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면에서 김중혁의 첫 산문집 ‘뭐라도 되겠지’(마음산책)와 성석제의 산문집 ‘칼과 황홀’(문학동네)은 무릎을 바짝 당기고 할머니 치맛자락에 들러붙어 이야기 듣는 호기심으로 이끈다. 뭔가 엉뚱하고 재미있는 얘기를 들려줄 거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이야기꾼’ 성석제의 음식 이야기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만 이젠 어떤 경지에 이른 느낌이다. 명이, 국수, 냉면, 삼겹살, 청어, 소시지 등 소박한 서민의 먹거리들이지만 그의 이야기 보따리 속으로 들어갔다 나오면 이들은 달리 보인다. 그의 음식이야기는 궁벽한 시절의 허기진 음식도, 세련되고 모던한 퓨전음식도 아니다. 매일 우리의 생활 속에서 만나는 일상의 음식이다.
성석제. 박해묵 기자 mook@/2008.11.15 |
짭짜름하고 향긋한 명이 장아찌에 싼 한우 등심의 맛, 새우젓 한마리도 거부했던 타고난 채식주의자였던 어린시절, 맛나게 먹었던 어머니표 김치볶음밥의 비밀, 독일 할매포장마차의 소시지 ‘부어스트’, 껍데기째 연탄불에 올려놓으면 뽀얀 물이 나오는 진한 벚굴 등 입맛이 동한다. 평생 음식 때문에 여자를 두 번 울린 사연, 우래옥에 갈 때마다 생각난다는 구마모토 E선생 얘기, 대학시절 백일장에서 가작을 안긴 스승이 사준 홍어찜 등 이야기들이 푸짐하고 구수해 속이 든든하고 편하다.
그의 술 순례이야기도 훌륭한 안줏감이다. 대학 라이벌전과 소주 칵테일, 헤밍웨이 칵테일, 알코올 도수 60도의 법성포소주, 막걸리 예찬까지 음식으로서의 술은 다르지 않다.
음식을 통해 세태를 슬쩍 비틀어 보여주는 것도 그만의 톡 쏘는 글맛이다.
김중혁의 첫 산문집은 기발한 상상력과 능청스런 그의 글쓰기 스타일대로 ‘김중혁스럽다’.
‘멀티플레이어’ 답게, 삽화에 표지그림에 카툰까지 그려 넣었다. 그는 이 산문집이 “농담으로 가득하지만 때로는 진지한 책. 술렁술렁 페이지가 넘어가지만 어떤 장면에서는 잠시 멈추게 되는 책…긍정이 온몸에 녹아들어서 아무리 괴로운 일이 닥쳐도 어쩔 수 없이. ‘몰라 어떻게든 되겠지. 뭐라도 되겠지’. 끄덕끄덕, 삶을 낙관하게 되는 책”이었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적었다.
그의 말대로 시간을 써도 어디선가 날아오는 새로운 시간을 하염없이 죽이는 생활에 우리는 차츰 전염되면서 왠지 느긋해진다. ‘나는 뭘까’ 곰곰이 생각해도 내가 뭔지 잘 알 수 없으므로 오랫동안 멍하니 천장을 보고, 그저 그런 인생이라고 말하는 그의 글들은 얼핏 무기력과 허술함을 드러내는 듯하지만 내공은 만만치 않다. 어린 시절 플라스틱 뽑기 장난감을 통해 소유와 권력의 의미를 얼비치는 데는 고수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스티커 한 장의 꿈, 무선랜 공유 커뮤니티, 심심한 라디오에 대한 소망, 산만함에 대한 예찬 등 역설적인 듯하지만 사물과 현상의 정곡을 꿰뚫는 예리함은 허공을 가르는 빠른 칼처럼 순간 빛난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