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교수는 이 책에서 자유시장의 폐해를 지적하며 정부의 역할을 계획경제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자유시장경제하에 당연한 것으로 여겨진 사회 전반의 시스템들을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장 교수의 이런 주장은 당시 주류경제학자들의 비판을 받기도 했는데, 송원근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조정실장은 지난 2월 장하준의 논지에 맞서 조목조목 반론을 제기하며 ‘계획을 넘어 시장으로’란 반박보고서를 낸 바 있다. 정부의 규제와 개입은 자본주의 성장동력인 경쟁과 혁신을 가로막아 생산성을 떨어뜨림으로써 성장을 저해한다는 게 주요 논지다.
이번에 단행본으로 나온 ‘장하준이 말하지 않은 23가지’(북오션)는 당시 보고서를 바탕으로 장 교수의 오류를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풀어쓴 장하준 다시 읽기 격이다. 시장경제 시스템의 작동방식과 특성들을 찬찬히 설명해놓아 ‘그들이 말하지~’와 비교해가며 흥미롭게 읽어갈 수 있다.
저자는 무엇보다 자유시장 옹호론자답게 정부의 역할에 부정적이다. 송 박사는 장 교수가 정부 개입 일반론을 들어 ‘자유시장이라는 것은 없다’는 주장에 대해, 자유시장을 정부의 개입이 없는 상황으로 설정한 잘못을 먼저 지적한다. 그런 논리라면 자유시장은 무정부 상태에서만 존재할 터인데, 오히려 자유시장은 정부의 운영이 가장 고도로 발단된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 보편적으로 관찰된다는 논지다. 문제는 정부의 개입이 시장친화적이냐, 반시장적이냐란 얘기다. 저자는 정부 개입의 잘못된 반시장적 개입의 대표적 예로 산업정책을 든다. 정부가 특정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기업에 특혜를 줄 경우, 자원배분을 왜곡하고 경쟁을 제한해 기업의 생산성을 떨어뜨리고, 결국 금융기관들이 생산성 높은 기업을 선별하는 능력을 퇴화시키는 결과를 낳게 된다는 것이다.
‘기업은 소유주 이익을 위해 경영하면 안 된다’는 장하준의 논리 역시 애초 비판을 많이 받은 부분이다. 저자는 장 교수가 주주가치 극대화가 국민경제에 더 부정적이라는 근거로 든 미국의 국민총생산 대비 투자의 비중과 1인당 GDP증가율을 시기별로 비교한 자료의 자의성을 지적한다. 특히 장 교수가 부정적 시기로 묘사한 1990년대와 2000년대 초ㆍ중반은 안정적인 성장률과 낮은 물가, 낮은 실업률로 제2의 번영기로 불리는데, 이런 부분을 간과한 채 GDP만 비교한 건 자의적이란 주장이다.
선진국과 후진국 소득격차 원인을 이민정책으로 본 장 교수의 시각, 정보통신 혁명의 성과를 과소평가한 점에 대해서도 꼼꼼히 논리의 오류를 지적한다. 정부의 재원 투입과 유망주 선정의 오판 등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정보통신 혁명이 창조한 환경에서는 더 이상 산업정책의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고, 기술개발 속도가 빨라 투자의 불확실성이 증대하기 때문에 정부가 미리 유망주를 선정하는 건 쉽지 않다는 얘기다. 시장경쟁도 치열해 또 그렇게 선정된 유망주가 지속적으로 수익을 창출할지도 미지수다. 오히려 이런 상황에선 다양한 투자를 실험할 수 있고, 경쟁을 통해 성과가 부진한 투자를 조기에 종결시킬 수 있는 시장의 역할을 확대해야 한다는 게 송 박사의 주장이다.
경제성장에 보호무역과 정부의 개입이 필수적인가? 탈산업화가 국제수지 적자의 이유인가? 아프리카의 저개발이 자유시장, 자유무역 정책 때문인가? 소득재분배 정책과 기회의 균등 정책 중 어느 것이 저소득층의 삶의 질을 높이는가? 등 우리 사회 현실의 갈등면들에 맞닿아 있는 두 시각차를 보며 균형 잡힌 시각을 갖는 데 도움을 준다.
‘자본주의 자체도 진화한다’며 자본주의 4.0을 주창한 아나톨리 칼레츠키의 관점에서 보면, 장하준 대 反장하준 논쟁은 이런 과정의 한 흐름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