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이 영화>목마르게 듣고 싶은 그 이름, 엄마!
세상의 모든 여자는 딸이거나 엄마다. 그중에 세 여자가 있다. 딸을 낳자마자 떠나보낸 여자. 태어나자마자 엄마로부터 버림받은 여자. 아이를 낳을 수 없지만 자식을 너무 갖고 싶은 여자. 영화 ‘마더 앤 차일드’는 딸이거나 엄마인 세 여성의 상처와 고통, 용서, 화해의 삶을 다룬 작품이다. 그들은 서로 다른 공간에서 각자의 삶을 살아가며, 끝내는 죽을 때까지 서로 보지 못하기도 하지만, 핏줄 혹은 ‘입양’이라는 끈으로 연결된다.

병원의 물리치료사인 중년 여성 카렌(아네트 베닝)은 14살 미혼모로 낳은 딸을 출산 후 바로 입양시켜 평생 죄책감을 안고 살아온 인물이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고 세상 어디에선가 살아 있을지 죽었을지도 모르는 아이를 위해 평생 매일같이 편지를 써온 그녀의 삶은 어린 시절 핏덩이를 버린 불행의 흔적뿐이다. 웃을 줄도 대화할 줄도 모른다. 연애도 제대로 못하고 평생을 독신으로 지내며 노모와 함께 서로의 상처를 할퀴며 살아왔다. 그런 카렌에게 어느 날 새로 온 직장동료인 중년 남성 파코(지미 스미츠)가 사람 좋은 웃음과 함께 다가온다. 카렌은 새로운 삶과 사랑을 시작할 수 있을까.

카렌의 딸 엘리자베스(나오미 왓츠)는 어느새 30대 후반의 여성이 됐다. 부모로부터 버림받고 입양된 아픔에도 불구하고 엘리자베스는 겉으로 보기에 화려한 삶을 산다. 잘나가는 독신의 변호사로 업계에서 최고의 능력을 인정받고 있으며, 개인적으로는 자유분방한 생활을 만끽한다. 새로운 로펌으로 스카우트된 엘리자베스는 아버지뻘인 로펌의 사장과 연인이 되는 한편, 이웃의 남자도 유혹해 관계를 갖는다. 그러던 중 엘리자베스는 덜컥 임신을 하게 된다.

솔직하고 쾌활한 성격의 여성 루시(케리 워싱턴)는 남편과의 금실이 유난히 좋지만 슬하에 자식이 없는 것이 유일한 걱정거리다. 엄마가 되고 싶은 루시는 남편과 함께 입양을 신청한다. 그는 뱃속 아이를 입양하기 원하는 미혼모를 만나는 데 성공하지만 절차와 조건이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엄마 되기가 산 넘어 산, 고비고비마다 루시는 또 다른 상처를 안아야 한다. 


버리고 버림받은 경험은 서로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두 모녀, 카렌과 엘리자베스의 삶을 지배하고 잠식해왔다. 대인관계가 수월치 않은 카렌이나, 한 사람에게 정착하지 못하고 찰나의 쾌락에만 몸을 맡길 뿐인 엘리자베스 모두에게 사랑이란 불가능한 일일 뿐이다. 그러나 카렌은 새로운 남자를 만나면서, 엘리자베스는 새 생명을 잉태하면서 조금씩 변화돼간다. 이들은 서로 애태웠던 엄마와 딸을 만날 수 있을까. 루시는 그렇게 간절히 원했던 자식을 얻을 수 있을까.

서로 독립적으로 전개되던 3명의 주인공, 3명의 이야기는 영화 후반에 하나의 교차로에서 만나게 된다. 무엇보다도 등장인물들의 섬세한 감정의 결이 느껴지는 잔잔하지만 힘 있는 이야기 전개가 관객의 가슴속에 조용하지만 큰 파문을 일으킨다. 쓸쓸하고 애잔하고 안타깝고 마지막에는 애틋한 정이 가슴을 따뜻하게 한다.

세월의 흔적을 곱게 접힌 주름 속에 간직한 아네트 베닝의 정감 어린 연기와 나오미 와츠의 선명하고 담백한 호연, 케리 워싱턴의 활기찬 분위기에 힘입어 영화 속 이야기의 가지들이 뚜렷하면서도 서로 잘 어울렸다. ‘친정엄마’ ‘애자’ 같은 모녀를 주인공으로 한 한국 영화와는 같으면서도 다른 가족애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그녀를 보기만 해도 알 수 있는 것’의 로드리고 가르시아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그는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남미 문학의 거장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아들이다. 청소년관람불가. 28일 개봉.

이형석 기자/suk@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