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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명훈 “방북은 타이밍이 빚어낸 절묘한 성과”
정명훈(58) 서울시립교향악단 예술감독이 올해만큼 다채로운 성과를 낸 해가 있을까. 개인적인 성과가 아닌, 서울시향과 함께 한국 오케스트라의 위상을 드높인 것. 그리고 ‘남북 합동 오케스트라’라는 문화외교적인 대형 프로젝트까지, 정 감독의 세계적인 명성과 활동 반경에 맞게 그동안 묵혀둔 대의(大意)를 떨친 한 해였다.

정 감독이 평생을 기다렸다는 방북 프로젝트가 지난 9월 갑작스레 성사됐고, ‘남북 동수(同數)로 구성된 합동 교향악단의 정기연주회’라는 의미 있는 성과를 들고 왔다. 또 그가 5년간 맡아온 서울시향은 유럽 투어에서 한국 오케스트라의 위상을 드높이는 데 완벽하게 성공했다. 세계 최고 명성의 클래식 레이블 도이치그라모폰과 5년간 10장의 음반을 내는 계약도 성사시켰다.

18일 서울 세종로에 위치한 서울시립교향악단 사무실에서 헤럴드경제와 만난 정 감독은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방북에 대한 평소 소신과 방북 성과에 대한 뒷얘기를 들려줬다. 자신이 키워야 하는 ‘아이들’이라고 표현한 서울시향과 올해 말까지 공연하는 ‘말러 시리즈’,그리고 앞으로의 계획 등 진솔한 얘기를 털어놨다.




▶訪北 “이 대통령이 직접 허락, 이틀 만에 가게 돼”

음악평론가 이상민 씨는 “정명훈은 대단한 노력가다. 학교 다닐 때 제일 먼저 오고 제일 늦게 나가는 학생이었다. 그리고 음악으로 동서의 벽을 허문 위대한 인간”이었다고 표현했다. 1980년대 선구적으로 유럽 대륙에서 지휘자로 활약하며 동서의 장벽을 허문 그가 올해 세계의 유일한 분단국인 남한과 북한을 음악으로 아우르는 프로젝트에 물꼬를 텄다.

“평생소원이 불과 며칠 만에 이뤄진 겁니다. 묘하게 일이 잘되려면 이렇게 풀려요. 22년 전 파리 오페라 바스티유의 음악감독으로 취임할 때도 이랬습니다. 다니엘 바렌보임이 갑자기 박차고 나가고 연주자들도 와해됐을 때 제가 급히 투입된 겁니다. 마침 제가 이탈리아에서 성공적으로 오페라를 마무리했을 때라 후보에 올랐고, 급물살을 탔어요. 그렇게 운명처럼 파리로 가게 된 겁니다.”

정 감독은 89년을 되돌아보며 “이번 방북 역시 한순간 ‘탁’하고 풀렸다”고 했다. 모든 것은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엔 기가 막히게 맞아떨어졌다. 20년 넘게 두터운 친분을 쌓아온 자크 랑 전 프랑스 문화부 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북한의 음악인들과 만나고 싶다”고 얘기한 것. 마침 자크 랑 전 장관이 아시아와 프랑스 간 문화 교류 및 발전의 책임자로 옮긴 것까지, 가히 타이밍이 빚어낸 절묘한 성과였다.

“자크 랑 전 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내 평생의 꿈이 하나 있는데…’라며 얘기했죠. 그가 마침 북한의 고위층 음악인을 소개해줘 프랑스에서 만났어요. 그런데 예상외로 ‘아무 때나 좋다. 필요하다면 내일이라도 비자를 만들어 주겠다’고 하더군요. 한국에 와서 우리 정부에 방북 신청을 했죠.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허락해줬고. 그래서 (요청한 지) 이틀 만에 가게 됐습니다.” 

