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구조 개편엔 원칙 동의
차기대선 판 흔들까 회의적
김문수 “정치갈등만 부채질”
▶야권 반응
“실익 없다” 논의자체 거부
정치 역학관계 재편 위기감
박지원 “현안 블랙홀 될수도”
▶여권 반응
지도부 중심 불 지피기 한창
이재오 ‘개헌전도사’ 세몰이
안상수 등은 개헌특위 주장도
이명박 대통령이 개헌 추진에 대한 필요성을 명확히 밝히면서 여권 지도부를 중심으로 개헌 불씨 지피기가 한창이지만, 차기 대선 후보로 꼽히는 여야의 잠룡들은 대부분 부정적인 의사를 밝히고 있다. 정권 후반기로 치닫는 현 시점에서 여권 내 차기 유력 주자인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 김문수 경기지사 등 주요 잠룡들이 개헌 논의에 노골적으로 거부감을 표시하고 있고, 야권에서도 절대 불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개헌 추진동력은 미약한 상황이다.
▶여권 잠룡들 대부분 “때가 아냐”=잠룡들은 권력구조 개편 등을 위한 개헌 자체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동의하고 있지만, 현 시점에서의 논의는 자칫 정략적으로 이용될 수 있고 심지어 차기 대선의 판까지 뒤흔들 수 있다며 회의적인 입장이다. 일부 잠룡은 여권 핵심부가 개헌을 추진하는 것은 개헌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정치역학관계를 재편하려는 정치적인 의도가 있다는 주장도 제기하고 있다.
박 전 대표는 지난달 4일 대구 방문에서 “개헌에 대해서는 전부터 다 얘기했던 것”이라고 기존의 입장을 확인한 후 미동도 않는 상태다. 기존 입장이란 ‘개헌을 한다면 4년 대통령 중임제가 좋다는 것이지만, 그보다 국민적 공감대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 시점에서의 개헌 논의에 부정적인 입장이다.
다른 예비 주자로 꼽히는 김 지사는 지난달 25일 헤럴드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지금 헌법을 고쳐야 할 이유가 뭐가 있나. 지금 어려운 게 개헌이 안 돼서 그런 것인가?”라며 국민도 관심이 없는 개헌 논의 자체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일부에서 주장하는 대통령 4년 중임제 개헌에 대해서도 “이명박 대통령을 뽑을 때 국민이 압도적으로 지지했지만, 100일 만에 물러가라고 시위를 했다”며 “국민이 1년도 못 기다리는데 4년 중임제를 하면 정치 갈등이 더 커진다”고 강조했다.
정몽준 전 대표는 비교적 개헌에 호의적인 입장이다. 그는 지난달 27일 개헌과 관련해 “여유를 가지고 논의했으면 한다”며 “권력구조와 개헌 시기를 어떻게 한다든지 해서 결론을 미리 내놓고 (개헌을 논의)하면 부작용이 난다”고 밝혔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개헌 논의 자체에 대한 정치적 반대를 감안해 “이번 정권에서 개헌해 차차기 정권부터 적용시키면 되지 않겠느냐”는 입장을 밝혔다.
▶야권, 개헌론 정치적 의도에 의구심=야권의 잠룡들은 현재 여권발 개헌 논의가 자신들에게 ‘실익’이 없다고 보고 일절 논의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태도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지난달 15일 “(현행) 헌법과 민주주의 정신에만 충실해도 권력 집중을 해소할 수 있다”면서 “있는 권력으로 물가나 잡고 전세대란을 막으며 SSM 관련법을 통과시켜 서민 생활을 돌봐줄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손 대표는 특히 “(여권이) 공연히 실정을 호도하고 정권 연장 술책으로 개헌을 한다면 국민은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며 여권 핵심부의 정치적 의도에 의구심을 드러냈다.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개헌 논의에 대해 더 민감하다. 민주당과 한나라당 친이(친이명박)계의 밀실협상 의혹을 제기했던 그는 이를 두고 “정치도의에 어긋나고 국민을 매우 무시하는 정략적인 개헌 추진 시도”라고 강력히 비판했다.
야권 내 또 다른 주자인 정동영ㆍ정세균 민주당 최고위원도 한나라당의 지난해 예산안 단독 처리 이후 사실상 개헌 논의가 불가능해졌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박지원 원내대표는 자신을 “개인적으로 개헌 찬성론자”라고 소개하면서도 “현재로선 모든 민생 문제, 중요 현안이 (개헌) 블랙홀로 빨려 들어갈 수 있다”며 현 시점에서의 개헌 논의가 부적절하다는 입장을 거듭 밝히고 있다.
강소국 연방제 개헌을 주장하고 있는 이회창 자유선진당 대표는 “헌법 개정이란 시대에 따라 한 나라의 기틀을 잡는 매우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그 논의는 이를수록 좋다”는 의견이지만 그 속내는 한나라당 지도부와 큰 차이가 있다.
▶與 핵심 “못 먹어도‘고’”=현재의 정치구도상 개헌을 위해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진영은 여권 핵심부다. 그 가운데 이재오 특임장관은 ‘개헌 전도사’다.
이 장관은 이 대통령의 신년 방송좌담회 이후 더욱 공개적으로 개헌의 방향을 제시하며 개헌론 세몰이에 나서고 있다. 그는 설 연휴 마지막 날인 지난 6일 친이계 의원 모임인 ‘함께 내일로’의 개헌 간담회 자리에서 개헌의 당위성을 역설하는 한편, 자신의 트위터에 한나라당의 개헌 당론에는 변함이 없다며 친박을 비롯한 개헌 회의론자들을 몰아세우고 있다. 이 장관은 친이계 모임에서 “친이계가 뭉치면 개헌은 된다”면서 “왜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개헌을 이야기했는지 새겨들어야 한다. 개헌은 시대정신인 만큼 반드시 이뤄질 것”이 라고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나 김무성 원내대표도 개헌특위 설치 등을 주장하며 개헌 공론화에 적극 나서고 있다. 안 대표는 지난달 27일 “기본권이나 권력구조, 또 각 헌법기관의 권한 문제도 검토해봐야 할 때가 됐다”며 “나는 오래전부터 개헌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왔고, 그것을 신념이자 소신으로 갖고 있다”고 밝혔다.
심형준ㆍ서경원 기자
cerju@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