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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소리 오페라 세계화…‘수궁가’ 토끼에게 묻다
연출가 아힘 프라이어·예술감독 유영대 韓·獨거장 합작…오염된 바다·황폐해진 고향‘유토피아’찾는 존재의 고뇌 현실적 재해석
한국의 전통 소리극 창극이 독일 연출가와 만났다. 오는 9월 8일부터 세계국립극장페스티벌 개막작으로 무대에 오르는 판소리 오페라 ‘수궁가(Mr.Rabbit and the Dragon King)’는 독일의 세계적인 오페라 연출가 아힘 프라이어(Achim Freyerㆍ77)와 국립창극단의 유영대 예술감독(55)이 뜻을 모아 만든 작품이다. 전통을 지키면서 세계 예술 조류에 발맞추려는 창극의 세계화 프로젝트의 첫 시도다. 프라이어는 연출을 맡아 전체를 총괄하고, 유영대 감독은 대본과 노랫말 등 텍스트에 주력했다. 무대의 두 예술가를 16일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연습실에서 만났다.

“이건 아힘 프라이어의 작품입니다.”(유영대 국립창극단 예술감독)

“노,노,노. 당신과 내가 만드는 작품이죠.”(아힘 프라이어 연출가)

저마다의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두 사람이 공동 작업을 하는 일은 쉽지 않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상상력과 감각을 반영한 예술의 영역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동안 쌓아온 자신만의 색채가 흩어지거나 상대와 충돌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프라이어는 세계적인 오페라 연출가로, 독일 최고 문화훈장,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등에서 최고 문화훈장을 받은 ‘거장’이다. 지난 50년간 ‘마술피리’와 ‘세빌리아의 이발사’ 등 150여편의 오페라를 연출했다. 그의 작품은 매번 관객을 놀라게 하는 걸로 유명하다. 관객들은 “이번엔 프라이어가 또 얼마나 다른 작품을 만들었을까”하는 궁금증과 호기심으로 공연장을 찾는다. 이름있는 추상화가이기도 한 그는 연출은 물론 직접 무대와 의상을 디자인하고, 조명, 안무까지 총괄하는 멀티플레이어다.

유영대 감독 역시 대중들로부터 외면받던 창극을, 젊은 감각을 동원해 새롭게 띄운 일등공신이다. 그가 주도한 ‘춘향’, ‘청’ 등 젊은 감각의 작품은 고사 직전의 창극에 불씨를 살렸다. 고려대학교 국문학과 교수이기도 한 그는 이번 ‘수궁가’의 대사와 노랫말을 다듬는 작업에 참여했다.

사실 이런 대형 프로젝트가 이뤄지게 된 것은 우연한 만남 덕이다. 지난해 ‘춘향 2010’을 본 아힘 프라이어가 작품을 만든 유영대 감독과 만나 칭찬을 건냈고, 유 감독은 그 자리에서 “창극 한번만 연출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때 아힘은 “2년 뒤까지는 스케줄이 꽉 찼다”며 고사했지만, 이후 유 감독의 끈질긴 러브콜에 제안을 수락했다. 

한국인 아내(성악가 에스더 리)를 둔 프라이어는 평소 판소리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원형 판소리의 오래된 창법과 굿, 재래음악, 궁중 음악 등에 관심이 많았다”며 “‘춘향 2010’을 보고 농악의 풍년을 기원하는 춤, 배우(소리꾼)의 절제된 소리와 움직임에 매료됐다”고 말했다.

독일 연출가가 오면서, 창극단의 연습 분위기도 180도 바뀌었다. 여든이 가까운 고령이지만, 직접 몸짓과 표정 연기를 보여준다. “별주부” “토끼”와 같은 몇몇 단어는 한국어로 말한다. 3주 앞으로 다가온 공연에도 “바쁠수록 더 꼼꼼하게 준비해야 한다”며 철처함을 보여주면서도 에너지가 넘친다.

배우들은 프라이어가 직접 만든 토끼, 자라, 용왕 등의 마스크를 쓰고 연습한다. 인물들의 콘셉트도 직접 그려와 연습실에 붙여뒀다. 연습실 벽면은 모두 그의 손끝에서 탄생한 추상화들로 도배돼 있다.

유영대 감독은 “그가 그린 그림 값만해도 몇억 원을 호가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안숙선 명창을 스토리텔러로 설정, 그의 치마폭에서 자라, 토끼, 여우 등의 동물들이 하나 둘 튀어나오는 기발한 상상력도 볼거리다. 또 150개의 조명 변화로, 지루할 틈 없는 비주얼 감각을 보여줄 예정이다.

연출가 아힘 프라이어가 직접 제작한 가면들. 배우들은 실제 이 가면을 쓰고 무대에 오른다.

기존 창극단의 ‘수궁가’와 주제와 내용도 완전히 달라졌다. 수궁가하면 별주부의 충성심이나 토끼의 영특함을 그리는 데 머물렀지만, 이번 수궁가는 전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주제 ‘유토피아’를 그린다.

“토끼가 육지에서 못살고 유토피아를 향해 수궁으로 갔는데, 수궁도 역시 유토피아가 아님을 확인합니다. 다시 살던 고향으로 돌아와서는 더욱 황폐해져 있는 환경을 보고, “나 돌아갈래”라고 말하죠. 관객들은 실제 토끼가 돌아갈 곳이 어딘지 모릅니다. 갈팡질팡하면서 어디로 갈지 몰라하는 ‘존재’의 모습을 그리고자 했습니다” (아힘 프라이어)

에피소드 역시 고릿적 이야기에 머물지 않고, 현재 우리 사회와의 개연성을 더했다. 바닷속에 버려진 페트병은 용왕의 병을 만드는 원인이다. 얼마전 일본 대지진으로 인한 방사능 누출도 수질오염의 원인이 된다. 이 같은 수질오염은 용왕이 병에 걸리는 결정적인 이유다.

그는 “아무리 재미있는 내용이라도 우리가 살고있는 현실을 반영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며 “음악도 판소리, 내용도 옛날 이야기에 머무는 것 같지만 알고 보면 오늘날 우리의 이야기다. 다들 토끼가 ‘난 갈 곳이 없네’하는 대사를 들으면서, ‘우리의 이야기네’라는 깨달음을 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립창극단은 프라이어와의 작업을 통해 ‘창극의 세계화’를 향한 첫발을 뗐다. 유영대 감독은 “이번 작업을 토대로 창극을 ‘판소리 오페라’로 개칭할 것을 염두에 두고 있다”며 “그동안 창극단이 추진해온 ‘창극 세계화’의 결정판이다. 기존에 봤던 창극과 180도 다른 극의 형태로 관객들을 놀라게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수궁가’는 9월 8일부터 11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초연되며, 오는 12월에는 독일 부퍼탈 오페라극장에서 공연무대에 올릴 예정이다.

조민선 기자/bonjod@heraldcorp.com
사진=이상섭기자/babt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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