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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레이디 제인 그레이의 9일 천하
[엘제이비뇨기과 장수연의 비하인드 히스토리]

‘평양감사도 자기 싫으면 그만이다’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당사자의 마음이 내키지 않으면 억지로 시킬 수 없다는 뜻이다. 천하를 호령하는 왕도 스스로 하고 싶지 않으면 반갑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 간절히 열망하는 일을 다른 누군가는 원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이 구분되는 것도 아마 이런 이유이지 않을까. 영국의 튜더 왕조 중에도 자신의 뜻과 전혀 상관없이 왕좌에 떠밀려 올라갔다가, 9일 만에 다시 끌려 내려오게 된 여인이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레이디 제인 그레이.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 어떤 것인지도 모른 채 처형되어야 했던 그녀는 당시 나이 열일곱이었다.


사실, 제인 그레이는 왕좌와 거리가 있었다. 왕위 계승 후보 여섯 번째였던 것이다. 그녀를 왕좌 후보로 올린 인물은 헨리8세였다. 여섯 명의 부인을 둔 것으로 유명한 그가 죽은 후, 그의 세 번째 왕비인 제인 시모어가 낳은 아들 에드워드 6세가 왕좌를 차지하게 된다. 하지만 유약했던 그는 외삼촌인 에드워드 시모어와 노섬벌랜드 공작의 섭정을 불러온다. 바로 이 노섬벌랜드 공작 때문에 제인 그레이가 왕좌에 올라가게 된 것.


제인은 어릴 때부터 혼자 책을 읽고 사색을 즐기는 조용한 아이였다. 이런 그녀의 성격은 권력욕이 많았던 부모의 마음에 들지 않았고, 그녀의 어머니인 프랜시스 브랜든은 그녀를 좀 더 활발한 성격으로 만들기 위해 매를 드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제인은 친어머니보다 헨리8세의 여섯 번째 부인 캐서린 파를 더 좋아했는데, 캐서린은 산후에 병을 얻어 일찍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왕위에 오른 에드워드 6세는 6년 만에 홍역을 앓게 된다. 그에게는 후사가 없었고, 이것은 노섬벌랜드 공작을 불안하게 했다. 에드워드 6세가 죽으면 자신이 갖고 있던 권력을 내려놓아야 했기 때문이다. 헨리8세의 딸 메리는 왕위에 오를 후보 1순위였고, 그녀가 왕위에 오르면 노섬벌랜드의 목숨마저 위태로웠다. 이에 그는 권력욕이 많은 제인 그레이의 부모를 떠올린 것이다.


제인의 부모는 딸이 에드워드 6세와 같은 해에 태어나자, 그녀가 왕비가 되기를 간절히 바랬다. 또한 에드워드 6세의 외삼촌 중 한 명인 토마스 시모어는 제인의 아름다운 용모와 얌전한 성정이 높이 사 혼사를 추진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러던 중, 에드워드 6세의 병세가 악화되고 토마스 시모어는 반역죄로 참수 당하고 말았다. 제인의 부모는 한창 딸이 왕비가 될 것으로 믿고 있던 차에 꿈이 이루어지지 않자 망연자실하고 말았다. 이런 상황을 노섬벌랜드는 놓치지 않고 자신의 네 번째 아들인 길버트 더들리와 혼사를 추진했다. 제인의 부모는 최고 권력을 쥐고 있는 공작과 사돈을 맺어 딸을 왕비가 아닌 ‘여왕’의 자리에 앉혀보겠다는 욕심으로 그 혼사를 추진했다.


정략결혼이 마무리가 되자, 노섬벌랜드는 생사(生死)의 기로에 놓인 왕에게 종교적 믿음이 다른 메리에게 왕위를 넘겨주는 것보다 자신의 며느리인 왕족 제인 그레이에게 내리는 것이 합당하다고 매일같이 설득했다. 결국, 제인은 에드워드가 죽은 후 의회에 의해 여왕의 자리에 오른다. 문제는 시민들이 이를 용납하지 않았다는 데 있었다. 그들은 헨리8세의 첫 번째 자식이자, 불행한 어머니 캐서린의 딸 메리가 여왕의 자리에 올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시민들의 이런 생각을 알고 있었던 노섬벌랜드 공작은 메리의 존재를 없애려고 했지만, 메리가 먼저 군대를 이끌고 궁에 입성한다.


이로써, 권력욕을 가진 어른들에 의해 인생이 좌지우지 되던 제인 그레이의 9일 천하가 마무리 되었다. 여왕의 자리에 올라있는 9일 동안, 그녀가 한 일이라곤 자리에 앉아 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 어떤 일인지 파악하는 것뿐이었다. 새로 집권한 메리에 의해 런던탑에 갇혀 지내게 된 제인은 오히려 마음 편히 자신이 좋아하는 독서와 사색을 즐겼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편안함도 오래 가지 못했다. 그녀의 아버지가 반란에 동참했던 것이다. 결국 메리는 제인 그레이의 참수형을 명했다.


열일곱의 나이에 목이 떨어지기 전, 그녀는 처음으로 자신의 인생에 대해 선택한 것이 있었다. 메리는 어릴 때부터 봐 왔던 제인을 그대로 참수할 수 없어 개종을 하면 살려주겠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제인은 자신의 신앙을 지키며 죽음을 선택했다. 꽃다운 나이에 자신이 저지른 일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그녀, 제인 그레이. 그녀는 어른들의 권력욕으로 이루어진 정략결혼을 한 남편 길버트에게 성적 학대를 당했다고 전해진다. 이렇게 나약하게만 느껴지는 제인 그레이가 5개 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하고, 철학, 문학, 음악에 심취해 있었다는 게 믿겨지는가. 그저 원하는 것을 하며 살고 싶었던 그녀의 안타까운 생애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도움말 엘제이비뇨기과(LJ비뇨기과) 장수연 원장


헤럴드 생생뉴스/onlin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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