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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인호의 전원별곡] ‘귀농은 없다?’
각박한 도시생활에 지친 도시민들의 전원생활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특히 지난해부터 은퇴기에 접어든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 712만 명 추산)중 상당수는 인생2막의 새로운 장으로서 농촌을 택하고 있다. 실제 현 40~50대의 절반은 은퇴 이후 전원생활을 희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국토해양부의 주거실태조사). 지난 4~7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있는 서울무역전시장에서 열린 ‘2011 대한민국 귀농·귀촌 페스티벌’에서는 약 2만5000명의 도시민들이 몰려 성황을 이뤘다.

정부와 각 지방의 자치단체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다양한 귀농·귀촌 지원책을 마련해 도시민 유치에 나섰다. 특히 귀촌인 보다는 귀농인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다소 여유 있는 귀촌인과는 달리 귀농인은 농사를 지어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보다 절박한 입장에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귀농정책과 그 홍보내용을 보면 자칫 귀농에 대한 잘못된 장밋빛 환상만을 심어주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를 지울 수가 없다. 그 결과는 자못 심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지난해 10월 강원도 홍천으로 귀농했다. 농사를 짓는 한편, 전직(신문기자)의 전문성을 살려 전원&토지칼럼리스트로도 활동하고 있다. 그래서 전국을 돌며 귀농의 성공사례를 찾고자했다. 하지만 없었다. 정책과 홍보는 난무했지만, 정작 현장에서 성공한 귀농은 없었다.

그럼 각종 신문과 방송 등 매체에 소개된 그 많은 귀농의 성공사례는 뭔가? 라는 당연한 반문이 뒤 따른다. 물론 그런 성공 사례는 있다. 하지만 그건 보도된 시점에서의 일시적 성공이지 최종적인 귀농의 성공으로 이어질지는 알 수 없다. 현장에서 성공적으로 안착한 귀농을 찾아볼 수 없었다는 얘기다.

왜 없을까? 현장의 이야기를 들어 보자.

농림수산식품부나 농촌진흥청, 농어촌공사는 귀농·귀촌 예찬론(?)을 펼치고 있지만(사이트나 홍보책자를 보면 대체로 그렇다), 실제 각 지방자치단체의 농업기술센터에서 농민들을 지도하는 농업지도사들의 시각은 크게 다르다. 강원도 내 한 농업지도사는 “15년 동안 이 일을 하고 있지만 사실 도시민이 귀농을 통해 성공적으로 소득기반을 확보해 시골에 안착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런 사례를 본적도 없다”고 단언했다. 또 다른 농업지도사는 “평생 농업으로 잔뼈가 굵은 사람들도 결국은 하늘만 바라보고, 작물선택 및 생산물 가격 등은 투기성에 좌우될 수밖에 없는 게 바로 농사다. 그런데 생전 삽질, 낫질 한번 해보지 않은 도시민이 그것도 얼마 안 되는 땅을 가지고, 더군다나 도시 내 판매기반도 전혀 없는 상태에서 농사로 승부를 걸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되겠느냐. 결국 10전9패, 10전10패 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오래전에 실제 귀농을 택한 사람들의 경험담도 들어보자. 10여 년 전에 경북 봉화에 귀농한 A씨는 “사실 귀농은 도시 저소득층을 시골로 끌어들여 다시 시골의 빈곤층으로 전락시킬 위험성이 크다. 나의 경우도 귀농에는 사실 실패했고, ‘옆길(체험프로그램, 민박운영 등)’로 새어 간신히 현상유지하고 있는 정도다”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그는 “막연하게 시골 행을 부추기는 귀농정책은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우여곡절 끝에 국회를 통과한 한미FTA와 값싼 중국산 농산물 수입 증가 등으로 국내 농업분야가 더욱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현재의 소농, 영세농 수준의 귀농은 자칫 빈농의 악순환을 불러올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규모의 경제가 가능한 기업농을 육성해야 하는데, 이와 반대로 ‘강소농’을 내세우며 귀농을 유치하면 오히려 빈농을 대거 양산할 수 있다는 우려다.

