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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정기국회 예산편성의 계절…레오니다스의 300명 전사들은‘ 복지포퓰리즘’에 맞서 테레모필레 협곡을 지킬수 있을까
예결위는 파행되고

야당은 점거농성 벌이고

여당은 직권 강행처리

18대 국회 4년 임기중

3번이나 같은 시나리오 반복

부실심사는 꼬리표로



박재완 재정 취임이후

복지포퓰리즘과 전쟁 선포

치열한 예산전쟁 예고





8월 말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는 정장 차림의 한 손에는 음료 박스를 든 사람들이 유난히 눈에 많이 보인다. 예산을 따내기 위해 각 정부부처와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산하 관련기관에서 찾아온 예산 로비스트.

30도가 넘는 늦더위 속에도 이들은 넥타이를 와이셔츠 끝까지 올린 말끔한 정장 차림 일색이다. 2, 3명이 한 조로 움직이는 이들은 음료 박스 외에도 서류가방을 손에 꼭 쥐고 있다.

의원회관 1층 방문자 센터에서 받은 출입증을 함께 가슴에 단 이들은 각 의원실 문을 두드린다. 회관의 긴 복도 이곳저곳에 마련된 테이블에서도 이들의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한 의원실 관계자는 “대개 과장급들이며 두세 사람이 함께 찾는 것이 보통”이라며 “8월부터는 적어도 이틀에 한 번씩 ‘예산 미션’이 담긴 서류 가방과 음료수 박스를 들고 찾아오는 공무원을 맞이한다”고 최근 분위기를 전했다.

▶예산이 뭐길래=예산편성은 국가자원을 최적의 곳에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사전적 의미의 예산은 ‘국가나 단체에서 한 회계연도의 수입과 지출을 미리 셈하여 정한 계획’으로 정의하고 있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6월 취임사에서 “우후죽순의 복지 포퓰리즘에 맞서 레오니다스가 이끌던 300명의 최정예 전사처럼 테레모필레 협곡을 굳건히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9월 정기국회에서 본격화될 예산전쟁의 치열함을 단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사진은 4대강 예산 등을 놓고 치열한 몸싸움을 벌인 2010년 국회 본회의장의 모습.                 [헤럴드미디어 DB]

정부는 매년 6월까지 각 부처나 산하단체들로부터 다음 해 예산안을 취합하면서 전체 규모에 맞게 세부 항목을 조율한다. 이를 9월 정기국회에 제출하면 국회는 이를 각 상임위별로 1차 심사하고, 종합적으로 예결위에서 또다시 조정한다. 이후 12월 2일까지 본회의를 통과, 다음 회계연도의 예산을 확정하도록 헌법은 규정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예산이란 개념이 등장한 것은 19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왕권에 대항해 시민의 권리를 강화하기 위해 의회가 생겼고, 의회는 왕이 세금을 함부로 걷고 쓰는 것을 막으려 국가 재정을 장악했다.

정부 부처나 지방자치단체의 예산낭비 현장을 보고 흔히 ‘혈세(血稅ㆍ피 같은 세금) 낭비’라고 하는 것도 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한 수많은 희생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오늘날 국회의원들이 예산안을 놓고 밤샘 농성을 하며 멱살을 잡고, 때로는 주먹질까지 서슴지 않는 비민주적인 모습은 아이로니컬하게도 민주주의 확립 과정에서 나온 결과인 셈이다.

▶예산전쟁은 돈 싸움=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6월 취임사에서 “우후죽순의 복지 포퓰리즘에 맞서 레오니다스가 이끌던 300명의 최정예 전사처럼 테레모필레 협곡을 굳건히 지켜야 한다. 지금 당장 편한 길보다는 미래세대에 빚을 떠넘기지 않는 가시밭길을 떳떳하게 선택하자”고 강조했다. 9월 정기국회에서 본격화될 예산전쟁의 치열함을 단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반면 더 많은 예산을 확보하려는 정부 각 부처와 정치권 역시 필사적이다. 전쟁이라는 말 그대로다. 각 정부 부처에서 요구한 내년 예산은 333조원. 반값등록금 및 무상보육, 무상의료 등 정치권의 복지 확대 요구, 평창 동계올림픽 지원을 위한 각종 사회간접자본 투자, 기타 각종 지역구 선심성 예산은 빠진 금액이다.

20여년 동안 예산 관련 업무를 해온 한 차관급 공직자는 매년 벌어지는 이 전쟁을 “사활을 건 1000만원의 싸움”으로 정의내렸다.

“매년 예산을 편성하다 보면 1000만원에서 1억~2억원이 잡힌 항목들을 볼 수 있다. 밖에서 볼 때는 별 것 아닌 액수지만 이것을 넣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상위 행정관청, 또 지역구나 해당 상임위 국회의원이나 보좌관의 방을 오갔는지 잘 알기 때문에 가슴이 짠하다”며 후배들의 동분서주하는 모습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이들 소액 예산은 새로운 프로젝트, 또는 업무의 시작을 의미한다. 기본 계획 수립 및 설계비 명목으로 1억원 미만의 돈이 반영되지만, 이들 사업은 수년 후 수십, 수백억 많게는 수조원을 잡아먹는 하마로 변신한다.

새로운 일을 준비하는 각 정부부처, 또 지역구에 생색을 내야 하는 국회의원들에게 이 1000만원은 미래를 담보하는 든든한 보험인 셈이다.

▶국회의 단골 싸움거리 예산=예산은 국회 정쟁의 단골 소재다. 연말이 되면 볼 수 있는 국회 본회의장 몸싸움 대부분은 직ㆍ간접적으로 예산과 관련있다. 정부와 합의한 대로 내년 예산안을 밀어붙이려는 여당, 정치 현안에 대한 정부 여당의 양보를 얻어내기 위해 일방 통과를 저지하려는 야당의 이해 관계는 몸싸움으로 비화되기 일쑤다.

18대 국회 역시 매년 예산안 처리로 몸살을 앓아왔다. 4대강 예산을 사수하자는 여당, 전액 삭감해야 한다는 야당의 고집 앞에서 새 회계연도 개시 30일 전인 12월 2일까지 국회는 의결해야 한다는 헌법 제54조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

4년 국회 임기 중 3번을 ‘예결위 파행, 야당 점거농성, 여당 직권 강행처리와 몸싸움’이란 시나리오를 반복했다.

이 과정에서 부실 심사는 피해갈 수 없는 꼬리표로 따라 붙었다.

지난해의 경우 계수조정소위는 12월 2일에야 시작, 불과 5일 만에 끝났다. 행정부의 낭비성 예산 걸러내기는 고사하고, 몇몇 의원들의 지역구 사업 예산 끼워넣기만 이뤄졌다. 2009년과 2008년에는 심지어 계수조정소위를 구성조차 못하거나 문만 열고 회의는 한 차례도 하지 못했다.

한 의원은 “사실 예산은 정기국회에 임하는 여야의 가장 좋은 협상 수단이다. 반드시 통과시켜야 하는 여당과 행정부의 입장에서 시간을 끌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산이 예산 그 자체의 논리로 해결되지 못하고 항상 정치적 타협의 결과로 이루어졌다”고 자성했다.

최정호ㆍ손미정 기자/ choijh@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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