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죄인가요?” 가슴에 낙인찍혀 있던 ‘대문자 A’, 추악한 범죄의 대명사 격이었던 ‘주홍글씨(Scarlet Letter)’가 한국에서도 점차 삭제되려 하고 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부부의 연을 맺은 자(者)들이 각자의 배우자를 배신하고 제3자와 통정(通情)한 자체를 죄악시했던 사회 분위기는 일찌감치 구닥다리가 돼 버렸다.
‘백년해로’할 것 같던 언약이 유통기한을 채우지 못하기 일쑤인 것은 간사한 인간의 숨길 수 없는 특질인가. 운명이라고 믿던 최초의 배우자조차 실제로는 사랑이 아닌 자기최면의 희생양이었다는 걸 고백할 여유와 자성의 시간도 갖지 않은 채 ‘간통(姦通ㆍAdultery)죄’ 용도폐기를 위한 합의는 거의 이뤄진 듯하다.
물론 간통죄 존치론도 엄존한다. 배신에 신음하는 남겨진 배우자와 차라리 뿌리지 말았어야 할 거짓(?) 사랑의 씨앗 탓에 자식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야 할 수많은 날 선 시선들의 복수심을 달래고 치정에 의한 가정 파탄을 막을 최소한의 장치는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랑, 인연…. 삶은 이런 단어들을 삼키며 살지만, 얽히고설켜 정답을 명쾌히 알 수 없는 복잡한 방정식들이 잉태한 죄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간통죄 폐지, 대세는 기울었나=간통죄 존폐가 새삼 화제에 오른 건 지난 8일 의정부지법 형사합의 1부(부장판사 임동규)가 직권으로 간통죄의 위헌 여부를 가려 달라며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해서다. 이르면 올해 안에 헌재의 결론이 난다.
그런데 이 재판부는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위헌제청결정문에서 이렇게 밝혔다. “성생활의 영역을 형사처벌의 대상으로 삼아 국가가 간섭하는 것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고 성적 자기결정권을 지나치게 제한하는 것으로 헌법에 위반된다.”
헌재는 1990년ㆍ1993년ㆍ2001년ㆍ2008년 등 네 차례에 걸쳐 간통죄는 합헌이라고 결론냈지만, 의정부지법의 제청으로 통산 5번째 위헌심판에 돌입하게 됐다. 탤런트 옥소리의 사례(2008년) 이후 간통죄는 유효할 것만 같았지만, 타인의 남자 혹은 여자를 탐내는 욕정의 불씨는 애초 꺼질 수 없었던 셈이다.
위헌심판제청의 논리는 시간이 지나면서 한층 탄탄해졌다. 서울북부지법이 2007년 낸 위헌제청결정문은 간통죄 폐지의 변(辯)을 확실하게 보여준다.
“일부일처제의 부부관계는 법적으로 계약성을 띠는 것이므로 본질상 계약 위반 책임 혹은 불법행위 책임을 묻고 이혼법정이나 민사법정에서 다뤄져야 할 문제이지 형사법정에 세워야 할 문제는 아니다. 자발적인 성인들의 성행위를 형사처벌해 공공목적을 달성하려는 것은 법만능주의며 더욱이 법정형에 있어서도 벌금형도 없이 오로지 징역형만을 규정하고 있어 형평성까지 잃은 처벌조항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헌재의 입장도 점차 변했다. 네 차례 내리 합헌 결정을 냈지만, 위헌 의견이 점차 많아진 것. 역대로 보면 ‘6(합헌):3(위헌)→6:3→8:1→4:4’로 간통죄는 위헌이라는 의견이 확 늘어난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추세 때문에 법조계에선 이번엔 위헌 결정이 날 수 있다고 조심스럽게 예측한다. 나름의 근거도 있다. 9명의 헌법재판관 가운데 위헌 결정에 필요한 정족수 6명만 되면 되는데, 2008년 당시 합헌 의견을 낸 이공현ㆍ조대현 재판관이 퇴임해 후임이 누구냐에 따라 위헌 가능성이 커졌다는 것.
헌재 결정에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지만 최근 신임 대법원장에 지명된 보수성향의 양승태 후보자조차도 “간통죄는 큰 타당성이 없는 법”이라며 폐지 쪽에 선 점으로 미뤄 헌재의 결정은 급변하는 시대상을 반영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겠냐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헌재가 간통죄를 위헌으로 결정하면 여태까지 간통죄로 기소돼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들은 모두 재심을 청구해 무죄판결과 형사보상금을 받을 수 있게 된다. 그러나 헌법 학자들은 간통죄 위헌 결정이 나도 민법상 불법행위로 이혼, 재산분할, 위자료 등 손해배상 책임은 따른다고 설명한다.
▶“간통죄를 놔두고 개선할 방향도 있는데…”=간통죄 존치론 쪽은 ‘형법 241조-배우자 있는 자가 간통한 때는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그와 상간한 자도 같다’를 손대지 말고 문란한 성도덕의 근절과 건전한 가족질서 확립을 위해 일부 불합리한 사항을 손질하는 편이 낫다고 주장한다. 성적 자기결정권을 인정해 가정을 파괴하는 일을 용서해선 안 된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는 것이다. 대신 형사소송법 229조의 위헌 가능성에 주목해야 한다고 본다.
229조는 형법상의 간통죄로 고소하려면 혼인이 해소되거나 이혼소송을 제기하지 않으면 안 되도록 돼 있다. 이혼을 원하지 않고 간통죄 처벌만 원하는 배우자가 있는데도 반드시 이혼하도록 하는 건 간통죄가 존치 사유로 들고 있는 혼인제도의 유지에 역행하는 것이라는 논리다.
재발방지를 위해 제도를 확립해야 한다는 의견도 타당성이 없지 않다. 자신의 배우자와 간통한 상대방에 대한 민사상 손해배상청구에서 배상청구권자와 배상액을 확대해야 한다는 게 대표적이다. 손해배상청구권자 범위에 기존 배우자뿐만 아니라 자녀들도 포함시키고, 배상금액도 현재보다 2~3배 이상 높여 간통행위를 예방하거나 간통으로 인해 피해를 본 측을 구제하자는 것이다.
최병록 서원대 법학과 교수는 “가장 중요한 문제는 간통한 소수의 범죄자를 보호하려는 인권의식보다 사랑의 진정한 의미와 올바른 성도덕의 회복, 건전한 가족질서의 확립이 필요하다”고 했다.
홍성원 기자/hongi@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