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을 뺀 터치로 일상과 인물을 과장되지 않게 그리되 균열을 일으키는 미묘한 순간을 포착, 반전을 만들어내는데 탁월한 소설가 김경욱의 여섯번째 소설집 ‘신에게는 손자가 없다’(창비)가 출간됐다.
현대문학상을 수상한 ‘99%’등 9편의 단편소설로 구성된 이번 작품집은 강하고 단단하기보다 주저하고 머뭇거리는 우리의 후줄근한 자화상과 맞닥뜨리게 한다. 결단하지 못하고 머뭇거림의 밑바탕엔 두려움이 있다.
표제작 ‘신에게는~’은 손녀딸이 제 또래 남자아이 셋에게 성추행을 당한 주인공 사내의 얘기. 사과 한마디 없는 아이들의 부모를 향한 사내의 복수는 기도와 주사위에 의지해야 할 정도로 나약하지만 비장하다. 죄는 있으나 처벌 대상이 아닌 아이들의 아파트를 찾아가 차량에 불을 지르는 행위가 범죄스럽게 느껴지지 않는 것도 나약함 때문이다.
‘러닝맨’은 한강변 자전거 데이트를 방해하는 러닝맨으로부터 느끼는 막연한 불안감을 당당한 아파트 단지와 대비해 보여준다.
이윤미기자/mee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