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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완서표 문학의 진정한 힘, 유머
“올 겨울 추위는 유별나다. 눈도 많이 왔다.”

한국문학계의 큰 별, 소설가 박완서(81)가 세상을 떠난 22일 아침에도 10년전 단편 ‘그리움을 위하여’에 쓴 대로 유별난 추위에 눈이 하얗게 내렸다. 해맑은 미소가 소녀처럼 수줍었던 ‘아름다운 우리의 이웃’ 박완서는 그렇게 조용히 떠났고, 남은 이들은 허전하고 황망한 마음에 자꾸 하늘바라기만 한다.

1931년 개성에서 태어난 고인은 어린 시절 아버지를 여의고 조부의 극진한 사랑과 엄마의 특별한 교육열로 서울로 이사해 숙명여고를 졸업, 1950년 서울대 국문과에 입학했으나 신입생이었던 그해 6.25전쟁이 발발하면서 학교를 중퇴하고 만다. 의용군에 끌려갔다 총상을 입고 돌아온 오빠의 죽음 등 그의 삶의 방향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6.25전쟁의 상처는 생의 끝까지 그를 놓아주지 않았지만 그의 문학의 마르지 않는 원천으로 작용했다. 그 자신 생전에 “6.25가 없었으면 소설을 썼을까“고 말했을 정도로 전쟁의 상처는 1970년 데뷔작 ’나목’을 비롯, ’엄마의 말뚝’,자전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그 산이 정말 거기에 있었을까’ 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작품의 자양분이 됐다. 증언으로서의 그의 전쟁문학은 한 여성이 겪어낸 전쟁의 세밀화, 풍속화라는 점에서 문학사에 차지하는 위치가 특별하다.

그러나 그의 문학의 진정한 힘은 박완서표라 할 만한 재미다. 나와 내 주위에서 일어날 법한 소시민의 일상을 예리하면서 유머러스하게 풀어나간데 있다. 세태를 슬쩍 비틀어 보여주지만 독하지 않고 웃음을 짓게 만드는 글쓰기는 그의 삶에 대한 긍정과 사람에 대한 애정이 바탕이 됐기에 가능했다. 그의 작품은 세대를 불문하고 나올 때마다 베스트셀러가 됐고,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친절한 복희씨’’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등 감각적인 책 제목은 오래도록 회자됐다.

그의 유머와 웃음 뒤, 개인사는 상처가 많았다. 부친과 오빠를 일찍 잃은 것도 모자라 대한민국이 88올림픽으로 환호할 때 아들과 남편을 동시에 떠나보내야 했다. 그에게 글쓰기는 그런 고통을 독자들과 나누는 일이었고 치유의 행위였기에 공감의 폭이 더 컸다. 지난해 등단 40주년, 팔순을 맞고도 산문집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와 소설 ‘석양을 등에 지고 그림자를 밟다’를 발표하는 등 왕성한 창작열을 보여준 고인은 늘 ‘영원한 현역’임을 자랑스러워했다. 이제 그는 세상에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고 끝까지 글을 쓰고 싶다던 자신의 소망대로 위로와 힘의 영원한 문학으로 남았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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