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본격 성인소설 알리바바(173)
<173>적과의 동침 (10)

글 채희문/그림 유현숙


현성애의 발가락이 사타구니를 마구 헤집어도 유민 회장은 아무런 방어를 할 수 없었다. 그는 오로지 마주 앉아있는 아내 신희영의 표정에 온통 관심을 기울이는 중이었다. 이 세상 어떤 남자인들 간이 배 밖에 나와 있지 않은 한, 아내와 마주 앉은 상태에서 다른 여자와 눈을 맞출 수 있을까.

“으음, 으흐흠!”

현성애와는 눈 한번 마주하지 못한 채 기껏해야 헛기침으로 싸인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고양이가 갸르릉 거리듯이 가래 끓는 소리를 가늘고 길게 내는 것은, 곧 지겟작대기가 사달이 날 지경이니 발가락 좀 거둬가라는 모종의 암시였다.

“왜요? 회장님, 몽고! 겨울이 긴 나라 몽고에서도 골프 회원권 값이 오른다는 사실이 거짓말처럼 여겨지세요?”

그런가 하면 강유리는 어떻게 해서든 말끝마다 몽고라는 단어를 드러내기 위해 애쓰는 중이었다. 사방이 적이었다. 어디 꿀 먹은 벙어리가 따로 있을까.


그러나 사람이 천길만길 벼랑 끝에 붙어있더라도 곧 죽을 것이란 보장은 없는 법이다. 천혜의 타이밍이라고 해야 할까? 벼랑으로 곤두박질 칠 수도, 기어 올라갈 수도 없는 최후의 순간에 이르면 신은 가호를 내려주게 마련 아닌가.

“저런, 저 미친 것들 좀 보세요. 저 광장이 자동차 경기장인줄 아나봐! 아주 난리가 났어요. 여보! 우리 호성이를 저런 미친놈처럼 만들자는 말은 아니지요?”

눈 한번 깜짝이지 않고 유민 회장을 바라보던 신희영을 졸지에 창문턱으로 내몬 일등공신은 사실 유호성과 김지선이었다. 그러나 프랑스식 레스토랑이 무려 10층 높이에 있었으므로 그들이 누구인지를 알아낼 재간은 없었다. 유민 회장도 이때다 싶어서 사타구니를 추스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지겟작대기는 참으로 요령부득이어서 때와 장소를 가리지 못하고 벌떡 벌떡 일어서는 게 흠이었다.

“당신, 서있는 자세가 왜 그래요? 어디 불편해요?”

“아니야, 밥 먹으면서 신경을 썼더니 약간 체했나봐.”

현성애의 발가락 공격에 벌떡 일어선 지겟작대기로 인해 똑바로 서있기가 힘든 까닭이었다. 그는 엉거주춤 허리를 굽힌 채 창문 곁으로 다가와 아래를 굽어보기 시작했다.

“참 멋지군. 참으로 남자다운 모습이야. 여보, 랠리경기가 바로 저런 거라고. 용감무쌍하잖아? 엔진 파열음이 여기까지 들려오는 군.”

“그렇지요? 회장님. 랠리 경기가 저렇게 박력 넘치기 때문에 광고 스폰서가 엄청나게 붙는대요. F1 경기에 따라붙는 광고료는 어마어마해요, 회장님.”

현성애가 이렇게 맞장구를 쳤다. 하지만 둘의 꿈같은 대화는 거기까지였다. 초등학교에서 반장 선거를 할 때도 과반수, 국회에서 법률을 제정할 때에도 과반수, 모든 의견이 과반수로 결정되는 세상에서 소수자 둘만이 꿈의 대화를 계속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난 못해, 안 해! 저런 야만적인 스포츠에 투자할 수 없어요. 당신 눈으로 잘 보라고요. 저게 스포츠야? 난리 발광이지. 안 그래요? 여러분들?”

“그럼요, 저질 스포츠지요.”

강준호 팀장, 강유리 선수… 그들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그들은 팀장, 선수이기 이전에 유민 회장에게 원한을 품고 있는 적들이었다. 다만 유민 회장에게 복수하는 방법이 세련될 뿐이지 마음속에 드리워진 그늘은 다른 누구보다도 짙었다. 그늘 속에 담긴 실체는 유민 회장으로 인해 M&A를 당해 인생을 망친 아버지와 딸 아니겠는가.

스포츠마케팅 팀장의 직함을 부여받은 강준호의 눈빛이 반짝 빛났다. 이제야 유민 제련그룹의 후계자 유호성을 볼모로 잡은 채 모사를 벌일 수 있게 된 셈이었다. 자신의 딸 강유리를 세계적인 골프선수로 키울 때까지 유호성은 희생양이 되어주어야만 할 것이다. 그는 1호 골프선수로 불리는 강유리에게 눈을 찡긋거렸다. 어쩌면 모두가 감쪽같이 속을 수 있을까? 둘이 아버지와 딸의 관계란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니, 모두들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러니 그 윙크는 모든 일이 성공적이라는 의미를 담은 승전보와도 같았다.

<계속>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