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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로열패밀리’...인간과 욕망을 말하다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속에서 스스로도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우리가 괴물의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 본다면, 그 심연 또한 우리를 들여다 보게될 것이다.” ’-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선악의 저편 Beyond Good and Evil』중 -

K라는 익명의 인간이 존재했다. 비천한 신분을 가진 익명의 인간이 사는 곳은 날 때부터 고귀한 신분증을 부여받은 이들의 중심무대, 비루한 인생들과는 다른 삶을 살아온 순수 로열패밀리가 주인공인 무대다. 이들에게 ‘존엄’이란 대다수 인간들을 위한 것이 아닌 오로지 로열패밀리를 위한 것이며, 이들에게 배려와 희생이란 자본주의 논리 아래 녹아버린 살얼음 같은 것이었다.

MBC 드라마 ‘로열패밀리(극본 권음미, 연출 김도훈)’는 재벌가의 외피를 입고 인간에 대해 이야기했다. 익명의 인간이 이름을 찾기 시작하자 ‘정가원’으로 대표되는 드라마의 주무대에는 잔혹한 권력 쟁탈이 시작된다. 여기에는 이름을 찾은 김인숙, 과거의 K가 권력을 지키려는 괴물들이 가진 것을 하나씩 앗아가는 인간으로 존재했다. 또 다른 괴물의 모습이기도 하다.

18회 방송을 마지막으로 긴 여정을 끝낸 ‘로열패밀리’, 28일에는 드라마의 취지대로 각자가 인간임을 증명해가는 모습, 인간임을 포기했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모습이 전파를 탔다.

애초에 ‘버려진 아이’였던 김인숙은 양공주촌에서 성장해 ’마리’로 살았다. 그곳에서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한 번의 살인을 감행한다. 이후 신분세탁을 통해 JK가에 입성하게 되는 김인숙이다. 이것은 평민과 귀족의 결혼이라는 과정을 통해 가능했다. 정가원에서의 삶은 녹록치 않았다. 그 안에서 그녀는 이내 이름을 잃고 투명인간으로 18년을 산다. 반격은 마음으로 병을 치료했던 의사 남편의 죽음 이후부터다. K는 JK그룹으로 대표되는 거대 권력을 집어삼키는 괴물이 되어갔다. 그녀가 괴물인 것은 양공주촌에서의 성장과정에서 야기됐다. 아들을 버렸고 아들을 외면했던 김인숙의 복잡다단한 과거는 그녀를 ‘괴물’로 불리게 했다. JK가 사람들이 인성을 잃은 인간인 것과 마찬가지였다.


이제 드라마는 이름을 되찾은 사람이 복수와 욕망이 뒤엉킨 삶에 놓여질 때 어떻게 변모하는가를 보여줬다. 모멸과 수치로 버티던 삶이 욕망을 채워나가면 선악의 경계는 모호해졌다. 때 아닌 환경론과 본성론을 대두할 상황, 여기에서도 ‘인간임을 스스로 증명’해야하는 노력은 잊지 않았다. 드라마는 일본 소설 ‘인간의 증명’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28일 마지막 방송분에서는 김인숙이 인간임을 증명하는 모습이 보여졌다. 아들 조니 사건의 진실이 밝혀지고, 인숙은 JK가의 수장이 된다. 마지막에 대한 발상은 ’여운’이었다. 드라마가 내내 인간을 이야기하는 동안에는 미스터리에 간간히 멜로가 혼재됐으나, ‘생텍쥐페리’의 실종을 인용한 결말에서는 인숙과 지훈이 서로의 구원자였음을 재확인했다. 이 과정은 괴물에서 인간으로 돌아가는 고해성사를 마친 염정아의 오열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자기방어가 아닌 자신의 욕망을 지키기 위해 아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상황에 대한 고해성사였다.

인간과 인간이 품은 욕망과 그 안에서 선악을 증명해야 하는 드라마였다. 이미 괴물인 사람들과 싸우며 자신마저 괴물이 되어가는 한 인간은 스스로 인간의 존재를 증명해냈다.

드라마에서 김인숙을 연기한 염정아는 꽤 치밀하고 탄력있었다. 드라마의 빠른 전개와 잘 짜인 구성, 인물 한 사람 한 사람의 표정은 내밀한 감정에 집중하는 카메라의 각도는 더없이 감각적이었다. 드라마 초반의 기대감은 컸다. 그럼에도 긴장감이 떨어지기 시작한 것은 회차를 더해가며 사건의 실마리가 풀어지기 시작하면서다. 복수를 통해 욕망을 실현해야 하는 김인숙이 과거에 발목을 내어주자 통쾌함은 사라졌지만, 여기에서 드라마의 대전제가 속속 새어나오기도 했다. 18회를 달려가는 동안 전국 평균 시청률 12.3%를 기록한 ‘로열패밀리’는 마지막회에서는 12.2%의 전국 시청률을 기록, 동시간대 방영된 ‘49일(SBS)’에 1위 자리를 양보했다. ‘49일’은 12.9%의 전국 시청률을 기록했다.

<고승희 기자 @seungheez>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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