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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낭만이 고여든 호반의 도시, 춘천
그이는 지금쯤 뭘 하고 있을까. 헤드폰을 쓰고 우수에 젖은 듯 차창 밖을 바라보던. 달리는 열차 속에서 친구들은 자기들만의 놀이에 신이 났고, 나의 시선만이 그이에게 꽂혀 있다. 설렘 속에 도착한 춘천에서는 사춘기 필름의 영원한 한 컷이 될 ‘바로 그 장면’이 기다리고 있었다.

최근 80년대 여고생들의 이야기를 그려내 흥행 돌풍을 일으킨 영화 ‘써니’에 그려진 춘천은 MT와 젊은 날의 낭만으로 대변되는 그때 그 시절 모습을 상기시킨다. 김현철의 노래 ‘춘천 가는 기차’의 꿈꾸는 듯한 선율은 그곳의 아련한 이미지를 청각적 풍경화로 그려낸다.

‘춘천에 간다.’ 이 두 마디면 족하다. 초록색 자연과 푸른 호반을, 기차칸의 추억을 소환하는 데는. 기억의 도시 춘천은 물리적으로는 서울과 점점 가까이, 시간과 감성의 척도로 재면 조금은 멀고 촉촉한 곳에, 위치해 있다.

남산면 북한강 가운데 위치한 남이섬은 14만여 평에 이르는 큰 강섬이다. 남이 장군의 묘소가 있어 남이섬이다. 뭍 선착장에서 왕복선을 타고 5분쯤 호반 바람을 맞아야 섬 어귀에 닿는다. 섬 심장부로 열린 잣나무 길은 하늘을 향해 시원스레 뻗은 나무 기둥들의 도열만으로도 볼거리다. 드라마 ‘겨울연가’ 촬영지로 이름난 이곳의 명물이다. 백자작나무 길, 메타세쿼아이 길 등 비슷한 형태의 길이 섬 곳곳에 있어 카메라 셔터를 가만 놔두지 않는다. 자전거를 타고 달려도, 연인이나 가족의 손을 잡고 걸어도 좋다. 여기 사는 청설모는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먹이를 달라는 듯 오히려 사람 앞에 다가서 반갑게 손을 벌린다. 숲 사이에 들어선, 페어웨이를 연상시키는 넓은 잔디밭에는 향긋한 숲향기가 부유해 다닌다.

호반가에 늘어선 목재 펜션 무리 옆으로 난 ‘연인의 길’의 운치는 별다르다. 통나무로 엮은 난간은 은비늘 빛내는 호수를 향해 푸른 손마디 뻗은 나뭇가지와 어우러지고, 발아래로 딛는 나무 널판의 느낌이 가볍다. 어디선가 허클베리핀이 튀어나온대도 놀라지 않을 것 같다. 숲길 한편에 자리한 울타리 안에는 익살스러운 자태를 뽐내는 타조 몇 마리가 한가롭다.

MT촌으로 유명한 강촌역 인근으로 이동해 구곡폭포를 들르기로 한다. 주차장 입구에서 15분쯤 계곡을 따라 난 오솔길을 걸어오르면 구곡정을 지나 갑작스레 폭포를 마주한다. 높이 50m. 아홉 굽이를 돌아 떨어진대서 구곡폭포다. 하늘벽바위 등의 기암이 이곳을 비밀스레 지킨다. 폭포의 냉기와 숲 그늘 덕에 땀이 마르자 상쾌함이 밀려온다. 인근의 자연부락 문배마을에서는 토속 음식을 즐길 수 있다.

풍광 좋은 곳이라지만 타지 여행에 사람 냄새 맡기가 빠지면 허전하다. 시내로 이동해 5일장(2, 7일장)이 서는 온의동 풍물시장에 접어든다. 갖가지 채소가 대개 묶음당 1000원. 남달리 알이 굵어 ‘춘천댐 달팽이’라는 호칭이 수긍가는 커다란 다슬기도 스테인리스 대야 여기저기 보인다. 흰 김을 피워올리는 즉석 어묵이나 국수도 먹어볼 만하다.

‘낭만시장’으로도 알려진 춘천중앙시장은 도심인 명동에 있다. 5일장인 풍물시장에 비하면 현대적인 느낌이지만 ‘겨울연가’ 덕에 찾는 일본인 관광객들이 여전히 많다.

춘천 하면 닭갈비를 빼놓을 수 없다. 맛도 맛이지만 양이 푸짐해 이내 배가 불러온다. 그래도 매콤한 미각의 여운에서 깨기 싫으니 칼칼하고 시원한 막국수 한 접시 추가를 마다하기 힘들다.

꼭 동(東)으로 한 시간 거리에 닿는 추억의 그곳은 맛으로, 볼거리로 여전히 살갑다. 춘천도 조금씩 변하고 있다지만 더욱 변한 건 어른이 돼버린 자신이다. 그래서 춘천은, 흐르고 있지만 거기 멈춰 있는 듯 보이는 북한강처럼 느껴진다. 춘천 가는 기차는 사라졌지만 경춘선 복선전철이 뚫렸으니 기차 여행의 운치도 아예 없어진 건 아니다.

<임희윤 기자 @limisglue> imi@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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