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동반성장 모델의 정립을 위한 과제
법은 한번 만들면 없애기 힘들어자연스런 경쟁·변화 유도 바람직
정부도 기본철학은 시장의 자율
기술 빼앗기 반칙은 반드시 규제
좋은기업 평판 얻도록 사고 전환
시늉 아닌 진정성 체질화 시켜야
동반성장에 대한 논쟁이 끊이지 않는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상호협력이라는 선의에는 모두 공감하지만 방법론에선 천차만별이다. 대기업은 정부가 동반성장을 빌미로 지나치게 옥죈다고 항변한다. 반면 중소기업은 여전히 ‘무늬만 동반성장’이라며 그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최근 동반성장위원회가 ‘중소기업 적합업종’ 16개를 지정하는 등 나름의 성과를 거두고 있다. 하지만 동반성장이 갈등을 넘어 진정한 상생문화로 자리잡기 위한 길은 여전히 험난하다.
성숙한 세계국가 도약을 위한 9대 전략을 점검하는 세미나를 연중 진행 중인 헤럴드경제는 그 일곱 번째 주제를 ‘동반성장 모델의 정립을 위한 과제’로 정했다. 세미나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법적인 강제보다는 글로벌 사회ㆍ경제의 격변에 따른 기업의 경영 패러다임 변화를 유도해야 동반성장이 지속될 수 있다고 뜻을 모았다.
-동반성장이 시대적 흐름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기업이 이를 잘 실천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곽수근 서울대 교수(이하 곽 교수)=기업도 동반성장이 자신에 해가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최근에는 변화에 대한 진정성도 보입니다. 협력업체에 대한 배려로 얻는 소득은 직원을 잘 키우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직원을 키우는 것만큼 우수한 협력업체와 함께하는 것도 대기업에 이익입니다. 하지만 기업에는 여전히 관료적 특성이 있습니다. 기업의 가치와 담당 직원의 이익이 충돌할 수 있습니다. 납품단가를 깎는 것이 당장의 이익에는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좌승희 경기개발연구원 이사장(이하 좌 이사장)=기업 내부적으로 현 정부 임기가 끝나는 1년만 참으면 된다는 생각도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기업도 동반성장의 방향으로 가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기업 가치에 대한 방향을 바꿔야 하고, 그런 부분에 대해 교육받아야 할 점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을 법으로 끌고 가는 것은 위험합니다. 동반성장을 하겠다고 법으로 고착화하면 자연스러운 변화를 어렵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법은 한 번 만들어지면 없어지기 어렵습니다. 대기업도 성장하고 싶어합니다. 동반성장 분야에서도 자연스럽게 경쟁하고 훈련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 상황과 비교해 주요 선진국은 대ㆍ중소기업 간 양극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있습니까.
▶정재찬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이하 정 부위원장)=정부도 시장에 자율적으로 맡기는 철학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본적은 룰은 지켜져야 하는데 이것이 선진국과 우리 상황과 차이입니다. 선진국은 수백년간 시행착오 겪으면서 페어플레이가 어느 정도 지켜지기 때문에 자율적으로 시행해도 큰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 압축성장 과정에서 약간의 반칙이 허용돼 왔습니다. 현재도 이익이 직결된 결정적인 상황에서는 반칙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면에 대해서는 정부가 감시를 해야 합니다. 현재 공정위가 맡은 부분도 기본적으로 자율을 기조로 하고 있습니다. 다만 유통 분야에서 판매수수료 문제가 제대로 안 지켜지니 그 부분에 손을 댔던 겁니다. 기술 탈취도 심각합니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이 능력있는 협력업체의 기술을 편법적으로 뺏어가고 있습니다. 이 같은 행위가 개인의 차원에서 나타날 수도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기업의 행위로 나타나게 됩니다. 이런 부문은 반드시 규제해야 합니다.
▶좌 이사장=판매수수료는 천차만별이고 서로 간 파트너를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이를 공개할 경우 시장에 혼란을 줄 수도 있습니다.
▶정 위원장=그런 부분을 고려해 상품별로 수수료율을 모두 공개하는 것은 아니고 최소 수수료에서 최대까지의 범위만을 공개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백화점에 납품하는 업체가 자신이 적절한 수수료를 내고 있는 것인지 판단할 수 있다고 봅니다.
헤럴드경제와 현대경제연구원이 공동주최하는 연중기획 ‘성숙한 세계국가도약을 위한 9대 전략’의 일곱 번째 세미나가‘ 동반 성장 모델의 정립을 위한 과제’를 주제로 지난 27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렸다. 이날 세미나에는 (오른쪽부터)김주현 현대경제연구원 원장의 사회로 좌승희 경기개발연구원 이사장, 정재찬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 곽수근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가 참석했다. 안훈 기자/rosedale@heraldcorp.com |
-동반성장이 시장경제 시스템 안에서 지속가능 모델로 유지되려면 어떻게 해야합니까.
▶좌 이사장=동반성장이 지속하려면 무엇보다 대기업의 의견을 구해야 합니다. 성공의 칼자루를 쥐고 있는 것은 사실상 대기업입니다. 동반성장에 대한 방향이 맞는데 왜 이 길로 들어서지 못하고 있는지 대기업에 그 이유를 듣고 개선 방향을 마련해야 합니다. 강제로 양측 대표끼리 모여서 토론하는 등의 방식은 적절치 않다고 봅니다. 시장은 기업의 연결고리입니다. 그리고 기업은 파트너를 찾습니다. 뿐만 아니라 시장 모든 주체에 베스트 파트너를 찾는 것은 가장 중요한 과제입니다. 동반성장 모델은 법적 강제가 아니라 대ㆍ중소기업이 서로 우수한 협력체를 찾을 수 있도록 모델을 다져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곽 교수=정부에 이끌려 마지못해 동반성장 시늉을 내는 것은 정부와 기업 모두에 좋지 않습니다. 하지만 기업도 사고방식에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기업에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것은 이익을 남에게 퍼주라는 것이 아닙니다. 좋은 기업이라는 평판을 얻게 되면 얻는 점이 많습니다. 최근 젊은이가 일하기를 원하는 기업은 훌륭한 경영관을 가지고 있는 존경받는 기업입니다. 소비자 역시 착한 기업이 생산한 제품을 사려고 합니다. 정부가 제시한 수준은 기본입니다. 오히려 정부가 요구하는 수준을 넘어서 위대한 기업, 존경받는 기업이 돼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합니다. 최근 동반성장 분위기를 ‘지나가는 소나기는 피하자’는 식으로 기업이 생각한다면 우리나라에 미래가 없다고 봅니다. 기업이 진정성을 갖고 체질화해 나가야 합니다.
▶정 부위원장=기업 총수의 생각이 바뀌어야 합니다. 대기업의 전문경영인은 그해 그해 실적에 따라 평가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총수가 방향을 제시해 그 기업이 상생의 방향으로 가면 정부는 관여할 필요가 없습니다. 정부가 제시하는 것은 가이드라인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반칙이 나오고 있습니다. 따라서 정부는 총수가 마인드를 바꾸도록 돕기 위해 동반성장 문화 확산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물론 가이드라인을 뛰어넘는 우수한 기업도 많이 있습니다.
정리=하남현 기자/airinsa@heraldcorp.com
사진=안훈 기자/rosedale@ herald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