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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르만의 피보다 더 불같은, 검은 눈 이방인
세계最古 교향악단 LGO 내한…동양인 첫 수석 바이올리니스트 조윤진
한국선 무조건 솔리스트…하지만 유럽은 달라요

모든 연주자가 독주자가 될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오케스트라 정단원이 돼야겠다 생각했죠

함부르크 악장이 된 거요?

쫓아가는 것보다 이끌어 가는 게 더 편하거든요



7일 저녁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LGO) 단원들이 무대로 입장을 시작했다. 기대로 가득 찬 박수 속, 단원들 사이로 까만 단발머리의 바이올리니스트가 눈에 띄었다. 지휘자 리카르도 샤이를 바라보는 눈은 매서웠지만 단단한 입매엔 여유가 묻어났다. 그는 악장 뒤편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268년 역사를 자랑하는 세계 최고(最古) 교향악단에 동양인 최초의 수석으로 발탁된 그는 아직 서른도 채 되지 않은 조윤진(28)이다. 

아시아 투어의 일환으로 일본을 거쳐 한국으로 들어온 그를 만나기 위해 지난 6일 그가 막 짐을 푼 서울 삼성동 한 호텔로 찾아갔다. 한국 공연 후엔 대만과 홍콩 공연을 앞두고 있는 그는 7일과 8일 공연 후 9일 다시 한국을 떠났다.

▶홀로 떠난 유학, 돌아올 생각은 한번도=조윤진은 피아노 선생님이었던 엄마 덕분에 네살 때 피아노를 치면서 음악을 접했다. 그러나 그에게 운명의 악기는 여섯살 때 잡은 바이올린이었다. 예고 1학년 재학 중 독일로 유학을 떠났다. “원래 미국 유학을 계획 중이었어요. 오디션도 봤고요. 그런데 중학교 3학년 때 독일로 캠프를 갔다가 독일이란 나라의 예술적 분위기에 푹 빠져 바로 독일로 방향을 틀었죠.”

무작정 떠난 유학길은 혼자였다. 음악학교가 아닌 사립 국제 고등학교로 진학해 어려운 점도 많았다. “모든 수업이 영어로 진행되는 데다 일반 고등학교 과목들을 다 공부해야 했죠. 원룸에서 혼자 살다보니 평일엔 학과 공부에 빨래와 청소까지 해야 했고 레슨과 연습은 주로 주말에 했어요.”

할머니, 할아버지에 부모님까지 함께 북적대며 살다 혼자 낯선 곳에서 새 삶을 시작하는데 따른 외로움과 고충이야 오죽했을까. “레슨이 잘 안 될 때면 힘들어서 울기도 많이 했죠. 울먹이면서 한국 집에 전화하면 엄마는 마음이 아파 ‘그냥 한국으로 오라’고 했어요. 예고에 편입하면 된다고요. 그런데 왠지 한번도 한국에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은 안 했어요.”

뚝심으로 묵묵히 하루하루를 견뎠던 그에게 힘든 것은 2년이면 충분했다. 학업과 레슨을 병행하며 솔로와 실내악, 오케스트라까지 다양한 관심을 유지하면서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참여했다. 대학원 공부를 마칠 때쯤, 독일 오케스트라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됐다. “한국에서는 연주를 한다고 하면 무조건 솔리스트가 목표죠. 하지만 유럽은 달라요. 유명 오케스트라 단원이 우선이죠. 모든 연주자가 독주자가 될 수는 없잖아요. 저도 세계적으로 역사가 깊고 오로지 전통음악을 추구하는 독일 오케스트라의 정단원이 돼야겠다 생각하고 오디션을 봤죠.”

졸업 후 지난 2008년 LGO의 정단원으로 입단한 그는 이듬해 단원 투표를 통해 종신단원이 됐다. 종신단원은 단순히 연주 실력만 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호흡이 맞는지 성격과 사회성까지 고려 대상이다. “수년간 독일에서 생활했지만 정신세계와 외양이 전혀 다른 제게 편견이 아주 없진 않았겠죠. 다수의 단원들이 제 부모님뻘 되시는 분들이 많아서 작은 실수도 용납하지 않으시는 분들이 있기도 했어요. 더군다나 저보다 20, 30년 오케스트라 경험이 더 많은 연주자들을 수석으로서 이끌어 나가야 한다는 부담도 있었죠. 압박은 아니지만 책임감이 무엇인지도 배워갈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수석에서 악장으로, 멈추지 않는다=세계적인 오케스트라인 LGO의 수석이자 종신단원이 됐지만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지난해 말 독일 필하모니카 함부르크 악장 오디션을 본 것. 그는 올여름부터는 필하모니카 함부르크 악장으로 무대에 선다. 함부르크의 악장 역시 1년 후 오디션을 보고 종신단원이 될지 다시 평가받는다.

