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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애정은 ‘호감 연예인’이 될 수 있을까
툭 하면 얻어터진다. ‘무엇’을 ‘얼마나’ 잘못했는지에 대한 판단은 대중이 한다. 쉴새없이 쏟아지는 말폭탄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댓글에 치이고 루머에 뜯기고 기사에 몰매를 맞는다. 결국 그녀는 눈물을 흘렸다. “내가 뭘 얼마나 잘못했는데” 이러느냐고. “할 말이 없습니다. 자숙하겠습니다”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기자회견에 앞서 혀끝으로 어색하지 않게 뱉어내기 위한 연습이었다.

어느새 개그용어처럼 자리한 ‘비호감’이라는 단어가 연예인이라는 명사의 수식어로 오자 단어에는 차마 짐작 못했던 ‘현실’이라는 무게가 실렸다. 거기에 그가 ‘생계형’ 연예인이라면 그 무게는 자못 형벌과 같다. 비호감 연예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그런 의미였다.

구애정(‘최고의 사랑’)은 가깝고도 먼 연예계, 너무나 비현실적인 이 곳에서 무척이나 현실적인 삶을 살아간다. 

서른, 그녀는 10년전 대한민국의 심장을 뛰게했던 걸그룹의 주인공. 이름도 국보소녀. 지금은 무너진 국보1호 남대문처럼 국보소녀의 시대는 이미 저물어 온갖 설(說)만을 남겼다. ‘불화설’ ‘왕따설’ ‘구타설’. 그 설의 중심이 바로 구애정이라고 알려진 것이 ‘비호감 연예인’으로 낙인찍힌 계기였다. 10년이 흐르자, 함께 활동하던 멤버 중 한 명은 최고의 스타(강세리, 유인나)가 돼 국민적 사랑을 받고 있다. 또 다른 한명은 연예계 입구를 전전하며 비호감 연예인(구애정, 공효진)으로 살아간다. 개구리탈을 쓰고 뒤뚱거리며 걸어야 하고, 섹시댄스도 코믹하게 춰보이며 조금이라도 더 많이 방송에 얼굴을 비춰야 한다. 그래야만 다음 번에도, 또 그 다음번에도 TV에 출연할 수 있다. 변변한 밥벌이를 하지 않는 아버지, 자신의 매니저로 일하는 오빠, 한창 뛰어놀고 자라야하는 어린 조카까지. 맞다. 그녀는 가장이다. 그리고 생계형 연예인이다.

이것은 현실이었다. 동일 시간대 방영되고 있는 ‘시티헌터(SBS)’의 나나(박민영)가 청와대 경호관으로 일하며 아버지의 병원비를 갚기에 허덕이고 먼저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그리면서 경매로 넘어간 ‘낡고 허름한 아버지의 식탁이 있고 어머니의 식탁보가 있는’ 그 집을 지키기 위해 밤마다 대리운전을 뛰는 것과 다르지 않다. ‘동안미녀(KBS2)’의 서른넷, 신용불량자 이소영(장나라)이 나이때문에 직장에서 쫓겨나고 다시 그 나이를 속이며 삶의 터전으로 뛰어들어 뒤늦게 꿈을 찾아 분투하는 것과 다를 바없다.

지난해 초 국세청은 월수입이 100만원도 되지 않는 생계형 연예인이 2만7000여명에 달한다고 했다. 얼굴조차 비칠 수 없는 화려한 조명 뒤의 생계형 연예인의 숫자다. 대중이 미처 관심을 보이지 않는 곳에 있는 이들은 종종 ‘무플’보다 ‘악플’이 낫다고 하지만 생계형 연예인이 ‘비호감 연예인’으로 낙인찍히면 그 삶의 무게는 더 녹록치 않다.

다시 구애정이다. 밉상ㆍ진상에 더티ㆍ싼티까지 더해져서 살아온 ‘비호감 연예인’ 10년사, 이제 겨우 날개를 펴고 연예활동을 해보려한다. 꺾여졌던 날개는 조금씩 아물러 이제 겨우 다시 펴볼 생각을 해볼 수도 있겠다 싶을 때, ‘계급차이’가 분명한 톱스타와 사랑에 빠진다. ‘극복’은 커녕 ‘난관’만이 끝없이 도사린다.

직업에도 신분에도 귀천이 사라진지 오래지만 드라마는 사랑을 말하며 직업과 신분의 격차를 가져왔다. 한의사인 완벽남과 C급 연예인의 신분차이, 톱스타와 비호감, 생계형 연예인의 계급 차이다. 말과 관심이 많은 세계 안에서 벌어지는 사랑이다 보니 어울리지 않는 짝들에게는 비난이 거세진다. 한 번 밉상으로 낙인찍힌다면 출구는 더욱이 없다. 꽁꽁 싸매뒀던 이야기는 금세 ‘털리며’, 말들은 부풀려지고 과거는 왜곡된다. 그래도 드라마는 아직 'ooo닷컴'까지 등장하지는 않았다.

어쨌든 ‘맞아야 하는’ 운명이 바로 비호감 연예인이다. 그런 비호감 연예인들이 호감 연예인으로 새 삶을 사는 경우도 있다. 이것은 드라마가 아니다. 한동안 연예계에 비호감, 호감이라는 단어가 트렌드처럼 번지던 2008년이었다. 당시 커뮤니티 포털사이트 ‘디시인사이드’에서는 ‘활발한 방송 활동 이후 비호감에서 호감으로 바뀐 연예인은?’이라는 설문이 진행됐다.

그 결과 막말과 독설 연예인의 1인자로 꼽혀온 김구라가 아들 동현군과의 활발한 활동을 힘입어 1위, 그 뒤는 '개그콘서트'의 ‘왕비호’라는 노골적인 캐릭터로 톡톡히 인기맛을 본 윤형빈이 이었다. 3위는 대표 비호감 연예인으로 손 꼽혔던 문희준이 군제대 후 이미지가 쇄신됐다.  ‘돌아이’ 노홍철, ‘신상녀’로 주가를 날린 서인영도 당시 비호감에서 호감으로 바뀐 연예인에 이름을 올렸다.

최근으로 오면 톱스타 권상우 케이스를 들 수 있다. 권상우는 지난해 종영한 드라마 ‘대물(SBS)’을 통해 이미지 변신에 성공, 드라마 방영 전 뺑소니 사고로 물의를 빚었음에도 불의를 참지 못하는 열혈검사 하도야를 통해 대표 호감 연예인이 됐다.

구애정은 이제 그 기로에 서있다. 모든 진실을 밝힌다면 그녀는 동정표의 주인공이 된다. 하지만 ‘자신을 위해 친구와 가족까지 팔 수는 없다’면서 “죄송합니다. 할 말이 없습니다. 자숙하겠습니다”라고 말해버린다면, 거기에 ’당신의 남자’가 되고 싶다는 독고진의 아픈 심장을 거절한다면 다시는 재기할 수 없는 비호감덩어리가 되고 만다. 또 다시 온갖 ’설‘들의 주인공이 되고 만다. 구애정의 다난했던 ’비호감 연예인’의 삶이 이 ’이상한 세계’ 안에서 어떤 종지부를 찍게 될지는 이제 겨우 세 번이 남은 상황, 구애정의 절박함과는 무관하게도 현재 시청률은 17.8%(AGB닐슨미디어리서치)를 기록하며 수목 안방에서 1위 자리를 지켰고 또다른 조사기관 TNmS에서는 13.1%를 기록, '시티헌터(13.6%)'에 1위 자리를 내줬다.

<고승희 기자 @seungheez>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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