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군사정권에 맞섰던 김준엽 前총장…“역사에 살라” 참된 가르침 젊은이에 영원한 귀감
누군가에게 본이 되는 스승이 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하물며 한 시대의 스승으로 불리며 존경받기는 더욱 어렵다. ‘시대’라는 수식어는 아무에게나 허용되지 않는다. 9일 별세한 김준엽 전 고려대 총장(사회과학원 이사장)의 이름 석 자 앞에는 늘 ‘시대의 스승’ ‘시대의 지성’이라는 수식어가 놓였다. 올곧은 지식인, 불의에 굴하지 않는 지도자, 진정한 애국자였던 김 전 총장은 우리 시대의 원로이자 참 스승이었다.독립군으로 항일투쟁에 가담했을 뿐 아니라 해방 이후 군사정권 아래에서 교육자와 학자로서 절개를 지킨 김 전 총장은 생전에 ‘살아 있는 지성의 상징’으로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았다.
특히 1982년 제9대 고려대 총장에 취임한 후 군사정권의 압력에 맞서 학교와 학생들을 지켰다. 1985년에는 군사정권의 학생회 간부 제적 요구에 맞서다 결국 총장 직에서 쫓겨났다.
당시 김 전 총장의 사임을 앞두고 고려대 학생들은 3개월여 동안 총장 퇴진 반대 시위를 벌였다. 군사정권의 하수인이라며 학교와 대립각을 세우던 당대 학생사회의 분위기에선 흔치 않은 일이었다. “현실에 살지 말고 역사에 살아라. 긴 역사를 볼 때 진리ㆍ정의ㆍ선은 반드시 승리한다”는 그의 신념은 그렇게 젊은이들의 가슴을 울렸다.
김 전 총장은 1988년 사회과학원을 창립해 이후 중국과의 학술교류에 여생을 바쳤다. 한ㆍ중 수교 이듬해인 1993년 베이징대를 시작으로 2002년까지 산둥, 난징, 옌볜대 등 중국 내 9개 대학의 객원교수 직을 맡았고, 한국공산권연구협의회장과 중국학회장 등을 지낸 그는 ‘중국공산당사’ ‘중국 최근세사’ ‘한국공산주의운동연구사’ ‘나와 중국’ ‘회고록 장정(長征)’ 등의 저서를 남기는 등 중국 연구에서 명실상부 국내 최고 석학으로 자리매김했다. 2009년에는 중국 주요 대학에 한국학연구소를 세우는 등 한국학 진흥에도 이바지했다.
속세의 풍랑에 아랑곳하지 않고 하늘을 향해 뻗은 대나무처럼 김 전 총장의 삶에는 의연함과 기개가 녹아 있었다. 김 전 총장은 이미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생애 한순간 한순간은 후인들이 허투루 흘려보내선 안 될 소중한 가르침으로 남았다.
박수진 기자/sjp10@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