필자가 현장에서 취재한 귀농인 들의 본인 소유 농지면적은 거의 1만㎡(3025평) 이하로, 3300㎡(1000평) 이하인 경우도 상당수였다. 그럼 농지 3.3㎡(1평)당 연간 수입(비용을 제외한)은 얼마나 될까. 지역별, 농가별로 차이가 크므로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대개 일반작물은 경우 3000~5000원 수준이라고 한다. 1만㎡의 제법 넓은 농지에 농사를 지을 경우에도 연간 총 수입이 고작 907만5000~1512만5000원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잘해야 한 달 100만원이 조금 넘는 수준이다.

물론 프로 농사꾼의 경우에는 특용작물을 잘 선택하고 운만 잘 따르면 3.3㎡당 1만~2만원도 벌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말 그대로 농사로 잔뼈가 굵은 베테랑 농사꾼에게 적용되는 것이자, 귀농한지 얼마 안 되는 초보 농사꾼에겐 어림없는 얘기다. 오래전에 홍천에 귀농했다가 실패하고 땅 중개업을 하고 있는 한 중개사는 “도시 자산을 모두 정리해 넓은 농지를 사서 특용작물에 올인했지만, 흉작에다 판매처마저 확보 못해 몽땅 말아먹었다”며 “귀농은 크게 하던 작게 하던 정말 신중해야한다”고 충고했다. 봉화군의 한 귀농인도 “연금 등 노후생활 자금이 그럭저럭 여유 있는 사람이 귀촌하겠다면 쌍수를 들고 환영하지만 도시에서 어려운 경제사정을 피하기 위한 방편으로 귀농으로 하겠다고 하면 도시락 싸들고 다니면서 말린다”고 토로했다.

그나마 이렇게 어려운 선택을 한 귀농인의 정착을 위해 해당 지자체에서 안팎으로 보살펴준다면야 다행이지만, 뒷짐만 지고 ‘나 몰라라’하는 지자체도 적지 않다. 유감스럽게도 필자가 사는 홍천군도 후자인 경우다. 필자의 가족(4명) 모두가 전입한지 만 1년 1개월이 넘었지만, 그 흔한 ‘귀농 멘토’조차 없다. 그러면서도 홍천군은 최근 도시민 유입이 늘어 인구 7만 명을 회복했다는 홍보성 보도자료를 서둘러 냈다. 하지만 그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또한 문제가 많다. 실제로 시골로 이사한 사례는 드물고 대개는 주소지만 옮긴 위장전입이다. 관내 한 이장은 “실제 집을 지어 이사 오는 게 아니라 주소지만 옮겨놓는 위장전입이 대부분이다. 많을 때는 일주일에 2건이나 된다. 솔직히 땅 투기의도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도시민의 위장전입이 느는 것은 추후 양도세 감면 혜택 등을 받기 위함이다. 그런데도 각 군 단위 지자체는 이에 관대하다. 왜 그럴까. 인구가 늘어나면 중앙정부에서 재정이 열악한 군 단위 지자체에 지원하는 지방재정교부금을 더 많이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뭔가 크게 잘못됐다.

귀농을 한 경우에도 농사는 매우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일단 저질러 놓고 보자는 식의 투자는 실패의 확률만 높일 수 있다. 현재 농업구조는 농협-농약·비료업체-유통업체-농기계업체 등 관련 업체들이 모두 유기적으로 엮여 있다. 홍천의 한 농부의 말이다. “일단 비닐하우스 등 대규모 시설투자를 하게 되면 거기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시설농업을 할지, 어떤 작물을 선택할지를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

귀농 바람이 불기 시작한 때는 IMF 직후다. 먹고 살 가장 손쉬운 방법이 농사라고 여긴 ‘묻지 마 귀농’이었다. 하지만 현지 적응 실패, 농사 기술 부족 등으로 어려움을 겪다 다시 도시로 U턴한 이들이 부지기수다. 일부 지역에서는 귀농 성공률이 10% 내외였다는 통계도 있다.

물론 요즘은  IMF 귀농 때와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귀농 정책과 정보가 넘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귀농은 여전히 넘기 어려운 벽이다. 소득이 기대에 못 미쳐 다시 도시로 돌아가는 행태도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현장에서 들리는 ‘귀농 경고음’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다.

(헤럴드경제 객원기자,전원&토지 칼럼리스트,cafe.naver.com/rm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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