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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죽음의 의사’ 케보키언, 안락사 논쟁 남기고 세상을 떠나다
불치병에 걸린 말기 환자 130여명의 자살을 도와 ‘죽음의 의사’로 유명해진 잭 케보키언은 학창 시절부터 죽음의 방법에 대해 큰 관심을 보였던 인물이다.

미시간 주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케보키언은 미시간대 의대 재학 시절 사형수들에게 마취제로 사형당할 수 있는 선택권을 줘서 이들의 시신을 의료 해부용으로 사용하고 장기를 활용하자는 제안을 했었다.

1952년 의대를 졸업한 케보키언은 60년대와 70년대에는 죽음에 대한 관심을 접은 채 병리학자의 생활에 전념했다. 하지만, 그와 함께 일했던 동료나 지인들은 케보키언을 우스꽝스럽다거나 개인적 관심에 지나치게 파묻혀 있다고 평가했다.

의료생활에 싫증이 난 케보키언은 1976년 캘리포니아 롱비치로 거주지를 옮겨 그림, 글쓰기, 영화 등 예술 생활에 몰두했다. 이 기간 그는 생계를 위해 병원 2곳에서 시간제 의사로 일했다.

그러던 중 1984년 미국에서 사형 집행이 늘어나자 사형수들에게 죽음의 방법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줘야 한다고 다시 주장했고 1987년에는 네덜란드로 건너가 안락사에 대해 연구했다. 네덜란드는 현재 법적으로 안락사를 허용하고 있다.

1년 후 미시간으로 돌아온 케보키언은 환자와 환자의 가족들에게 죽음에 대한 상담을 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며 이를 지역 신문을 통해 알리기 시작했다.

죽음의 방법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자는 케보키언의 주장이 안락사 논란으로 확산한 것은 1998년이었다.

케보키언은 그 해 9월 미시간 주에서 루게릭병을 앓고 있던 토머스 유크에게 치사량의 독극물을 주입해 사망하게 했고 이 장면이 담긴 비디오테이프가 미국 CBS 시사프로그램 ‘60분’을 통해 방영된 것이다.

케보키언은 이렇게 독극물, 마취 주사 등을 이용해 1990년부터 1998년까지 130여 명의 환자들을 안락사시켰다.

그는 “환자의 처지에서 무엇이 최선인가가 중요하다”며 “이것은 환자에게 달렸다”고 자신의 행위를 옹호했지만, 1999년 2급 살인 혐의가 인정돼 최소 10년, 최대 25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미시간 주 콜드워터 레이크랜드 교도소에 갇혔던 그는 8년6개월 간의 복역을 끝내고 2007년 가석방으로 풀려났다. 가석방 조건은 더는 안락사를 돕지 않고 악락사와 관련된 자문이나 상담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환자들에게 ‘죽을 권리’를 줘야 한다고 주장했던 케보키언은 심장과 신장 질환에 시달리다 2주 전 미시간주 버몬트 병원에 입원했고 이곳에서 3일(현지시각) 숨을 거뒀다.

죽음의 의사는 생을 마감했지만, 케보키언으로 인해 확산했던 안락사 논쟁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고칠 수 없는 병으로 고통을 받거나 의료 기기에 의존해 간신히 호흡만 할 수 있는 환자와 그런 환자를 위해 또 다른 고통을 감내해야만 하는 가족을 위해 편안하고 품위있게 죽을 수 있는 권리를 줘야한다는 주장과 생명의 존엄성과 안락사 허용 이후 발생할 부작용을 우려하는 주장이 여전히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것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케보키언의 ‘죽을 권리’ 논쟁으로 죽음을 앞둔 환자들의 고통과 불안에 대한 관심이 늘어났고 의사들도 불치병 말기 환자의 고통을 배려하기 시작한 것은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헤럴드 생생뉴스(onlin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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