화재 교육 풍경도 바꿔놓을 것으로 보인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컴퓨터만 있으면 어떤 문화재든 교실에 앉은 채로 일별하며 상세한 교육을 할 수 있을 것”이라며 “문화재 교육의 패러다임 자체를 바꿔놓을 수 있는 혁신적인 도구로 기능을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세월에 풍화되는 역사의 현장이 21세기 첨단 시스템을 안고 어떻게 살아남을지 지켜볼 일이다.
임희윤 기자(imi@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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