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신하균 & 고수…‘고지전’은 우리 삶과 연기의 전쟁터였다
걸출한 두 배우를 차례로 만났다. 20일 개봉한 ‘고지전’의 두 주연 신하균(37)과 고수(33)다. 신하균은 연극무대에서 연기를 시작했고 지난 1998년 ‘기막힌 사내들’로 스크린에 데뷔했다. 이후 20여편의 작품에 출연한 13년차 영화배우다. 고수는 1998년 뮤직비디오로 연예계에 데뷔해 TV드라마에서 주로 활동했으며 ‘고지전’은 영화로는 4번째 출연작이다. 연예계 경력도 같고 나이로도 4살 위 아래로 차이는 크지 않지만 신하균은 이미 20대에 한국영화사를 흔들어놓았던 문제작과 흥행작의 주연을 두루 거친 ‘중견’이라면, 고수는 지금 인기와 연기 모든 면에서 폭발적인 전성기를 보내고 있는 스타다. 그 느낌은 장훈 감독의 ‘고지전’에 그대로 투영됐다. 영화는 한국전쟁 말기, 지루한 남북 간 휴전논의가 막바지에 이른 1953년 2월부터 7월까지 동부 최전선에서 한 뼘 땅을 두고 사투를 벌인 한 부대의 이야기를 그렸다. 신하균은 부대 내 남북 간 내통 혐의와 장교의 의문사를 조사하는 방첩대 중위로, 고수는 동료의 죽음에도 눈 하나 깜짝 않는 ‘전쟁기계’ 같은 부대원으로 실제 전투만큼이나 악전고투였던 영화 촬영에 임했다. 신하균은 부대를 휩싸고 있는 모종의 불온하고 수상한 기운을 포착해 충격적인 비밀 속으로 발을 내딛는 ‘관찰자’ 역할을 했다. 고수는 선악을 가를 수 없는 전쟁의 비극을 온몸으로 겪어내는 인물이다. 신하균이 영화에서 든든한 무게중심이라면 고수는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뇌관’ 같다. 

▶신하균 “삶과 연기는 한몸”

신하균은 군복이 익숙하다. 군생활은 기갑부대에서 주특기로 장갑차 조종수를 했고, 자대배치 후엔 자주포 조종수로 복무했다. ‘공동경비구역JSA’에선 북한군 병사역을 맡았고, ‘웰컴투동막골’에선 전선에서 낙오한 국군병사로 출연했다. 긴장감이나 엄격함이 실제 군생활만했겠냐만 “경사가 가파른 곳에서 내내 뛰어다녔던 이번 영화촬영이 육체적으로는 군에서의 훈련보다 강도가 높았다”고 혀를 내둘렀다. ‘고지전’의 박상연 시나리오 작가와는 ‘공동경비구역JSA’에서 함께한 후 11년 만에 재회했으니 이번 작품과는 운명적인 만남이었다. 박 작가는 신하균의 연기에 대해 ‘명불허전’이라는 극찬을 했다.

“예전에는 ‘연기는 연기, 나는 나’라고 분리해 놓고 살았는데 나이들수록 삶과 연기는 한몸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제 삶에서 연기가 나올 수밖에는 없겠죠.”

20대 시절 영화 속의 신하균은 강렬하고 파란만장했다. ‘공동경비구역JSA’나 ‘웰컴투동막골’ 등의 대중적인 흥행작도 있지만 ‘복수는 나의 것’과 ‘지구를 지켜라’ 등 기괴한 복수극의 주인공 연기는 신하균을 한국영화의 감독들이 좋아하는 대표적인 연기파 스타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20편의 필모그래피는 신하균이 스스로를 돋보이게 하는 배우가 아니라 작품 전체와 상대역을 빛내는 배우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30대 후반에 접어든 신하균은 “20대의 강렬함보다는 이제 내가 가진 또 다른 매력을 보여줄 수 있는 로맨스나 멜로 영화를 하고 싶다”며 “사랑이 찾아온다는 건 언제나 기적 같은 일”이라고 말했다. 

▶고수, “요샌 연기가 즐거워”

음악으로 치자면 메트로놈 40쯤의 ‘라르고’(아주 느리게) 같은 말투, 질문 후 한두 박자 쉬고 되돌아오는 엇박자 답변, 때로 생뚱맞은 표현과 엉뚱한 유머. 고수는 ‘고비드’(고수+다비드) ‘고수앓이’(여성팬들이 고수에 열광하는 현상) 등의 조어를 만들어내며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지만, 정작 그와 대면하는 사람들은 때로 산속 암자 선승과 선문답을 하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한 마디 한 마디를 깊은 우물에서 떠올리듯 한다. 이런 언행과 달리 그가 최근 3년간 TV드라마와 영화에서 인기와 연기에 물이 차오르는 속도는 전광석화였다. ‘고지전’에선 한국 전쟁 초반 전투에서 오그라든 사지를 사시나무 떨듯 하는 유약한 신병에서 전쟁기계로 돌변한 병사 역할로 변신한다.

고수는 “여전히 연기에 정답은 없지만, 예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연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 불쑥 솟아오를 정도로 일을 즐기고 연기에 적극적이 돼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인터뷰 장소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진한 커피향이 코끝에 걸리자 불현듯 “모든 게 한국 전쟁 당시의 전장과 같았던 이번 영화 촬영장에서 유일한 현대문명의 이기가 있었다면 영화사 대표님이 내려주시던 커피”라며 “그때 이후로 커피를 좋아하게 됐다”고 말했다.

고수는 “극과 극의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다양한 배우로서의 경험을 해보고 싶다”며 “내 연기의 목표는 훗날 내 나이에 맞는 멋진 노역을 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형석 기자/suk@heraldcorp.com

사진=안훈 기자/rosedale@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