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가 병원에 입원 당시, 폐 전문의가 그의 얼굴에 마스크를 씌우려 한 적이 있다. 잡스는 그것을 벗겨내고 디자인이 마음에 안 들어서 쓰기 싫다고 투덜거렸다. 말도 제대로 못하면서 마스크를 다섯 가지쯤 가져오라고, 그러면 마음에 드는 걸 고르겠다고 지시했다.
의사들을 어이없게 만든 이 사건은 투병 중에도 디자인에 집착한 스티브 잡스의 고집스러움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세계적인 혁신가, 애플의 공동창업자 스티브 잡스의 공식 자서전 ‘스티브 잡스’(민음사)가 24일 전 세계에서 동시 출간됐다. 괴팍한 성격에 신비주의로 일관했던 스티브 잡스는 육성을 담은 유일한 이 자서전을 통해 ‘약간의 지혜’를 남기고 싶어 했다.
“죽은 후에도 나의 무언가는 살아남는다고 생각하고 싶군요. 그렇게 많은 경험을 쌓았는데, 어쩌면 약간의 지혜까지 쌓았는데, 그 모든 게 그냥 없어진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묘해집니다. 그래서 뭔가는 살아남는다고, 어쩌면 나의 의식은 영속하는 거라고 믿고 싶은 겁니다.”
이 자서전은 ‘타임’의 전 편집장인 월터 아이작슨이 스티브 잡스 타계 전 40여 차례 인터뷰를 한 뒤 쓴 첫 공식 자서전으로 잡스의 타계로 출간 예정일보다 1개월 앞당겨 나왔다.
잡스는 생애 마지막 기록에 해당하는 930여쪽의 방대한 분량의 이 자서전에서 생모ㆍ생부와의 만남, 나중에 인정하게 된 딸 등 개인사와 구글과의 전쟁, 애플의 미래 등을 솔직하게 털어놨다.
잡스는 두 가지 유산을 남기고 싶어 했다. 혁신과 변혁을 선도하는 위대한 제품을 만드는 것, 그리고 영구히 지속될 수 있는 회사를 구축하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제품이 먼저였다. 잡스는 IBM이나 마이크로소프트의 쇠퇴가 제품의 질을 경시하고 세일즈에 집중한 데 있다고 봤다.
삶을 변화시키는 제품을 꿈꿔온 잡스가 마지막으로 구상했던 작품은 복잡한 리모컨이 필요 없는 단순하고 우아한 TV였다. 잡스는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단순한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갖춘 TV를 구현하는 방법을 마침내 찾았다”고 전기작가 아이잭슨에게 털어놨다. 예술과 기술이 결합된 완벽한 제품은 그의 열정의 대상이었다.
생전에 생부를 알고 만난 적이 없을 정도로 생부ㆍ생모의 존재를 부정하려 했던 잡스는 어느 날 생모 조앤 심프슨에게 전화를 걸어 만났다. “낙태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런 결정을 내리지 않은 일이 고맙게 여겨져서”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었다고 했다.
잡스의 트레이드마크인 검은색 터틀넥의 진실도 밝혔다. 잡스는 자신이 입을 유니폼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일상적으로 편리할 뿐 아니라 특징적 스타일을 표현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디자이너에게 검은색 터틀넥을 몇 벌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더니 100벌 정도 만들어줬다는 것. 그의 옷장에는 검은색 터틀넥이 쌓여 있었다.
잡스의 이미지를 결정한 제품 프레젠테이션은 철저한 준비의 결과였다. 단어 한두 가지를 바꾸고 처음부터 다시 예행연습을 할 정도로 완벽하게 준비했다.
잡스는 자서전을 쓴 또 다른 이유로 아이들을 들었다. “우리 아이들이 나에 대해 알았으면 했어요. 아이들이 나를 필요로 할 때 항상 곁에 있어 주진 못했어요.”
자서전에는 잡스가 직접 고른 사진 1장이 들어 있다.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 찍은 사진이다. 그는 아이들과 아버지와 그렇게 화해했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