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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연이 휩쓴 메마른 이라크…할머니와 손자의‘슬픈여행’
새영화 ‘바빌론의 아들’


최근 이집트 사태로부터 번진 중동지역의 민주화 운동이 세계적인 이슈가 되고 있는 가운데 국내 개봉한 이라크 영화 한 편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바빌론의 아들’이다. 중동지역 국가 중 이란 영화는 압바스 키아로스타미나 모흐센 마흐발바프, 자파르 파나히 등 세계적인 거장감독을 잇달아 배출해내며 국내에도 잘 알려져 있다. 최근엔 제61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나세르와 시민, 그리고 별거’라는 작품이 황금곰상과 남녀배우상을 석권하며 다시 한 번 이름을 떨쳤다. 반면 이란과 이웃한 이라크 영화의 존재는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낯설다. 걸프전과 이라크 전쟁 이후로 이라크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은 ‘그린 존’이나 ‘허트 로커’ 등 할리우드에서 뜸하지 않았으나, 이라크인들이 이라크인들의 삶을 다룬 영화는 드물었다. 한국에선 이라크 영화로는 샤우캇 아민 코르키 감독의 ‘킥오프’가 사상 최초로 지난해 개봉됐다.

국내에 선보인 두 번째 이라크 영화인 ‘바빌론의 아들’은 소수민족인 쿠르드족 소년과 할머니의 가슴 아픈 사연을 그린 작품이다. 쿠르드족의 한 노파가 손자와 함께 잃어버린 아들을 찾아 나서는 여정을 그렸다.

사담 후세인 정권이 무너진 2003년 4월. 12살 소년 아흐메드는 쿠르드어 외에는 할 줄 모르는 할머니의 입이 돼 12년 전 실종된 아버지를 찾아 나선다. 터키, 이라크, 이란 등에 흩어져 사는 쿠르드족은 수십년간 이라크 정부로부터 ‘인종청소’에 가까운 학대를 받은 민족. 특히 걸프전과 이라크전쟁에서 미국 및 연합군에 협력했다는 이유로 대규모로 학살을 당했다. 영화의 엔딩 크레딧에는 “이라크 내에서 지난 40년간 쿠르드족 100만명이 학살당했으며 이라크전쟁으로 사담 후세인 정권이 무너진 이후 300개 매장지에서 25만구의 유골이 발견됐다”고 전한다. 


음악가였던 아버지를 찾아 나선 소년과 할머니의 여정은 고달프다. 동승을 청한 트럭운전사는 많은 돈을 요구하고, 길은 때때로 미군들에 의해 봉쇄당한 상태이며 버스는 고장 나기 일쑤다. 소년은 고대 유적지 바빌론의 공중정원과 아버지와의 행복한 해후를 꿈꿨지만 힘들게 도착한 끝에는 매장지에 처참하게 흩어진 유골들과 유족들의 가슴을 치는 울음뿐이었다.

미국 영화잡지인 ‘버라이어티’에 의해 ‘2010년 중동의 감독’으로 꼽힌 모하메드 알 다라지 감독은 5년간의 취재와 기획, 제작을 통해 이 영화를 완성했으며, 소년 아흐메드 역의 야서 탤리브와 할머니 역의 샤자다 후세인은 일반인 중에서 캐스팅했다. 특히 샤자다 후세인은 사담 후세인 집권 시절 정치범으로 5년간 복역을 하면서 남편과 아들을 잃은 아픔을 겪었다. 또 모하메드 감독은 실제 아들을 잃고 이라크 전역을 찾아 헤맨 이모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영화 제작을 결심했다. 이 같은 진정성이 영화의 감동을 배가시킨다. 슬픔과 고통뿐 아니라 모진 운명을 견디며 살아온 세월을 굳건한 표정과 연기에 담은 할머니와 천진한 눈망울로 참혹한 현실을 감내하며 성장해가는 소년의 연기가 끝내 관객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한다.

이형석 기자/ su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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