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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칼럼>정책의 ‘네이밍’ 전략이 필요하다
김형곤 정책팀장

전략(戰略.Strategy)은 이기기위한 것이다. 적을 속이는 술책이다.
군사 용어지만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 사용되는 용어다. 요즘엔 경제에서 그 중요성이 더욱 높아졌다.

특히 정책에 있어 ‘네이밍’은 전략의 출발이다.

최근 발목이 잡히거나 답보상태인 정책들은 작명부터 전략 부재를 드러낸다.

종교때문에 좌초된 이슬람채권은 하나의 채권일뿐이다. 하지만 ‘이슬람’이란 용어앞에서 개신교는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경제논리로만 봐 달라는 정부의 호소는 먹혀들지 않았다. 단순한 금융기법상의 문제가 종교문제로 변질된 단초는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의 ‘국내 법인이 이자 수수를 금지하는 종교상 제약을 지키면서’라는 문구에서 찾을 수 있다. 반대론자들은 이것이 특정종교를 우대하는 것이며 이는 헌법의 정교분리원칙에 반한다는 주장을 폈다.

고소득 개인사업자에 대한 ‘세무검증제’는 ‘성실신고확인제’로 명패를 바꾸고 국회 상임위를 통과했다. 세무검증 대상이 더 넓어졌음에도 바뀐 명칭이 주는 느낌은 부드러워졌다.

‘성인지(性認知) 예산’은 다른 말을 찾지 못해 그냥 쓰이는 경우다. 여성과 남성이 수행하는 역할과 욕구가 다르기 때문에 예산 집행 시 이를 미리 분석해 반영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이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선진국의 ‘Gender Sensitive Budget’에서 남녀 간의 사회적 관계를 뜻하는 ‘Gender’를 ‘Sex’와 같은 ‘성(性)’으로 직역한데 따른 부작용인 셈이다.

정부의 공식 용어는 아니지만 ‘죄악세’도 마찬가지다. 술 담배에 붙는 죄악세는 그 용어가 주는 부정적 어감때문에 번번이 공론화에 실패했다. 죄악세의 원어인 ‘sin tax’의 ‘sin’은 일반적 범죄인 ‘crime’과는 다르다. 구별할 단어를 찾지 못한 것이 정책 추진의 발목을 잡은 셈이다.

최근 극심한 논란에 빠진 ‘초과이익공유제’도 명백한 전략의 실패라고 할 수 있다.

구체적인 시행방안조차 없이 불쑥 던져진 이 용어에 사방팔방 비판이 쏟아졌고 급기야 이건희 삼성 회장은 “사회주의 용어인지, 공산주의 용어인지 들어본 적이 없다”며 직격탄을 날렸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취지는 살려야 한다는 생각”이라며 공감을 표시했지만 “초과이익공유의 정의와 분배 문제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충분한 의견 수렴을 거쳐야 한다”며 구체 전략을 주문했다.

일반의약품(OTC)을 가정상비약으로 바꿔 부르자고 한 지난달 윤 장관의 언급도 같은 맥락이다.

이런 전략에선 정치인을 따를 자가 없다. 민주당의 대표 정책통인 강봉균 의원은 최근 ‘무상 급식ㆍ보육ㆍ의료’의 정책 명칭에서 ‘무상’을 빼고 ‘의무급식’, ‘사회보육’, ‘의료 보장성 확대’로 바꿀 것을 제안했다. 용어만 바뀌었지 내용은 비슷하다. 그래도 듣는쪽의 어감은 다르다.

물론 이런 전략은 꼼수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전쟁에서 전략은 승리가 궁극적인 목표이듯 시행되지 못하는 정책은 무용지물이다.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기획재정부의 영문 이름(MOSF. Ministry of Strategy and Finance)에 전략(Strategy)이 들어 있다. 이름값을 해야할때다. 경제정책에서도 촘촘한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kimh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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