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교육계는 우리의 국토처럼 양분되어 있는 듯하다. 보수와 진보 양 진영으로 나뉘어 첨예한 이념적 대결을 벌이고 있는 불안한 모습이 연일 언론매체를 통해 보도되고 있다. 특히 자칭 진보 교육감들은 자신들이 관할지역의 교육에 관한 한 마치 전제군주나 되는 양 막강한 권한을 휘두르는 것도 모자라 사사건건 중앙정부의 교육정책과 마찰을 빚고 있다.
이러한 갈등으로 인해 주요 교육정책들은 이정표를 잃은 채 표류하고 있으며, 학부모와 학생들 사이에서는 ‘도대체 어느 장단에 맞추라는 것이냐’라는 강한 불만이 표출되고 있다.
의사가 우파건 좌파건 간에 그의 역할은 환자의 치료에 있듯이, 보수든 진보든 교육자의 역할은 아이들을 잘 가르치는 데 있는 것이다. 실력 있고 인성 바른 건강한 시민을 육성하자는 교육 목적에는 좌우의 차이가 없어야 한다. 교육에 대한 사안들을 정치쟁점화하여 갈등과 분열을 조장할 경우,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과 학부모들의 몫이고 이에 대한 책임은 모두 교육계에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이러한 갈등의 해소를 위해 필자는 크게 두 가지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우선, 교육감들은 현행 제도상 교육감에게 부여된 막강한 권한을 신중하게 행사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교육감이 가지는 권한은 무소불위에 가깝다. 시ㆍ도 교육에 소요되는 예산집행권, 교원 및 행정직원에 대한 인사권, 그리고 교육과정의 운영에 관한 일체의 권한은 모두 교육감에 속한다. 이들이 이렇듯 엄청난 권한과 힘을 자신들의 정치적 신념을 구현키 위한 도구쯤으로 여긴다면 교육계의 이념적 갈등은 심화될 수밖에 없다.
권력의 막강함보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교육감을 견제하고 감독하는 장치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교육감은 자신이 소속한 시ㆍ도의 자치단체장은 물론 교육과학부의 직접적인 지휘나 통제도 받지 않는다. 물론 교육의원이라는 제도가 있기는 하지만 이 제도만으로 교육감의 권한을 견제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힘의 견제와 균형을 위한 장치가 도입될 때까지는 교육감들의 교육자적 양식에 호소하는 수밖에 없다.
다음으로, 포퓰리즘(populism)을 경계해야 한다. 대중적 인기에 영합하는 포퓰리즘은 교육의 본질을 호도하고 건전한 교육관을 오염시킬 소지가 크다. 현재 교육계의 가장 대표적인 포퓰리즘은 무상급식, 엄밀히 표현해 세금으로 제공되는 급식이다. 이 공약으로 진보 교육감들은 재미를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공약의 득표력과 공익성이 별개라는 사실을 우리는 세종시의 예를 통해 목도하고 있다.
따라서 무상급식은 당장 재고되어야 한다. 무상급식에 소요되는 예산이면 매년 8만명이 넘는 신임교사를 채용할 수 있고, 70만명 정도의 인문계 고교생에게 무상교육을 제공할 수 있다. 이들 중 무엇이 더 시급하고 중요한 일인가에 대해서는 깊은 고민이 필요 없을 것이다.
카를 마르크스는 갈등을 사회 변화의 원동력이라고 본다. 위험천만한 생각이다. 한 사회가 이데올로기 논쟁으로 분열되고 갈등이 심화되면 변화가 오기 전에 그 사회는 붕괴되고 말 것이다.
교육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은 교육의 본질에 대해 보다 진지하게 고민하고 잘 가르치기 위해 더욱 노력하는 자세를 통해 갈등의 봉합에 힘써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