▶자크 랑 전 佛 문화부 장관과의 우정 “제3자의 중요성 실감, 프랑스가 연결 고리”

정 감독은 이 대목에서 자크 랑 전 장관과의 우정을 강조했다. 그는 “방북 후에도 자크 랑과 얘기를 나눴다”며 “제3자(the third party)의 존재가 중요한 걸 이번에 제대로 알았다는 말을 전했다”고 했다. “남북이 아닌 제3자, 밖에서 연결을 해준 게 큰 도움이 됐죠. 제가 오랫동안 프랑스에서 일한 것이 이런 인연을 만들었습니다.”

남북 교향악단의 추후 계획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방법을 고민 중”이라며 “아마 재미있는 일이 생길 것”이라고 했다. 이어 “개인적으로 혼자 북한에 가서 지휘하는 건 내가 원하는 결과가 아니다. 남북 음악가들이 만날 수 있도록 장을 마련하는 것이 옳다”고 했다. 정 감독은 제3자인 프랑스 측의 도움을 얻어서라도 이번 프로젝트를 성사시키겠다는 의지도 덧붙였다.




▶서울시향과 말러 “우리는 한낱 개미… 하면 할수록 헤매는 이유”

정 감독은 올해 말까지 1년 반에 걸쳐 서울시향과 말러 시리즈를 완성한다. 오는 20일 말러 교향곡 6번을 지휘하고, 오는 12월 9일과 22일 두 차례에 걸쳐 9번과 8번 교향곡으로 말러 시리즈를 마무리한다.

정 감독은 “5년을 기다려서 말러 시리즈를 시작했고, 시향의 실력은 그만큼 발전해왔다”며 “말러를 연주한다는 것 자체가 서울시향이 일정 수준에 올랐음을 의미한다”고 평가했다.

20일 공연하는 말러의 6번 교향곡에 대한 해석으로는 “말러의 협주곡 중 가장 비관적인 곡이며, 지휘자로서 점점 더 어렵다고 느끼는 곡”이라고 했다. “사실 말러는 너무나 거장이라 우리가 따라잡기에 무리가 있죠. 말러가 저 위에 있다면 우리는 개미에 불과합니다. 한없이 올라가려고 해봤자 한계가 있는 존재. 지휘자 입장에서도 말러는 하면 할수록 더 어려워집니다. 아직도 매일매일 헤매고 있는 느낌이죠.”(웃음)

서울시향의 레퍼토리가 강화되면서 음반 발매도 줄을 잇고 있다. 지난 7월 DG와의 첫 앨범인 드뷔시, 라벨에 이어 오는 11월 3일 두 번째 음반 ‘말러 교향곡 1번’이 발매된다. 정 감독은 “말러가 교향곡 1번의 첫 머리에서 자연을 환기할 때 나는 그와 함께 대기를 호흡한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표현했다.

▶“서울시향, 키워야 하는 아이들”… “지원 안 되면 성금이라도 걷겠다”

정 감독은 6년째 맡고 있는 서울시향에 대해 “내가 키워야 하는 ‘아이들 프로젝트’”라고 했다. “나이가 든다는 게 다 좋은데, 한 가지 나쁜 건 시간이 없어진다는 거예요. 개인적인 것 말고 이제는 특별히 뜻 있는 프로젝트를 하고 싶어요. 시향도 그 프로젝트 중 하나로 볼 수 있죠. 앞으로도 시향을 맡게 된다면 조건은 딱 한 가지입니다. 내가 하면 발전이 되느냐 하는 것. 오로지 그거 하나밖에 없어요.”

정 감독은 서울시향이 어느 정도 수준에 올라섰다고 인정하면서도, 아직 발전하려면 멀었다고 못박았다. 무엇보다 경제적인 지원이 중요하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앞으로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는 높은데, 그만큼 지원이 중요합니다. 만약 어려워지면 신문에 광고라도 낼 거예요. 국민 오케스트라를 만들고 싶으니 1만원씩만 내달라 부탁하는 거죠. 나도 이제 시간이 얼마 안 남았고, 계속 성과를 내야 하니까 말이죠.”(웃음)

인터뷰=김형곤 문화부장/kimhg@heraldcorp.com
정리=조민선 기자/bonjod@heraldcorp.com
사진=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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