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다오? 우리는 오직 바치는 일이 있을 뿐이다. (중략) 일본 정신은 오직 천황께 바침이 있을 뿐이다.” 이광수의 ‘황민화와 조선문학’의 일부다. 도대체 무엇이 영민했던 문학가를 전향으로 이끌었을까.
‘벌레와 제국(새물결)’의 저자인 문학평론가 황호덕은 식민지기의 언설을 통해 그 배후에 놓인 근대국가의 지배와 내화의 테크놀로지에 주목한다.
저자는 제국의 통치이념을 지탱하는 첫 번째 관념으로 증여신화를 꼽는다. 신민의 자유와 권리는 타고난 것이 아니라 천황이 선사했다는 것. 하지만 이러한 증여는 복종을 보답으로 요구한다는 점에서 선물이 아니라 빚이며 지배 이념으로 구동하게 된다.
또 저자는 조선어학회 사건을 통해 제국이 언어에 개입하는 통치성의 단서들을 찾아낸다. 조선어는 전체주의적 통치를 가로막는 불통ㆍ불편ㆍ불온의 언어며 이러한 불투명성을 제거하는 것이 제국의 급선무였다는 것이다.
나아가 국어(당시의 일본어)는 정상, 조선어는 비정상이란 대립항의 짝짓기가 이뤄지며 조선어는 논리로서의 말조차 못된 비(非)인간의 목소리로 전락하고 만다. 이러한 메커니즘 아래 법적 보호로부터 ‘벌거벗은 인간’은 제 발로 내선일체의 길로 향하게 되었다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하지만 저자는 식민지기를 근대성의 예외가 아닌 보편으로 본다. 해서 저자는 식민지기라는 ‘뜨거운 감자’에 찬반논쟁을 시도하거나 개입하지는 않는다. 다만 극단의 시대의 사고로부터 첨예한 현실인식을 읽고 역사의 연속선상에서 오늘에 대한 문제의식을 품을 수 있다는 게 저자의 입장이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미셸 푸코의 고고학과 계보학 조르조 아감벤의 생명정치를 분석틀로 삼은 저자의 논리가 정치하고 해박하다. 일반 독자가 읽기엔 만만치 않지만 오늘날 문학평론의 첨단을 느끼고 싶은 독자라면 기꺼이 일독을 권한다.
<김기훈 기자@fumblingw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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