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김대중 前대통령 주로 청남대行
노무현 정권때 별장 일반에 전면 개방
이명박 대통령은 진해서 시간보내
美 부시 4년간 336일 휴가즐겨
사르코지 전용기 이용 럭셔리 여행
국내선 국민정서탓 아직은 용납안돼
폭염의 계절 8월과 함께 본격적인 휴가시즌이 돌아왔다.
휴가와 방학은 일에 치인 직장인과 공부에 주눅이 든 학생들에게는 ‘오아시스’ 같은 시간. 주말도 없이 연일 국정에 매달려야 하는 대통령도 예외는 아니다.
직장인들이 휴가를 재충전의 기회로 활용하듯, 대통령도 휴가기간 동안 취미 활동을 벗 삼아 모처럼 여가를 즐긴다.
역대 대통령은 주로 정치 휴지기인 ‘7말8초(7월 말~8월 초)’에 짧게는 3일, 길게는 일주일 정도 휴가를 떠났다.
일반인과 다른 점이 있다면 대통령은 경호 안전이 보장되는 ‘특별한 곳’을 찾아 국정 현안에 관한 ‘특별한 구상’을 한다는 것이다.
▶군 시설, 별장 찾아 정국구상=이승만 전 대통령은 강원도 화진포 별장, 박정희 전 대통령은 경남 진해의 저도를 주로 찾았다. 저도는 별장으로 사용하던 청해대 본관이 있는 섬이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여가로 낚시를 즐겼고, 박정희 전 대통령은 당시 휴가지에서 수영하는 사진들이 남아 있다.
1983년 충북 대청호 주변에 대통령 별장인 청남대가 생긴 후 전두환 전 대통령부터 김대중 전 대통령까지 주로 이곳에서 시간을 보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가족, 경호실 직원들과 함께 축구를 즐겼고, 싱글에 가까운 골프실력을 자랑했던 노태우 전 대통령은 골프 삼매경에 빠졌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날마다 2㎞씩 조깅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산책이나 서예로 여가를 보냈다.
이후 권위주의 탈피를 대선 공약으로 내세운 노무현 전 대통령이 별장을 전면 개방하면서 청남대 시대는 막을 내렸다. 노 전 대통령은 2003년에는 대전 군 휴양지, 2005년에는 강원도 용평을 다녀왔다.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후 3년간 진해의 해군 휴양소에서 테니스와 낚시 등으로 시간을 보냈다.
그렇다고 대통령이 마냥 휴식만 취한 것은 아니다.
‘청남대 구상’이란 말이 유행할 정도로 역대 대통령들은 휴가기간 중 여가를 즐기면서도 정국 구상을 빼놓지 않았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3년 8월 휴가기간에 장고를 거듭한 끝에 ‘금융실명제 실시에 관한 대통령 긴급명령’을 발표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휴가기간을 국정운영 철학을 정리하고 연설 원고를 작성하는 시간으로 활용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도 개각과 청와대 개편, 8ㆍ15 기념사 등 국정의 큰 틀을 휴가지에서 구상했다.
지친 일상에서 벗어나 심신을 충전하는 휴가는 대통령에게도 꼭 필요하다. 현실 정치에서 한발 물러서 나라 전체를 조망하면서 정국구상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대통령들의 휴가는 너무 짧아도, 너무 길거나 파격적이어도 때론 문제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휴가를 즐기는 사르코지(프랑스)ㆍ오바마(미국)ㆍ푸틴(러시아) 대통령, 박정희ㆍ김대중ㆍ노무현 전 대통령. |
▶국내 대통령 3~7일, 해외정상 2, 3주~한 달=문화적 차이인지 몰라도 우리나라 대통령과 외국 정상들과의 휴가 기간은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크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은 통상 3일에서 길어도 일주일을 넘기지 않았다. 대통령의 법정 휴가일 수(21일)가 무색할 정도다. 2006년 6월 말 서울시장 퇴임 이후 단 한 차례도 휴가를 다녀오지 못한 이명박 대통령도 취임 이후 평균 5일 정도 휴가를 다녀오는 데 그쳤다. 이마저도 참모들이 등을 떠밀다시피해서 겨우 성사됐다. 이 대통령은 방송 좌담회에서 “내가 일하면 많은 사람이 일해야 된다. 괴롭다”면서도 “10년 후쯤이면 (우리 대통령도 외국정상들처럼) 그리될 거다. 지금은 대한민국이 기초를 닦아 발전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역대 대통령 중에는 휴가를 아예 반납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 유독 여름휴가와 인연이 적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4년에는 탄핵사태로, 2006년과 2007년에는 각각 아프가니스탄 피립사건과 경제위기로 휴가를 떠나지 못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취임 첫해 경제위기를 이유로 휴가를 떠나지 못했고, 임기 마지막 해에는 아들 문제로 별도 계획없이 관저에 머물렀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6년 수해로 인해 휴가를 취소하고 수해현장 방문과 군부대 시찰로 시간을 보냈다.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첫해 휴가를 떠나긴 했지만 미국 지명위원회가 독도를 주권 미지정 암석으로 표기한 문제가 발생해 사태 수습에 시간을 보내야 했다. 올여름도 중부지방 폭우가 장기화할 경우 이 대통령이 휴가 일정을 조정할 것이란 얘기들이 들린다.
▶부시는 4년 동안 336일 휴가=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 등 주요국 정상들은 국정을 뒤로 한 채 최소 2~3주, 길게는 한 달 정도 휴가를 즐긴다. 휴가지도 다양하다. 유럽의 정상들은 가족들과 함께 모리셔스, 마요르카 등 국경 넘어 유명 휴양지로 훌쩍 떠난다.
‘휴가전문 대통령’으로 불린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집권 1기 4년 동안 무려 336일을 휴가로 보냈다. 여름에 4~5주, 겨울에 2~3주의 공식 휴가를 보내고 추수감사절 등 연휴를 꼬박꼬박 챙긴 결과다.
청와대 관계자는 “국가 지도자가 휴가를 가도 국정이 시스템에 의해 굴러가는 것이 선진국”이라며 “우리나라의 경우 민심, 국민정서가 아직은 대통령의 장기 휴가를 용납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른 대통령의 휴가=장기 휴가가 관행처럼 정착된 외국 정상들도 간혹 ‘잘못 떠난 휴가’로 곤경을 치르거나 휴가를 중도 포기하는 경우가 없지는 않았다.
지난 2009년 취임 후 첫 연말휴가를 하와이에서 조용하게 보내려던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휴가계획은 25일 여객기 폭파기도 사건으로 여지없이 깨졌다.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2007년 사업가 친구 소유 전용 제트기를 이용해 호화판 휴가를 떠났다가 구설에 올랐다.
당시 로이터통신 등 외신은 사르코지 대통령이 이집트로 휴가를 떠나면서 억만장자 사업가 뱅상 볼로레 씨 전용기를 이용한 것으로 드러나 비난이 일고 있다고 보도했다.
최악의 사례로는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첫손에 꼽힌다.
부시 대통령은 2005년 휴가를 보내느라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피해 복구에 늑장대응, 정치적으로 궁지에 몰렸다. 아버지 부시 대통령도 이라크 전쟁을 앞두고 미군의 페르시아만 배치가 진행되던 즈음인 1990년 8월 메인 주 케네벙크포트 여름 별장에서 골프와 낚시를 즐기다 큰 비난에 직면했다.
<양춘병 기자@madamr123>
/ yang@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