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이문열의 단편소설 ‘익명의 섬 전문이 9월 5일 배포되는 12일자 세계적인 시사교양지‘뉴요커’에 번역, 게재된다.
2006년 고은의 시 4편이 ‘뉴요커’에 번역되어 실린 적이 있으나, 한국 작가의 소설로는 이문열의 ‘익명의 섬’이 처음이다. 이에따라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로 모아진 한국문학에 대한 관심이 더욱 뜨거워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뉴요커’는 140만 부를 발행하는 시사교양지로, 그동안 오에 겐자부로, 오르한 파묵, 무라카미 하루키 등 대가들이 이 잡지에 작품을 발표하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바 있다.
‘뉴요커’는 단행본과 마찬가지로 1년 중 외국작가는 단 한 명만 소개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로써 이문열의 소설은 세계적 평가를 받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단편소설 ‘익명의 섬’은 ‘세계의 문학’ 1982년 봄호에 발표했던 작품으로 혈연이나 인척으로 이루어진 산골 마을에서 반푼이 행세를 하는 깨철이와 마을 아낙네들의 음흉한 관계의 속내를 보여주는 이야기이다.
중년 여성의 주인공인 화자는 남편과 뉴스를 시청하다가 불법 댄스홀과 관련된 사건을 시청하게 된다. 주인공은 불법 사교 활동을 벌이다 붙잡힌 여성들이 화면 속에서 이리저리 숨는 걸 보며 과거 교사 시절로 깊이 빨려들어 간다.
그녀가 교육대학을 갓 졸업하고 첫 부임한 곳은 군청 소재지에서도 재를 두 개나 넘어야 되는 산골이었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이고 가옥도 백여 채가 될 듯 말 듯한 작은 마을. 시골버스에서 내리는 그 순간부터 그녀는 줄곧 야릇한 눈길이 자신에게 닿고 있음을 의식한다. 그 시선은 정거장의 한 모퉁이에 넋 나간 사람처럼 앉아 뜸하게 지나치는 행인을 멀거니 바라보고 있는 한 사내의 것이었다.
사내는 얼핏 보기에도 정상적이지 않은 광기의 눈빛으로 버스에서 내리는 그녀를 줄곧 관찰하고 있었다. 반푼이인 깨철이와의 만남을 이렇게 시작한 그녀는 마을 생활이 익숙해지면서 이 마을의 인적 구성이 독특하다는 걸 알게 된다. 자신의 담당 학급의 절반은 같은 성씨이고, 또 성이 달라도 고종이니 하는 식으로 얽혀 있었다.
화자인 여교사가 이 마을에 부임한 지 여섯 달이 되던 즈음, 퇴근길에 하숙집 앞 공터에서 큰 소동이 일어난 것을 보게 된다. 젊은 남자가 말 그대로 깨철이를 짓뭉개고 있었는데, 이상한 것은 때리는 쪽도 맞는 쪽도 그 원인에 대해 말하지 않는 일이었다.
마을 사람들이 모여들어 그 무자비한 폭행의 원인을 따지기보다 서로 알 만하다는 듯이 폭행을 멈출 것만을 강요한다. 그러던 어느 날 여교사는 개울가에서 무심코 엿듣게 된 그 동네 아낙네들의 수군거림을 통해서 깨철이의 존재를 어렴풋이 알게 된다.
아낙들은 누가 깨철이를 닮은 애를 나았다는 등의 음담을 나누고 있었던 것이다. 더욱이 말을 맺을 때에는 어딘지 모를 공범자끼리의 은근한 눈길도 엿보였다.
모두가 친족처럼 지내는 한 마을에서 익명의 섬인 깨철이는 마을 사람들의 욕망의 탈출구이자 타인과의 만남을 통해 마을 사람들이 자신을 확인하는 그런 존재로서 기능한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