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중경 장관이 또 불명예 퇴진하게 됐다. 18일 기자회견장에서 “자리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한 말은 사태 수습을 전제로 한 사실상의 사의 표명으로 읽힌다.
최 장관은 사석에서 “하도 여러 번 그만둬 봐서…”라는 말을 자주 한다. 순탄치 않았던 자신의 공직생활과 웬만한 일에는 놀라지 않는다는 자신감이 녹은 말이다. 실제로 과거 환율 때문에 물러난 게 두 번이니 이번 풍파가 세 번째다.
이번엔 과거 구제역 사태 때 유정복 농식품부 장관의 ‘先수습, 後퇴진’이라는 해결방식을 떠올리게 한다. 유 장관에겐 6개월 이상 구제역 사태를 마무리할 시간이 주어졌지만, 10ㆍ26 서울시장 재보선을 앞두고 성난 민심을 잠재워야 하는 상황에서 최 장관에게도 이 정도 시간이 주어질지 알 수 없다.
그는 18일 기자회견에서도 “주무장관으로서 무한책임을 느낀다”면서도 “지식경제부 장관으로서 전혀 대응할 수 있는 시간이 없었다”며 내심 억울한 심사를 드러냈다. 지경부 설명에 따르면 전력거래소에서 단전 위험을 최초로 알렸던 시간은 오후 2시30분께, 그리고 단전(오후 3시15분) 이후 그에게 사후 보고된 시간은 4시께다. 장관에게 사전 보고의 기회조차 없이 급박한 상황이 전개됐던 것이다.
그는 지난해 말 지식경제부 장관으로 과천에 돌아왔다. 웬만하면 ‘한 번만 삐긋해도’ 다시 중앙무대로 복귀하기 어렵다는 과천이지만, 그는 두 번 모두 화려하게 복귀하는 행운을 거머쥐었다. 하지만 꼭 ‘운’이라고 말할 수만도 없다. 그의 부활은 고환율 정책의 필요성을 우리 사회가 어느 정도 인정했다는 반증이기도 하고, 그 같은 정책의 실패를 한 사람 탓으로 몰아갈 수 없다는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탁월한 행정능력도 감안됐다.
이번 단전 사태에는 한국 사회의 수많은 문제점이 녹아들어 있다. 물가를 고려해 원가에 못 미치면서도 3년째 유지하고 있는 낮은 전기값, 매뉴얼을 무시한 채 움직이는 사회 시스템, MB정부 주변 인사의 낙하산 인사로 인한 조직의 기강해이, 하다못해 기후변화가 몰아닥친 한반도라는 거창한 문제까지 포함돼 있다.
이 모두를 최 장관 한 사람이 책임진다 해서 당장 바뀔 게 있을 리 없다. 다만 남은 시간 ‘단전’ 재발 방지와 조직의 기강확립을 기대해본다. 한편 두 번 모두 오뚝이처럼 일어섰던 그가 세 번째의 기회를 찾을 수 있을지 궁금하다.
박지웅 기자/goahead@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