“예전부터 악장의 역할에 매력을 느꼈어요. 처음 오케스트라 지원할 때도 경험도 없으면서 부악장이나 악장으로 지원을 했을 정도니까요. 쫓아가는 것보다는 제가 이끌어가는 게 더 편하거든요.”

수석과 악장의 차이도 크다. 수석이 오케스트라의 한 그룹 내에서 리더라면 지휘자 다음의 위치에서 오케스트라 전체를 이끌어가는 것이 악장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단원들과의 호흡하고 소통하는 능력, 리더십이 필요하다. 


전날까지 LGO에서 연주를 하고 함부르크에서 오디션을 보고 왔는데 악장으로 발탁된 후엔 제가 말하기도 전에 벌써 오케스트라에 다 소문이 났어요. 동료 단원들은 많이 섭섭해했어요. LGO에서도 1년간은 제가 있던 수석 자리를 비워놓고 기다리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는 LGO에 입단한 후에도 현악4중주를 창단해 연주 활동을 하고 시간이 되면 솔로 협연이나 리사이틀 무대에도 서 왔다. 그는 오케스트라 내에서도 수석, 악장을 떠나 “깊은 감동을 주는 것과 더불어 함께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 만드는 연주를 하고 싶다”고 한다. 앞으로 “제자도 양성하고 쌓아온 음악적 경험을 나누고 싶다”는 그에게 최근 국내에서 화제가 됐던 서울대 음대 교수 논란에 대해 물었다. 국내와 해외에서 동시에 교육을 받은 그가 다른 교육환경의 차이를 느꼈는지 궁금했다.

“독일에서 공부하면서 한국과 다르다고 느낀 것은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비교적 수평적이라는 거예요.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만 교수와 학생이 친구처럼 편하게 지내는 경우가 많죠. 한국에서 스승을 존경심으로 깍듯이 대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런 것들이 강압과 강요로 불편하게 적용됐다니 마음 아픈 일입니다.”

LGO를 이끄는 지휘자 리카르도 샤이에 대해서는 “굉장히 열정적이고 그 뜨거움이 불같다”고 평한다. “연습할 때는 눈물이 쏙 빠질 정도로 무섭게 다그치지만 일단 무대에 오르면 연주에서 모든 것을 끄집어내어 보여주는 지휘자”라는 것이다.

“좋아하는 지휘자는 곡마다 조금씩 달라요. 카를로스 클라이버, 헤버트 폰 카라얀, 레오나드 번스타인, 니콜라스 하농쿠어, 마리스 얀손스 등을 좋아해요. 물론 리카르도 샤이도 존경하는 음악가입니다.”

윤정현 기자/ hit@heraldcorp.com
<사진=김명섭 기자/ msiron@heraldcorp.com>




“한국관객 반응 폭발적…슬라빅댄스 두 곡 앙코르로 모두 연주했죠”

조윤진이 본 LGO 내한공연


지난 7일과 8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LGO의 내한공연은 조윤진에게 14년 만에 서는 한국 무대였다. 유학을 떠나기 전인 1997년 중학생이던 그는 예술의전당에서 뉴서울필하모니오케스트라와 협연한 것이 국내에서는 마지막 연주였다.

9일 출국 직전 그가 이틀간의 연주에 대한 후기를 전해왔다. 8일 브루크너 교향곡 8번 연주 중에 울린 난감한 휴대전화 벨소리는 오점으로 남았지만 그에게 오랜만에 선 한국 무대는 진한 감동으로만 남았다.

“드보르자크 프로그램이었던 7일 연주는 카니발 서곡으로 시작했죠. 이어서 드보르자크 바이올린 협주곡과 교향곡 7번, 그리고 앙코르는 슬라빅 댄스 2번, 7번이었어요. 곡마다 객석의 반응이 폭발적이어서 연주를 하는 저희들도 신이 났죠. 드레스 리허설 때 샤이가 “오늘 앙코르는 할지 안 할지 보자”라고 했는데 뜨겁게 환호하는 객석 반응에 앙코르도 준비한 2곡 다 하게 돼 좋았습니다.” 


그는 또 악장 사이나 오케스트라가 악장이 끝날 때마다 놓지 않고 있는 긴장감을 관객석 전체에서도 같이하고 있다는 느낌이 전해져서 무대 위에서 내심 놀랐다고 했다. 8일 공연 중 울린 객석의 벨소리는 연주의 흐름을 잠시 방해했지만 그는 연주에 보다 집중했다.  

“한 시간 반의 곡이라 집중력이 떨어질까 걱정됐던 것이 사실이에요. 하지만 긴장감을 놓지 않고 연주를 마칠 수 있었죠. 끝나고 받은 기립박수와 환호성은 홀 안의 모든 사람이 함께 호흡했다는 걸 느꼈습니다. 박수를 쳐주시는 객석 분들의 얼굴은 정말 따뜻하게 다가와서 저도 모르게 가슴이 찡하기도 했고요. 이번 한국에서의 연주는 평생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을 것입니다.”

윤정현 기자/ hit@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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