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는 한국 비평계의 우뚝한 거목이다. 인문학 전반에 뿌리박은 그의 도저한 사유는 ‘심미적 이성’을 꽃피우고 지적 토양의 풍성한 거름이 됐다.
‘성찰: 시대의 흐름에 서서’(한길사)는 김 교수가 6년간 일간지에 연재한 칼럼 156편을 묶어냈다. 대개 시평이란 유통기한이 짧게 마련이지만 저자의 글은 단순한 생각의 편린에 그치지 않는다. 저자는 특정한 사건의 구체성에서 지속적인 삶의 보편성을 성찰하며 칼럼에 긴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그 비결은 ‘이성적 성찰’이다. 이를테면 그는 쇠고기 협상과 촛불집회를 다룬 글에서도 방법적 회의를 멈추지 않는다. 협상 과정에서의 정부 잘못도 문제지만 협약을 파기했을 때의 불이익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집회의 과잉 열기도 이상 징후다. 힘의 과시로 절차적 규범을 통한 토의와 소통, 열린 가능성을 무력화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성미 급한 이에게 저자의 입장은 모호하고 미지근하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에게 중요한 것은 사고의 실험이다. 이성적 성찰은 객관적 판단을 끌어내기 위한 수단인 동시에 “사회문화의 기초와 민주주의적 사회제도의 기초”를 이루기 때문이다.
성숙한 민주주의를 위해 필요한 것은 반성과 성찰이며 이는 곧 “다른 선택을 인정하는 관용을 배우는 과정”이다. “사태가 급할수록 반성의 공간을 찾아내는 것이 필요”한 것도 이러한 까닭에서다.
이처럼 저자의 칼럼은 강퍅한 외침보다 치열한 성찰을 권하고, 독단적 진리가 아닌 다양한 이치를 껴안는다. 얼핏 노회한 보수주의자의 목소리로 들릴 수도 있겠으나 ‘열린사회’의 점진적 개혁을 강조한 칼 포퍼의 목소리가 짙게 배어 있다.
과연 소설가이자 칼럼니스트인 고종석의 표현처럼 그의 철학은 ‘어떤 어려운 일이 닥쳐도 놀라지 않는다’는 처변불경(處變不驚)의 이성이랄 수 있다.
<김기훈 기자@fumblingwith>
/ kihu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