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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융은 리스크관리다>시스템에만 집착 실패 되풀이…‘뫼비우스 고리’에 빠지다
리스크컨설팅코리아·본지 공동기획-신용평가 의사결정 과정의 위기

‘롱텀 캐피탈…’ 파산서 교훈 못얻고

실패·책임 회피 통계모형에만 집착

‘살아있는’ 현장 데이터·정보공유 부족

돌발 외부변수 발생땐 대처능력 한계

“신용위험판단 사람이…” 새모델 절실


리스크가 없는 곳엔 이익도 없다. 리스크 없는 고객은 돈 안 되는 고객이기 일쑤다. 국내 금융회사의 신용위험관리 제도나 의사결정시스템은 외환위기 이후 획기적으로 발전했다. 신용등급평가모형, 부도예측모형 등 평가 수단이 개발되고, 신용위험을 발견하고 변화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는 조직 및 정보 시스템도 구축됐다.

그런데도 왜 거액의 손실 발생 사례는 반복되는 걸까.

관련 인력의 실력이 모자라서가 아니다. 운영의 문제다. 고위급 운영자들이 아직도 ‘판단의 굴레’에서 벗어나려고 한다는 얘기다. 획기적인 의사결정능력 개선보다는 객관적으로 판단 가능한 ‘전가의 보도’만을 찾는다. 리스크 관리는 재무항목뿐 아니라 비재무항목 그리고 최근 경영환경 변화 등 기업을 둘러싼 다양한 환경을 분석하는 종합예술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할 때다.

▶리스크 집중화가 금융기관 실패 가져와=금융회사 경영의 모든 것은 포트폴리오다. 그 많은 실패 사례들은 신용리스크 집중화 때문에 발생했다. 리스크를 반영한 포트폴리오 중심의 경영을 하지 않고 수익과 규모에 초점을 맞추다보니 예상치 못한 외부환경이 나타날 때마다 위기에 봉착하는 사례가 반복됐다. 결국 ‘리스크 분산 실패’가 금융회사 경영 실패인 셈이다. 오늘날 금융회사에서 개별거래 집중화는 어느 정도 방지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산업이나 상품별 포트폴리오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저축은행들이 한때 돈 되는 부동산 PF에 너무 많이 치중한 결과가 오늘날 위기로 나타난 것이다.

포트폴리오의 질적 변화가 반영되지 않은 수익성과 규모 중심의 성과평가는 신용리스크 관리를 위기에 빠뜨리고 있는 주범이다.

=제대로 된 리스크 관리는 현실을 반영한 의사결정을 전제로 한다. 기업평가는 기업을 둘러싸고 있는 경영환경에 대한 분석이다. 많은 부분이 주관적 판단일 수밖에 없다. 그건 해당 기업에 대한 정보수집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래야 신뢰할 수 있다. 국내 은행들이 재무지표에만 유난히 의존하는 건 정보 수집도 안 되고 활용도 못하기 때문이다. 신용위험 변화를 지속적으로 추적하는 데 필요한 정보가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다는 얘기다. 한마디로 살아있는 데이터가 부족하다. 신용위험의 식별과 평가는 1회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반복되어야 한다. 금융기관의 리스크는 미래와 관련된 것이다. 돌발적으로 발생하는 리스크도 많다.

정보의 공유도 적기에 이뤄지지 않는다. 이상 징후가 보이면 급격히 확산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국내 금융기관들은 체계적인 정보수집이나 활용에 대한 시스템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영권 변동 등 중대한 경영환경 변화가 있어도 거래조건 변경이나 리스크가 현실화되기 전에는 조기경보가 울리지 않는다.

리스크컨설팅코리아 관계자는 “기업 현장의 정보는 영업인력이 가장 빠르고 정확하다. 그런데 인센티브 및 패널티 시스템이 취약하다보니 이들이 적극적인 정보수집 활동을 하지 않는다”며 “현재 금융회사들이 운영 중인 부실징후업체 또는 조기경보업체들은 이미 부실이 상당히 진전된 상태에 해당돼 실질적인 사전예고 기능이 취약하다”고 말했다.

리스크 관리의 지름길은 중요한 부실의 원인이 노출되기 전에 이를 줄여 최소화하는 것이다.

현장에서 수집한 정보가 신용위험관리에 가장 중요한 자산이며, 현장평가가 조기경보(Early Warning)경영의 출발점이다. 리스크에 대한 조기경보는 현장에서 가장 먼저 발견하는 것이며, 시장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변화를 읽을 수 있는 정보도 현장에서 취합된다. 영업부문의 역량이 신용평가자보다 신용위험관리에 더 중요한 이유다.

▶사람이 아닌 컴퓨터와 모델지상주의=러시아 금융위기 당시 LTCM(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은 통계모델과 컴퓨터에만 의존하다 리스크 관리에 실패했다. 그런데도 국내 은행들은 아직도 모델중심 신용평가 의존도가 너무 높다. 모델에 따랐다고 하면 책임 추궁이 없다. 의사결정에 대한 문책에서 자유로워진다는 얘기다. 외국에선 이제 통계모형은 하나의 평가지표에 불과하다. 의사결정을 하기 위한 참고자료이지 중요한 수단이 아니다. 신용위험 판단은 기계나 시스템이 아니라 사람이 해야 정확하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주관적 판단에 의한 실패와 책임에 대한 부담 때문에 시스템에 의존해 기계적으로 항목을 체크하려는 경향이 아직 강하다”고 말했다.

