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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야생차향 그윽한 어둠속…교교한 달빛 줄기는…大河와 같구나

슬로시티 하동군 내달 5·7일 밤 야생차문화축제

섬진강따라 평사리 들녘·토지무대 최참판댁 조우

흙냄새·풀벌레 소리…청정무구한 마음 되찾아




가끔은, 밝은 태양 아래 걷기보단 은은한 달빛 아래서 걷고 싶다. 흙바닥 길을 따라 폭신한 흙길을 걷고 싶다. 아스팔트 길과는 다른 농촌의 숨은 길, 낮과는 다른 그 길에는 밤에만 들을 수 있는 풀벌레 우는 소리가 정겹고 풋풋한 녹찻잎의 향기가 콧속으로 스멀스멀 기어들어온다. 바로, 슬로시티를 표방하는 하동군이 야심차게 진행하고 있는 ‘차(茶)별난 야(夜)한 길’얘기다.

▶굽이굽이 섬진강길 따라 달빛받으며 걷는 길=굽이굽이 흐르는 섬진강은 전북 진안에서 발원해 남해로 흘러가는 전라도의 젖줄이다. 이 섬진강 길을 따라 조성된 곳이 바로 ‘화개장터’로 유명한 경남 하동군이다. 평사리의 아름다운 들녘, 섬진강을 따라 펼쳐진 모래사장, 동정호수와 부부송 등 하동군 속 숨은 야경을 찾아가는 ‘차별난 야한 길’이 개발돼 하동 야생차문화축제가 열리는 오는 5월 5일과 7일 밤 7시30분에 진행된다.

이날 진행되는 ‘차별난 야한 길’은 토지문학제, 야생차문화축제, 섬진강 생태학교와 연계된 최참판댁 일원의 악양면 코스를 따라 걷는다. 참가자들은 저녁 7시 반, 해가 진 다음 하동군 평사리에 위치한 평사리 공원 주차장에 모여 섬진강을 바라보며 차를 마시는 섬진강 달빛차회를 즐기며 앞으로의 여정을 머릿속에 그려본다. 이후 강 옆으로 나 있는 제방을 따라 걸으며 여행이 시작된다. 악양교를 거쳐 왼쪽으로 틀면 섬진강 지류를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는 악양면 코스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하신대 마을 세월교 앞이 한 번의 이정표. 여기서 위치를 확인하면 다시 강을 따라 덕계마을로 올라간다. 올라가는 길 내내 왼편엔 섬진강 지류인 악양천이 흐르고 그 강 위엔 달빛이 비춘다. 부처의 공덕이 온 세상에 미치는 것을 두고 월인천강(月印天江)이라 했던가. 그에 비길 수야 있겠냐마는 그 단편이라도 잡는 심정이다.

덕계마을에서는 다시 왼편으로 꺾어 강을 건넌다. 하덕을 거쳐 하평마을 뒷길로 가는 길을 따라 걷는 내내 농촌의 흙내음과 풀벌레소리, 그리고 차향이 코를 찌른다. 하동은 삼국시대부터 차를 재배한 야생차의 본고장이다. 길을 따라 걸으면서 콧속에 진동하는 차 향기를 맡으면 하동의 차가 왜 유명한지 알 수 있다. 

=하평마을 뒷길을 지나면 이제부터 역사와 전통에 취하는 시간이다. 바로 대하소설 ‘토지’의 무대가 됐던 ‘최참판댁’이 나온다. 한옥 14개동으로 구성된 최참판댁은 비록 드라마 촬영을 위한 세트장으로 만들어졌지만 보리밭과 섬진강 물줄기 등 주변 풍경과 잘 어우러져 한편의 예술같은 모습을 보인다. 최참판 댁 안에는 투호와 제기차기 등 민족의 전통 놀이를 즐길 수 있는 시설이 있고, 사랑채로 나오는 누각에서는 섬진강 물과 주변 환경이 달빛에 비쳐 널리 보인다. 최참판댁 안에는 별당아씨가 기거하던 별당과 드라마, 영화 등을 통해 자주 선보인 연못까지 충실히 만들어져 있다.

최참판댁을 뒤로 하고 나오면 동정호가 눈에 들어온다. 하동군 악양면은 삼국 통일기, 신라의 초대로 연합군을 조성해 온 당나라 장군 소정방이 ‘중국의 악양과 같다’고 해서 악양군으로 불리는 곳이다. 특히, 이곳 동정호의 모습과 그에 위치한 악양루의 모습은 소정방에게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불러일으켰다고 한다.

