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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살아있는 밤의 계절을 찾아서’
변형석(트래블러스맵 대표)

공주, 특히 정안은 밤이 좋기로 유명하다. 특유의 미네랄 성분뿐만 아니라 당도에 있어서도 배보다 배나 높은 수준이라고 하니 정안의 지리적 조건이 밤을 재배하기에 탁월한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정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찻길 양옆으로 밤나무가 늘어서 있었고, 방문했던 농장 인근은 산 전체가 밤나무로 가득차 있었다. 전국 생산량의 6%가 작은 고장 정안에서 생산된다고 한다. 만일 특산품으로 축제를 한다 치면 정안에서 밤축제를 하지 않으면 어디서 할까 싶을 정도로 정안에서는 밤이 농업의 핵심을 차지하고 있다.

공주 알밤축제는 바로 이곳 정안에서 2000년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작은 규모로 시작되었다가 2004년에는 공주시가 이 축제를 받아서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축제에서는 밤을 이용한 각종 가공식품과 음식을 장터처럼 판매하고, 각종 공연이 열린다. 밤줏기 체험을 할 수 있는 농가가 소개되어 있고 원한다면 농장에서 아이들과 밤줏기에 참여해볼 수도 있다. 그런데 아쉽게도 그것이 전부다.

알밤축제의 진면목은 밤 줏기와 같은 체험에서 드러나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제사 때 말고는 밤을 접할 기회도 방법도 없는 아이들에게는 나무에서 툭툭 떨어져 가시 속에 알을 내보이는 밤을 만지는 것만으로도 놀라운 경험이 된다. 밤을 이용한 어떤 축제가 열리려면 그 ‘살아있는 밤’과 연관된 경험이 핵심을 이루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이 밤줏기 체험은 축제의 공식행사도 아니고, 게다가 체험할 수 있는 장소는 행사장과는 아주 멀리 떨어져 있다. 밤축제가 열리는 행사장은 공주시내 공산성 앞 주차장인데, 이곳에서는 밤나무를 한 그루도 볼 수가 없다. 주차장에 늘어선 부스에서 판매되는 것도 각종 가공식품과 ‘밤짜장면’ 같은 음식인데, 원형을 잃은 밤에서는 사실 그닥 큰 감동이 전해지지 않는다. ‘살아있는 밤’이 ‘식재료’가 되버렸기 때문이다. 식재료라면, 그것이 상어의 지느러미라도 그리 감흥이 올 리 없다.

제수시장말고는 밤의 판매 용도가 많지 않기 때문에 이를 가공한 음식을 개발해 판매량을 늘리려는 공주시의 집요한 노력에 찬사를 보내지 않는 바 아니다. 그것은 분명 중요한 한 가지 전략이다. 그러나 밤의 판매량을 늘리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밤과 친해지게 해야 한다. 나무에 매달린 밤을 볼 수 있게 하고, 떨어져 반짝반짝 빛나는 밤을 만져볼 수 있게 하고, 맛있는 밤을 고를 수 있도록 알려주고, 밤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어찌보면 기본 중에도 기본인 그것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밤이 풍성한 그 계절에 바쁘고 신나는 농민의 모습도 볼 수 있게 하고, 선별되고 저장되는 과정까지도 볼 수 있다면 더 없이 좋겠고, 어디서 돈 주고 불러온 연예인 말고 바로 그 농민이 흥겹게 노는 모습을 볼 수 있게 하는 것이 진정한 지역의 축제, 마을의 축제임과 동시에 밤과 가까워질 수 있는 핵심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밤과 그것을 가꾸는 사람의 터전과는 동떨어진 공산성 앞 주차장은 참으로 쌩뚱맞은 곳이다.

10월의 이 시기에 보니 57회를 맞이하는 백제문화제와 마라톤대회, 향토연극제 등 공주 전역에서 각종 축제와 행사가 동시다발로 열린다. 활기를 잃어가던 옛 관광도시 공주가 또 이런 식으로 활력을 찾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는 생각도 살짝 든다. 그러나 ‘원형’이 없이 돈으로 만드는 축제는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다행히 공주에는 ‘백제’라는 수천년의 역사적 원형이 있다. 또 백제시대부터 즐겨 먹은 것으로 추정되는 ‘밤’이 있다. 그것을 잘 살리기 위해 새것을 만드는 전략은 적절하지 않다. 역사 속으로, 지역 속으로, 삶 속으로 들어가는 전략을 찾아야 한다. 백제와 밤에 담긴 ‘오래된 미래’를 발굴하는 일, 지금이라도 거기서부터 시작하기를 간곡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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