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는 실력으로 말한다.’ 너무나 당연한 명제다. 회사는 실적으로, 학생은 성적으로, 예술가는 작품으로 말하듯이….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선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가 가격을 좌우할 때가 많다. 제품이 신통찮아도 그 제품이 유일하다면, 성적이 별로여도 대학입학 정원이 미달이라면 그들은 생존할 수 있다.
국내 여자골프계 또한 수요에 비해 공급이 달려 요즘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여자골프는 박세리 이후 한국의 위상을 널리 알린 효자 종목이고, 수십명의 선수가 미국으로, 일본으로 떠나 수백만달러를 벌어들이는 외화벌이 종목이다. 그러나 여자팀을 창단하려는 기업이 늘면서 선수들의 몸값이 비정상적으로 치솟으며 ‘거품현상’까지 빚어지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일찍이 타 스포츠에서 빈번히 나타난 바 있다
1990년대 중반, 여자농구의 인기가 마지막 정점을 달릴 때 여고졸업반 선수들의 계약금은 무려 6억~7억원까지 치솟았다. 각 실업팀 스카우트 담당자들은 ‘드리블할 줄 알면 1억, 양손 레이업슛만 되면 2억’이라는 자조 섞인 농담까지 했을 정도다.
2002년 월드컵축구 4강 이후에는 축구선수들의 가치가 극에 달했다. 태극마크를 단 채 달랑 한 게임만 뛰어도 연봉은 3배 이상 솟구쳤다.
선수들의 에이전트들은 ‘소속 선수가 대표팀에 소집됐다’는 소식이 나오면 구단과 마주앉는 자세부터 달라지곤 했다. 태극마크를 단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대표팀 역임’이라는 마패(?) 하나만 갖고 목에 잔뜩 힘을 준 것.
이런 현상이 요즘 여자골프에서 나타나고 있다. 신지애 최나연 안선주 김인경 서희경 유소연 이보미 안신애 양수진 등 특급스타들이 잇달아 등장한 여자골프는 국내는 물론, 미국과 일본에서의 활약이 이어지면서 인기가 급상승 중이다.
당연히 기업들은 이들을 이용한 홍보효과에 주목하게 됐고, 스타급 선수들은 몸값 폭등으로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여자골퍼들은 때론 성적도 별 문제가 안 되곤 한다.
기업 고위층이 선호하거나, 프로암 이벤트에서 인기가 높으면 될 때가 많다. 때문에 우승 한 번 없어도 ‘상품성’만 있으면 몇억원은 가볍게 호가하고 있다.
모 골프단 관계자는 “몸값이 올라도 너무 올랐다. 성적이 신통찮아도 1억은 기본이고, 상위랭커의 경우 2~3억을 부른다”며 “이런 상황이라면 8명 뽑을 걸 3, 4명밖에 못 뽑는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연간 3억원이 안 되던 중계권료도 8~9배나 치솟았다.
1990년대 전국을 강타했던 벤처 거품을 떠올린다면 지나친 억측일까. 당시 한 투자자는 외국 출장길에 올랐다가 일등석을 타고 해외에 ‘룰루랄라’ 놀러가는 벤처사업가를 보고 ‘그런 사람에게 투자했으니 정말 기가 차더라’고 토로했다. 세간의 열풍에 편승해 그저 누리기만 한 대가로 벤처거품은 순식간에 사그라졌다.
여자골프도 그런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같은 지적에 선수와 매니지먼트사는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선수들이 기량 향상을 위한 연습보다 계약금 올리기에 신경을 쓸 경우 그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하니 말이다. 당장 먹기 좋다고 곶감을 줄창 빼먹다간 결국 빈 새끼줄만 남게 마련이다. 인기도 좋지만 실력 향상이 우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