리스크 관리 인력들은 주어진 재무지표들이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점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실제 상황과 달리 표시된 지표를 찾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건 통계모형이 제시해 줄 수 없는 분야다. 하지만 국내 금융기관은 아직도 과거자료에 의존해 신용위험을 평가하는 관행이 계속되고 있다. 특히 미래 경영환경 변화를 평가해야 하는 PF나 IB에서도 마찬가지다. 보유자산의 부실화를 조기에 발견하지 못하고 상당히 진전된 후에야 사후 처리로 급급해지는 이유다.

공인회계사 감사도 받지 않는 비외감기업은 말할 것도 없고 외부감사를 받는 자산 100억원 이상 기업도 60%가 재무제표에 의존해서 신용등급을 결정한다. 잘못되거나 유용성에 한계가 있는 과거 회계정보로 의사결정을 하는 것은 신용위험 평가 자체를 포기하는 것과 다름없다.

부실징후기업에 대해서는 거래기업이 주주들에게 하는 투자설명회와 같이 거래기업의 상황을 채권단에 숨김 없이 보여주도록 요구해야 한다. 회계감사인 지정을 요구하거나 기업설명회(Credit IR)도 요구하여 주도적으로 기업의 리스크를 줄이는 데 동참하는 사전적인 윈윈 전략이 필요하다. 재무지표에서 알기 힘든 기업의 특수상황을 파악하는 데도 효과적이며 고객이나 영업부문과의 갈등 격차를 줄이는 데도 바람직하다.

▶바뀌어야 하는 기업위험평가 잣대=재무지표는 단지 일부의 정보만을 제공할 뿐이다. 그것도 과거의 정보다. 과거 데이터를 기초로 작성된 대차대조표와 손익계산서, 현금흐름표로는 미래 신용위험을 평가하기 힘들다. 성공적인 리스크 관리를 위해서는 재무정보를 성형수술해서 사용해야 한다.

세상이 변하고 있다. 외국의 선진 금융기관들뿐만 아니라 S&P 등 신용평가회사에서도 2002년 이후 영업활동을 중심으로 한 Activity와 지속가능경영을 중시하는 새로운 재무정보를 의사결정도구로 사용한다. 이를 통해 일시적 사건으로 인한 지속 가능 경영활동평가의 어려움을 해결하고, 회계기준의 한계 및 경영자의 공격적, 창조적 회계 문제의 영향을 차단하고 있다. 당기순이익, 유동비율 등 많은 전통적 분석지표는 이제 의사결정 과정에서 외면받는다. 부채비율과 ROA, ROE, EPS, PER 등 대부분 지표도 재가공해서 사용된다.

다양한 기업에 대해 정확한 의사결정을 하기 위해서는 현실을 반영한 의사결정 중심의 재무정보와 분석도구를 새롭게 개발해 활용해야 한다.

금융위기 당시 과거와 달리 질적 평가지표를 60~70% 반영한 조선, 해운 및 건설업 구조조정 기업평가기준은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다. 영업활동을 중심으로 한 Activity 분석과 일시적 사건으로 인한 영향을 구분한 지속가능 경영평가도 검증된 최근 평가기법이다.

영업부문이 적자를 내더라도 단기간 내 흑자전환이 되는 기업도 많다. 특히 구조조정 등 일시적인 손실로 큰 규모의 적자가 발생했더라도 기업의 미래위험이 오히려 감소하는 기업도 있다. 자본이 전액 잠식된 기업 중에는 오히려 신용위험이 아주 빠른 속도로 낮아지는 경우도 나타난다.

▶국제회계기준의 두 얼굴=그런 점에서 국제회계기준(IFRS) 재무정보 문제는 심각하다. 펀더멘털이나 채무상환능력은 변한 것이 없는데도 IFRS 기준을 채택하면 기업 재무정보 차이는 엄청나게 커진다. 재무정보의 생명인 비교 가능성에 큰 문제가 생긴다. IFRS 재무정보가 도입되는 2011년부터는 금융기관들도 과거는 물론 다른 기업과의 비교가 어려워진다. 비교 가능한 재무정보를 금융기관 스스로 만들고 활용하는 능력이 금융기관의 경쟁력이 되고 있다.

특히 기업환경이 다양해지는 최근에는 정상적인 상황에서 잘 운영되어온 현행 재무정보를 이용한 분석방법에도 문제가 발생한다. 이는 많은 부분에서 공시된 재무정보 변화가 기업 실상을 제대로 나타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신용등급 결정에서 활용하는 현금흐름 등 많은 재무지표들이 기업의 실제 상황과 정반대인 경우까지 나타난다. 그로 인해 ‘우량기업으로 턴어라운드하는 기업은 버리고 부실화되어가는 기업과 계속 거래하는’ 의사결정 실패 사례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

<오연주 기자 @juhalo13>

oh@heraldcorp.com 

▶현장을 반영하지 못하는 기업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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