예전에는 중국의 악양팔경을 연상케 하는 이곳에 오르면 굽이쳐 흐르는 섬진강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2층 건물이 강을 가리고 있어 아쉽다. 하동군지에는 악양면의 소상팔경이 다음과 같이 소개돼 있다.


▶역사에 취하는 시간

“흔히 소상팔경이라 불리는 이곳은 중국의 악양과 그 경치가 흡사하여 지극히 아름다운 산수를 갖고 있다. 악양루의 그늘이 동정호에 비치고 그 가을의 동정호는 달빛이 더욱 맑다. 해질 무렵의 한산사 종소리와 소상의 밤비, 멀리 포구를 돌아오는 돛배의 모습과 떨어지는 낙조의 그 아름다움과 평사리의 백사 위에 내려앉는 기러기, 강 위에 내리는 눈이 좋고 이를 일러 악양팔경이라고도 한다. 이상향의 전설이 어린 매계계곡과 남명 조식 선생이 돌아서 떠났다는 회남재, 그리고 신라의 고소산성이 지금도 우뚝 섰다.”

동정호를 지나 평사리 악양벌 드넓은 벌판에는 잘 정비된 논 밭 한가운데에 커다란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바로 하동의 명물 ‘부부송’이다. 멀리서 보면 한 그루 같아 보이지만 실제로 보면 두 그루. 논밭을 인간의 편의에 맞춰 바둑판 모양으로 정비하는 가운데서도 이 부부송만큼은 건드리지 못하고 그냥 남겼다. 금슬 좋은 부부의 모습을 한 부부송 앞에서 가족간의 사랑과 화합을 다짐하고 돌아오면 다른 곳에선 느끼지 못할 ‘차별난 야한여행’이 끝난다.

하동군 관계자는 “이번 야생차축제의 일환으로 기획된 ‘차별난 야한 길 문화체험’을 야생차 축제가 끝난 이후에도 지역별ㆍ계절별 특색을 살린 야간 테마 프로그램으로 기획해 운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재현 기자/madpen@heraldcorp.com





▣ 이곳만은 꼭…

신선도 쉬어간 쌍계사의 멋…사계절 색다른 자연의 미소

경남 하동에서 가장 유명한 명물로 쌍계사가 있다. 신라 성덕왕 21년(서기 722년), 선종 육조 중 하나인 혜능스님의 정상(頂相ㆍ머리)을 모시고 당나라에서 돌아온 대비, 삼법 두 화상이 꿈에서 ‘눈 쌓인 계곡 가운데 칡꽃이 피어있는 곳(雪裏葛花處)에 정상을 봉안하라’는 계시를 받고 찾아다니던 중, 지리산 자락에서 호랑이의 안내를 받아 이곳을 찾았다고 한다.

쌍계사를 가장 유명하게 하는 것은 봄이면 피어나는 십리 벚꽃길. 서울 여의도 윤중로 벚꽃은 비교도 안 되는 수많은 꽃이 눈처럼 휘날리며 향기를 뿜어대는 장면은 장관이다. 그러나 쌍계사에는 봄에만 볼거리가 있는 것이 아니다. 여름이면 하얗게 물보라를 일으키는 불일폭포가 더위를 식혀준다. 가을이면 지리산을 물들인 오색단풍이 유혹하고, 겨울이면 칠불암 아자방에서 정진에 몰두하는 수도승의 용맹정진을 느끼게 하는 곳이 바로 쌍계사다.


쌍계사는 사시사철 자랑하는 멋과 맛 때문에 사찰이 지닌 진정한 보물을 언제부터인가 잃어버리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아니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잊고 있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쌍계사의 진정한 멋과 맛은 창건역사에서 찾을 수 있으며, 그 흔적도 경내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쌍계 석문을 지나면 차 종자를 가져와 처음으로 심은 것을 기념해 세운 차 시배지를 만나게 된다. 대 이슬을 먹고 자라 생로병사를 초월한 신선들이 즐겼다던 죽로작설차(竹露雀舌茶)의 향을 쫓아 쌍계사를 찾는 일은 품격 높은 여정이다.

쌍계사 안에는 최치원이 진감선사를 기리며 글을 지었다는 진감선사대공탑비(국보 47호)가 있다. 여기에는 ‘그가 범패를 매우 잘하여 금옥 같은 소리가 구슬프게 퍼져 나가면 상쾌하기도 하고 애절하기도 하여 능히 제천(諸天)을 기쁘게 할 만하였다’라는 대목이 기록돼 한국 불교의 옛 멋을 느끼게 한다.

김재현 기자/ madpe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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